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후보님, 아픈 사람에게 말장난 하면 곤란합니다
박근혜 후보 공약집이 지난 10일 발표되었습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박근혜 후보의 보건의료공약의 실제내용이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 이를 알리고자 합니다. 글의 연재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4대 중증질환 국가 100% 부담’의 허구
2) 응급의료의 개인 책임화
3) 임플란트 보험화, 과연 적절하고 가능한가
4) 노인 간병비, 가족이 사회봉사로 해결?
5) 영리병원 찬성 및 총론
박근혜 후보 측은 대선 정책공약집을 선거를 9일 앞둔 시점에서야 공개했다. 그간 각종 TV토론은 물론 정책토론도 외면하더니,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마지못해 공약집을 공개한 형국이다. 때문에 시민사회단체가 공개적인 정책평가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박근혜 후보는 거리 걸게용으로 몇 가지 보건의료공약 슬로건을 공개한 바는 있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관심있게 보았고, 또한 그 구체적 실현 방침에 가장 궁금했던 것이 바로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이다. 어떤 지역 걸게에는 ‘중증질환 100% 국가책임’이라는 구호까지 걸려있었다. 많은 국민들은 이 공약이 흐뭇했을 것이다. 중병에만 걸리면 되돌아오는 무서운 병원비 폭탄을 일부라도 없애줄 거라고 희망을 걸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공약치고는 놀라운 진전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이 공약이 가장 궁금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필자로서도 중증질환에 대한 국민의 부담의 핵심에 대해 어떻게 국가책임화를 할 것인지가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막상 이번에 공개된 공약집을 보면 ‘말뿐인 잔치에 먹을 건 하나도 없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일단 4대 질환만 선별적으로 보장성을 높인다는 점은 차후로 두더라도, 원래 각종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박근혜 후보의 안보다 후퇴한 안이 들어 있다. 언론을 통해서는 4대 질환에 대해 ‘비급여포함 보장’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 공약집에는 비급여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이 없을뿐더러, ‘비급여’라고 하지 않고 ‘비급여 진료비’라고 애매모호하게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하는 ‘건강보험진료비실태조사’에서 선택진료비(특진료)와 병실차액료는 비급여항목 중 항상 1,2위를 차지하며, 전체 비급여 의료비의 55%를 넘는다. 이런 이유로 선택진료비, 병실차액료, 그리고 고스란히 돌아오는 간병비가 의료비 중 국민부담이 가장 큰 ’3대 비급여’라고 불리고 있다. 게다가 종합전문병원에 가면 대학교수로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어, 선택아닌 선택진료비를 내야 하고, 보험적용이 되는 6인실 병실은 늘 없다고 하니 보험이 안되는 병실에 입원을 해야 하고, 간호인력이 OECD 30개 국에서 최하위인 한국에서 간병은 가족의 책임이거나 고가의 비용이 아니던가?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는 선택진료비 폐지와 다인병상 확충 그리고 간병 건강보험 적용을 줄기차게 주장해 오고 캠페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이미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간병비 국가 부담에 대해서 부정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4대 질환에 대한 “국가부담 100%” 라는 말인가? 결국 박근혜 후보가 이이야기하는 ‘비급여 진료비’란 MRI나 초음파 같은 비급여 검사와 비급여 약품을 포함하겠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 문제는 4대 질환에 대해서만은 비급여 검사라도 급여를 적용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일까? 일상적인 검사에서 4대 질환으로 판정될 시만 비용을 국가가 내고, 4대 질환에 해당되는 진단이 안 나오면 건강보험 적용이 아니라 국민부담을 시키겠다는 것인가?
이미 환자들이 겪어 보았을 문제들이 제기 되고 있는 것이 건강보험 적용의 문제다. 뇌 MRI의 선별적 건강보험적용(급여화)은 의사로 하여금 뇌질환을 의심하여 뇌 MRI를 찍었다가, 정상판정이 나오면 검사를 비급여화 하는 악습을 만들고 있다. 돈 없는 환자들은 4대 질환으로 진단되면 본인부담금이 낮거나 없으므로, 검사 후 정상판정보다 차라리 병에 걸리기를 바래야 하는 슬픈 현실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독 박근혜 후보가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듯이 보이는 노인들의 경우 만성질환 및 다양한 질환이 상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 질환과 관련되지 않은 합병증에 대해서는 솎아내서 보상해야 할까? 예를 들어 당뇨와 암이 동반된 환자가 손발이 저릴 경우 말초신경염이나 혈관염이 당뇨로부터 왔는지, 암으로부터 왔는지, 혹은 항암치료에서 비롯되었는지 의사들이 밝혀야 할까? 그리고 퇴행관절염이 있는 뇌졸중환자의 통증을 어디까지 치료해야 할까? 편마비로 인해 퇴행관절염이 심해졌다고 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4대 중증질환에 대한 국가책임’은 공약 자체도 사실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다른 중증만성질환(간질환, 만성신부전환자등)과 본인부담금을 두고 싸움을 붙이는 꼴이다. 더우기 연 500만원 이상 고액진료비 부담 환자중 85%가 암, 심장병, 뇌혈관질환 등 3개 질환 예외 환자다. 누가 어떤 질환이 더 무상으로 진료받아야 한다고 선별할 수 있는가?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는 모든 진료비의 건강보험적용(급여화)이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던 것이다. 물론 특정 질병의 보장성 강화도 공약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집권 5년 동안 점진적으로 선별된 질환에만, 그조차 핵심인 3대 비급여는 제외하고 보장성을 높이겠다는 공약은 현실에 비추어 약간의 진전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물론 우리는 이미 TV를 통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암은 보장합니다’ 같은 민간의료보험 광고를 숱하게 보아왔다. 아마도 의료영리화를 지지하고,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바라는 박근혜 후보의 머리 속에는 건강보험에도 이런 민간보험 상품 광고가 적격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픈 사람들에게 말장난을 해서는 곤란하다.
덧붙이는 글 | 정형준 기자는 의사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