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병원 간호사의 건강권도 소중하다

[한겨레]2004.04.29. – 왜냐면

간호사의 건강권도 소중하다

지난 20일 국립대 종합병원 간호사 30여명이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직업성 질환에 따른 산재요양을 집단으로 신청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14조를 보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7일 이내에 요양신청을 처리해야 함에도 주무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여러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와 불필요한 행정적 절차를 핑계로 처리를 늦추고 있어 산재로 고통받는 당사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이란 생산기술 및 관리방식의 발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적절한 작업조건과 과도한 노동강도가 신체의 특정 부위에 누적돼 근육, 신경, 인대 등의 근골격계 부위에 이상증상을 유발하는 직업성 질환이다. 최근 들어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을 포함한 모든 산업분야에 걸쳐 그 심각성이 더해가고 있으며, 1993년 2건의 근골격계 질환이 산업재해로 승인된 이후 해마다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부의 발표를 보면, 지난해 4532명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산재요양을 승인받아 2002년의 1827명에 견줘 무려 148.1%가 증가했다.

근골격계 질환이 국내에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그 심각성이 인식돼 왔다. 하지만 근골격계 질환의 발생 범위는 제조업만이 아니라, 간호사와 같은 의료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등 업종과 직종에 관계없이 모든 산업계에 걸쳐 있다. 간호사는 미국 등 외국에서도 근골격계 질환 발생률이 가장 높은 위험직군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특히 요통 발생률은 미국의 경우 단일 직종으로는 가장 높은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

이는 대만, 일본 등의 연구·조사 사례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자료 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에 산재신청한 해당 병원의 수술건수와 마취건수 등 업무량이 구조과정에서 해마다 수십퍼센트씩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간호사도 일반 산업체에 못지않은 과도한 노동강도에 노출된 것이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백의 천사’로만 알고 있던 간호사는 과도한 노동강도와 열악한 작업환경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기피(3D) 노동자였다.

이번 산재신청에는 간호업무 분야에서 최초로 요양신청을 하는 만큼 노동조합에서도 많은 객관적 자료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동조합과 산재신청 당사자들의 의뢰를 받고 인간공학 전문가들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간호업무의 근골격계 질환 유해요인을 전문적 평가기법을 적용하여 평가하고, 그 의견서를 산재요양 신청에 첨부하여 오히려 공단의 업무부담을 덜어주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전문가의 평가의견서가 타당한지를 전문가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타당한 경우 즉각 산재를 승인하는 것이 적절한 절차일 것이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간호사들의 산재신청이 처음이어서 자신들은 전문성 부족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니 자신들이 추천하는 의학 전문가와 인간공학 전문가들이 다시 역학조사를 벌이도록 하겠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면서 이들에 대한 산재승인 절차를 늦추고 있다. 이는 자신의 병원에서 또는 자신들의 담당 관내 사업장에서 최초로 근골격계 질환자가 발생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일부러 회피하는 행정편의적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도적 지연 또는 책임의 전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그동안 많은 산재 노동자들이 지탄하는 대상이었다. 노동부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존재하는 부처이며,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과 복지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지 수익성을 따지는 시중의 손해보험사가 아니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이번 간호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에 따른 산재신청은 이미 관련 학계와 외국의 자료와 사례에 의해 명백히 밝혀진 것이므로 신속히 산재로 승인되고, 인력의 충원, 설비의 개선 등을 통한 근무조건 개선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간호사들이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환자를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이 이런 유형의 산업재해로 승인되지 못한 것은 그 심각성이 덜해서가 아니다. 환자가 우선이라는 직업철학, 그리고 병원의 역학적 구조에서 가장 약자인 간호사들의 신분적 한계 탓에 고통 속에 묻혀왔을 뿐이다. 병원의 최우선 과제는 환자의 건강이다. 하지만 환자의 건강을 돌보는 간호사들의 건강도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 간호사의 건강은 환자의 건강을 위한 기초조건이기 때문이다.

김철홍/인천대학교 교수·노동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