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한·미 FTA의 ‘독립적 검토기구’가 의료기기 가격 올리는 선례 남기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도입된 ‘독립적 검토 기구’의 판단이 불일치하는 최초의 사례가 나왔다. 당초 업체의 가격 인상 요구를 기각했던 심평원 치료재료전문평가위원회(치재위)는 독립적 검토 기구가 건강보험 상한금액을 올리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뒤 기존 입장을 바꿨다. 다음달에 열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최종심의가 이뤄질 예정으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보건의료단체들은 의료기기 업체가 심평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외부 전문가가 한번 더 가격을 평가하도록 하는 독립적 검토 기구가 의료기기 가격 인상의 통로가 될 수 있다며 우려해왔다.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박주선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의료기기 업체인 준영메디칼은 지난해 치재위에 “2011년 재평가 과정에서 같은 품목군으로 분류된 다른 제품에 비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가격으로 조정이 됐다”며 아큐트랙 스크루(Acutrak Screw)의 상한금액을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치료재료는 미국 기업인 아큐메드가 생산하는 관절고정장치로 준영메디칼은 한국의 수입업체다. 치재위는 하지만 같은 목적의 유사한 재료와 비교할 때 특장점을 인정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조정신청을 기각했다.

 

한·미 FTA 5장(의약품 및 의료기기)은 한국 정부가 독립적 검토 기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독립적 검토 기구는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업체가 심평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외부 전문가가 한번 더 가격을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독립적 검토 기구의 결정이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준영메디칼은 지난 1월17일 독립적 검토 기구의 문을 두드렸다. 독립적 검토 기구는 지난 4월16일 “수입원가를 반영해 상한금액을 상향 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준영메디칼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검토 결과를 심평원으로 보냈다. 지난 11일 열린 치재위 6차위원회는 독립적 검토 기구의 ‘치재위 결정 불일치(번복) 결정’에 따라 아큐트랙 스크루의 건강보험 상한금액을 10%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독립적 검토기구가 처음으로 정부 기구인 치재위의 심의결과를 뒤집자 곧바로 치재위가 자신의 결정을 번복해 가격인상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따르면 이번 아큐트랙 스크루 가격 문제는 이전 치재위에서 준영메디칼의 가격인상 요구를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기존 재료보다 우수하다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거부한 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독립적 검토 기구는 어떠한 새로운 학술적 근거자료도 없이 정형외과학회의 가격인상 주장만을 근거로 치재위의 기존 결정을 부정했고, 이에 따라 치재위는 새로운 근거 없이 자신의 결정을 번복해 가격인상 결정을 내렸다.

보건복지부는 하지만 치재위의 결정은 합리적인 근거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관계자는 “준영메디칼에서 기존 제품보다 아큐트랙 스크루가 우수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논문 3편을 치재위에 제출했고 치재위원들이 이것을 참고했다. 이번 인상 결정은 독립적 검토 기구의 판단처럼 수입원가 때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치재위의 결정에 독립적 검토 기구의 결정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치재위의 결정에 따라 건정심은 다음달 아큐트랙 스쿠루 가격인상 건을 최종심의할 예정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건정심이 아무런 새로운 근거도 없이 독립적 검토 기구가 치재위 결정을 번복하고 의료기기의 가격을 인상을 요구했다는 것만을 근거로 가격인상을 결정하는 선례를 남기지 않기를 강력히 요구한다”며 “건정심은 독립적 검토 기구의 번복결정을 거부하고 이를 재심토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