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수술 중 사망한 10대 여성의 사건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낙태’ 처벌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지난 10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임신 23주째의 10대 여성이 ‘낙태’ 수술을 받던 도중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홀로 임신으로 인한 고민을 안은 채, 건강상의 변화들을 감당하며 수능까지 치러야 했던 그녀의 고통에 가슴 아프게 공감하며 먼저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요청에 의한 ‘낙태’ 시술자를 처벌하는 형법 제 270조 1항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리면서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고’,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가볍게 제재한다면 ‘낙태’가 만연하고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될 것’이라고 결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바로 그렇게 ‘낙태’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돌린 결과 벌어진 일입니다. 만일 이 여성이 10대이고 미혼이라는 이유로 임신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출산이나 ‘낙태’에 대해 누군가와 상담을 할 수 있었다면, 처벌과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비밀스럽게 위험한 수술을 감행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그녀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릅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단순한 일순간의 선택이 아니며, 인구조절과 노동력 생산 조절, 가부장체제의 유지를 위해 여성에게 임신출산에 대한 책임이 전가되고 여성을 사회적 통제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여성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아의 생명권만을 ‘공익’으로 배치시키고 여성의 삶과 권리는 단지 ‘사익’으로 경시하는 사회가 바로 이렇게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사건이 지난 2010년부터 본격화 된 ‘프로라이프의사회’와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 등의 ‘낙태’ 시술 병원 고발, ‘낙태’ 처벌 강화 움직임에 중요한 영향을 받아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터무니없이 치솟은 비용과 확인할 수 없는 정보, 안전하지 못한 수술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심지어 원정낙태까지 감행해야 하는 현실이 지난 2010년 이후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여성을 수술한 의사 역시 현금 650만원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낙태에 대한 금지와 처벌을 통해 ‘낙태’를 근절하겠다는 주장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더욱 위험한 현실을 초래하는지 다시 한 번 똑똑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남녀 관계는 없으며 100 퍼센트 완벽한 피임법 또한 없습니다. 심지어 여성들은 사회적 권력 관계로 인해 성폭력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낙태’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은 모든 여성들에게 다가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낙태’ 수술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여성들을 위해 ‘낙태’가 근절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낙태’만큼 출산도 위험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여성들이 안전하게 출산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출산에 대한 의료적, 사회적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여성들의 건강과 생명을 걱정한다면 낙태 시술을 거부하거나 낙태 시술로 영리를 도모하는 대신, 모든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언제든지 상담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가급적 이른 시기에, 안전하게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의료적 조건을 만들 수 있도록 산부인과 의사들이 함께해야 합니다.

 

 

1. ’낙태’의 불법, 음성화와 이에 따른 높은 비용, 사후피임약에 대한 낮은 접근성은 저소득층과 청소년, 미혼 여성, 장애 여성 등 사회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는 여성들에게 더욱 위험한 현실을 초래합니다. 이에 우리는 낙태 처벌 중단과 함께 속히 낙태 시술 비용을 안정화하여 막대한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누구나 필요한 때에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지원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고 병원과 약국에서 충분한 건강 상담과 복약안내를 통해 필요한 여성들이 안전하게 사후피임약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합니다.

 

 

1. 진정으로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를 원한다면 ‘낙태’ 처벌 대신 여성의 사회적, 성적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는 사회, 출산이나 ‘낙태’가 여성에게 부담이나 낙인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낙태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현행법을 개정하고, ‘낙태’ 처벌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제49차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낙태와 관련된 법, 특히 형법을 검토할 것을 고려하고,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관리를 위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한국 정부에 촉구하였습니다. 또한 많은 국가들이 공공 의료체계를 통해 여성이 필요한 경우 안전하게 낙태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결과 낙태율과 낙태로 인한 여성 사망률이 모두 크게 감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어떤 후보도 이러한 정책들을 고민하지 않는 현실에 깊은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느낍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금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12년 11월 15일

여성의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