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열린 2차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박 후보는 병원 간병비를 건강보험 급여화할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그런데 그 다음날 민주통합당 박용진 대변인이 MBC 라디오에서 ‘박 후보가 본인 공약에 들어가 있는 내용인데 잘못 알고 대응하신 것 같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서 어느 쪽이 맞는 말인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마침 16일 열린 3차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었다. 문 후보가 박 후보에게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4대 중중질환 진료비에 간병비도 포함된 것이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러자 박 후보는 간병비도 포함된 것이라 대답했다.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는 비급여까지 포함해서 전액 국가가 부담할 예정이기에 간병비는 당연히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토론회 때 본인이 한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럼 도대체 어느 말이 맞는 것일까?
박 후보는 현재 ‘국민건강보험법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비급여 항목에서조차 간병비는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 비급여까지 포함해서 총진료비 전액을 건강보험으로 적용하겠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간병비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겠다고 주장을 한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법정 비급여 외에 별도로 간병비도 건강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명확히 얘기해야 간병비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 후보는 그것을 몰랐던 것 같다. 비급여 포함 전액 보장이면 당연히 간병비도 포함되는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박 후보가 1조 5천억 원으로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제시한 것을 보니 그러한 심증이 더 분명해진다. 간병비를 포함해서 4대 중증질환의 다른 비급여까지 다 급여화하려면 1조 5천억 원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두 번의 TV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의료 공약에 대해서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지 못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사실 박근혜 후보의 병원 간병 관련 공약은 따로 있다. 두 번의 TV 토론을 보니 본인이 그런 공약을 한 줄 아시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박근혜 후보 공약집에서 파일 보기 프로그램의 찾기 기능을 활용하여 ‘간병’이란 단어가 들어간 공약을 찾아봤다. ‘어르신 간병비용 지원’, 공약의 세부 내용은 ‘사회공헌활동 기부은행 설립’, 이것이 바로 박 후보의 간병 공약이다. 의외다. 나름 병원 간병 제도 관련해서는 꽤 공부를 했던 필자지만 이렇게 엉뚱한 공약을 제시할 줄은 몰랐다. 기존에 이해 당사자들과 학계에서 논의하던 내용도 많은데, 이는 그것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간병비 부담 완화는 절실하고 시급한 문제
서민들의 병원 간병비 부담은 엄청나다. 하루에 24시간 병원 간병을 받으면 지역과 병원에 따라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하루 6만원에서 8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일주일이면 50여만원, 한 달이면 며칠 뺀다고 해도 대략 200만 원 돈이 고스란히 간병비로 나간다. 이 정도면 도시 노동자 한 달 평균임금의 70% 가량이다. 가족 중에 한 명이 큰 병 걸려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진료비도 진료비지만 간병비로 집안이 거덜 날 상황이 벌어진다.
병원 간병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니다. 건강보험공단 등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요양병원 환자의 88.0%, 종합병원 환자의 49.7%,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 등) 환자의 72.0%가 간병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웬만한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의 반 이상이 간병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원 간병비 부담 완화 정책은 그 규모나 심각성 면에서나 매우 시급하고 절실한 정책이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기 때문에 건강보험 정책에 아무 관심이 없는 이명박 정부의 국민건강보험공단조차도 병원 간병비를 전면적으로 급여화하기는 어렵더라도 단계적으로 급여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후보의 간병비 지원 정책은 서민 현실을 모르는 정책
이런 상황에서 박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독거노인 돌봄, 간병서비스 등 가족단위의 사회공헌 활동을 점수화해서, 가족 중 노인의 간병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축적된 점수를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회공헌활동 기부은행’을 설립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집에 썼다. 쉽게 말해 평소에 내가 봉사활동을 많이 해서 점수를 기부은행에 저축해 놓고, 나중에 우리 식구 중 누군가의 간병이 필요할 때 그 점수를 돈처럼 사용해서 간병서비스 비용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 후보의 간병비 지원 정책은 실효성도 없고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만 심화시킬 수도 있는 방향이기에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다.
간병비 지원이 필요한 이들은 특히 서민들인데,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한국의 평범한 사람들은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대다수의 평범한 서민들은 향후에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가족들의 간병비 마련을 위해 ‘사회공헌활동 기부은행’에 저축할 봉사활동 점수를 ‘벌기’ 힘들다. 반면에 봉사활동을 할 시간이 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들에게 봉사활동을 대가로 간병서비스 비용마저 지원된다면 이는 소득역진적인 불평등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서민들도 시간을 쪼개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고, 고소득층은 시간이 남아도 봉사활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위와 같은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크다.
박 후보의 공약은 서회서비스 비용 부담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병원 간병 서비스는 진료의 필수적인 부분이니 당연히 병원의 필수적 서비스로 제공되어야 하고, 그 비용은 건강보험 부담의 일반 원칙처럼 사회가 분담하는 게 맞다. 이런 식으로 한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가족에게 떠 넘겨 문제를 개인화하려는 극도로 보수화된 이데올로기의 산물일 뿐이다.
병원 간병비 부담은 건강보험 적용으로 해결해야
글을 마치며 드는 생각인데, 간병비 문제 해결 정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황당한 공약이어서 필자가 박 후보 공약팀의 ‘개그’를 ‘다큐’로 받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토론회를 보니 박 후보는 간병비 개념도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정색하고 달려든 아닌지. 그러나 아픈 가족 간병에 살림이 휘청하고 허리가 휘어질 듯한 서민들의 고통을 소재로 개그를 하실 일은 아니지 않는가? 많은 이들에게 심적,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는 병원 간병 문제는 다른 나라들처럼 병원이 간병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보험을 적용하여 최소한의 비용 부담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