시론영리병원, 의료 재앙의 문 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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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가 팔을 깊이 베어왔어요. 피가 많이 나지 않는다고 돌려보내야 했죠.” 미국 최대 영리병원 체인인 HCA 소속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이야기다. HCA는 작년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중 8만명을 병원이 정한 응급환자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돌려보냈다. 열만 난다고 돌려보낸 환자가 이틀 후 신종플루로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HCA는 응급실에 온 환자들에 대한 보험 청구체계도 바꿨다. 이전까지 25%에 불과하던 가장 비싼 보험 청구코드에 해당하는 환자들의 비중이 76%까지 급증했다. 다른 병원들도 이 청구체계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다. 미국에서 욕창 환자가 가장 많은 15개 영리병원 중 8개가 HCA 소속인 것으로 밝혀졌다. 욕창은 간호사 수가 부족해지면 곧바로 나타나는 대표적 의료사고다.

돈 안되는 환자는 안 받는 병원. 건강보험에 의료비를 과잉청구하는 병원. 의료의 질과 상관없이 간호사를 줄이는 병원. 지금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롬니가 대주주인 HCA 영리병원은 이런 방법으로 천문학적 이윤을 올렸다. 문제는 이 방법이 HCA만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리병원 전체가 이렇게 돈을 번다.

미국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과 비교했을 때 한 환자당 20%를 비싸게 받는다. 또 의료인력 고용은 비영리병원에 비해 매우 적다. 사망률도 비영리병원보다 2% 더 높다. 이 모든 사실은 지금까지 여러 연구에 의해 확인됐고 한국의 국책연구원인 보건산업진흥원의 2009년 보고서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던 18대 국회에서도 영리병원 도입 법안이 모두 좌절된 것은 영리병원이 병원비는 높고 의료서비스 질은 낮다는, 너무나 명백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정권이 4개월도 안 남은 시점인 지난 10월29일 현행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고치는 꼼수로 영리병원 허용법령을 기어이 통과시켰다.

이름하여 경제자유구역 ‘외국의료기관’이다. 외국의료기관이라지만 국내자본이 50%를 투자할 수 있고 내국인 진료는 100% 허용된다. 외국의사면허소지자는 10%만 있으면 된다. 경제자유구역에만 한정됐다고 하지만 이미 경제자유구역은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에 걸쳐 있다. 말이 외국의료기관이지 국내자본이 운영하는 국내영리병원이다. 더욱이 병원협회는 “해외자본에 대한 특혜”라며 당장 국내영리병원 전면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대체 왜 4개월도 안 남은 정권에서, 국회도 통과하지 못한 영리병원 허용을 강행한 걸까? 한·미 FTA에서 경제자유구역 영리병원은 한번 설립허가를 내면 취소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는 사실. 그리고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 우선투자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국내자본이 삼성이라는 사실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한번 결정하면 다음 정권은 바꿀 수 없으니 일단 ‘먹튀’를 하고 보자는 것이다.

미국은 전체 GDP의 17.6%를 의료비에 쓰면서도 전체 인구의 6분의 1은 의료보험이 아예 없다. 이러한 재앙적인 미국 의료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국공립병원이 전체 병원의 35%라서 그렇다. 그러나 한국은 국공립병원이 7%밖에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병원들이 영리병원으로 전환되는 길이 열리는데 의료비 폭등과 건강보험마저 위협받는다는 지적이 기우일까?

더욱이 지금 의료민영화만 추진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스민영화, 철도민영화도 추진 중이다. 공공서비스 민영화는 재벌들에는 큰 이익이겠지만 서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의료비와 가스, 철도요금 폭등이다. 대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말하면서도 현재 진행되는 민영화에 반대하지 않는다. 후보들의 약속을 거짓으로 보는 이유다

우석균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 이 글은 2012년 11월 7일자 경향신문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