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알코올 치료병원 폐업시키고 음주예방을 논한다?…두 얼굴의 주류업계

주류협회 지원 중단으로 카프병원 문 닫아… ‘알코올 유해성 감소 국제세미나’ 개최
시민단체 “파렴치하고 이율배반적인 행동”

 

한국음주문화센터(KARF, 이하 카프)가 운영하는 알코올 중독 치료전문병원인 카프병원이 한국주류산업협회의 출연금 미지급으로 사실상 폐업하면서 알코올 피해 환자 치료 및 재활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주류업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고조되는 가운데 주류협회가 ‘알코올 유해성 감소를 위한 국제세미나’를 개최키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주류협회는 오늘(25일) 국제건전음주연구기관인 ICAP(International Center for Alcohol Policies)와 함께 ‘알코올 유해성 감소를 위한 국제세미나’를 개최한다.

주류협회에 따르면 이번 국제세미나에는 미국, 호주, 대만의 음주문화예방 전문가가 참석해 각국의 건전음주를 위한 음주문제 예방프로그램을 소개한다.

특히 패널토의 세션에서는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정우 교수의 ‘해로운 음주 예방을 위한 각종 정책의 효과와 주류업계의 역할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과 ▲청소년흡연음주예방협회 ▲계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한국주류산업협회 등의 담당자가 참석해 건전음주 및 해로운 음주감소를 위한 역할과 상호협력 방안에 대한 토의가 진행된다.

주류협회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건전한 음주문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협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협회에서는 알코올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고 건전한 음주문화를 구축하고자 주류업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지 고민해왔다”며 “국제세미나를 통해 업계와 유관단체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제세미나는 주류업계가 음주로 인한 폐해를 예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5회째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며 “외국에서는 주류업계가 나서서 음주폐해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듯이 국내 주류업계에서도 이와 뜻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카프병원 정상화와 알코올 치료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 8월 21일 하이트 진로 본사 앞에서 알코올 중독 치료전문병원인 카프병원 폐쇄와 관련해 주류업계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국제세미나는 쇼에 불과”

그러나 시민단체는 주류협회의 국제세미나 개최가 ‘기업이미지 세탁’을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며, 특히 알코올 중독 치료전문병원에 대한 지원은 중단하면서 알코올 유해성 감소를 위한 국제세미나를 여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꼬집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변혜진 기획국장은 “국제세미나는 거짓 홍보를 위한 자리에 불과하다”며 “세미나의 이름을 그럴싸하게 지어놨지만 결국 정부기관 및 유관단체의 담당자에게 현재 주류업계에서 알코올로 인한 폐해를 예방하기 위한 활동을 잘 하고 있다고 알리는 자리일 뿐이다”고 말했다. 

변 기획국장은 “주류협회는 알코올로 인해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들의 실질적인 치료 및 재활을 담당해왔던 카프병원을 폐쇄시킨 장본인”이라며 “공동으로 주최하는 ICAP 역시 세계적인 주류협회의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박용덕 사무국장은 “주류협회는 카프재단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채 카프병원과 재단을 파행으로 몰아왔다”며 “이런 협회가 알코올 유해성 예방을 위한 국제세미나를 개최한다는 것은 쇼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의사단체인 행동하는의사회도 최근 성명서를 통해“카프병원의 우수한 치료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더욱 확대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운영과 치료가 중단되는 시대착오적 상황을 접하게 됐다”며 “이런 상황을 초래하게 된 일차적인 원인은 주류협회가 사회적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파렴치한 행동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카프병원과 재단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공공기관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알코올 정책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카프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변혜진 기획국장은 “음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주류에 대한 접근도를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복지부는 대형 주류업체들의 눈치를 보느라 규제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주류협회는 공익적 재단인 카프를 운영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복지부가 나서서 공공기관으로 재편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덕 사무국장은 “카프병원에 입원했던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민간병원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결국 자의로 입원한 환자들이 대부분”이라며 “민간병원은 비싼 입원료를 내면서 강제입원 및 강제약물치료 등 반복적인 임상치료만 해주는 반면 카프병원에서는 민간병원에서 해줄 수 없는 가족치료 및 상담, 재활치료 등을 함께 병행해 치료 집중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범죄, 교통사고, 가정폭력, 질병 등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도박이나 흡연보다 알코올로 인한 폐해가 더 심각하다는 점을 정부는 인식해야 한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진료만을 공공의료로 바라보는 복지부의 태도는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카프병원 노조와 시민단체는 25일 오전 주류협회 국제세미나가 열리는 서울팔래스호텔 앞에서 카프병원에 대한 주류협회의 출연금 납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다. 

카프병원 노조 정철 분회장은 “주류협회는 밖으로는 알코올로 인한 폐해를 예방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안으로는 카프병원과 재단을 죽이는 기만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며 “주류협회의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규탄하고자 기자회견을 계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 분회장은 “주류협회는 최근 이사회를 통해 내년 6월까지 50억원의 재단출연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경영진간의 합의를 전제로 두고 있다”며 “주류협회와 업체의 임원으로 구성된 경영진이 사퇴한 상황에서 합의는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협회의 기만적인 태도에 대응하기 위해 불매운동을 준비하고 있다”며 “조직화를 완료한 뒤 불매운동 시행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