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네번째)이 12일 서울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 합동브리핑에서 서비스 산업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의견이 다르다면 열띤 논쟁을 주저하지 않아야 하고 장애물이 있다면 돌파해야 한다”며 유망 서비스업 투자 활성화 대책과 관련해 이해관계자 등의 논란이 있더라도 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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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핵심적 내용 중 하나는 ‘투자개방형 외국병원’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 내 허용된 외국병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서 설립을 독려하고, 지난해 제주도에 설립하려다 승인이 보류된 ‘산얼병원’을 9월에 승인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만 외국인 병원을 설립하겠다는 게 뭐가 문제일까.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외국인 환자를 받기 위한 목적의 병원을 지어서 외국인 편의도 도모하고 경제적 효과도 거두면 좋지 않을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무늬만 ‘외국병원’에 대한 규제조차 없애겠다는 정부
우선은 명칭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 정부가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짓겠다는 ‘투자개방형 병원’은 영리병원이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영리병원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을 덮기 위해 정부와 의료상업화 옹호론자들이 지어낸 말일 뿐 어느 나라에도 없는 표현이다.
영리병원은 기업과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번 돈을 투자자에게 분배해 줄 수 있다. 이 병원은 투자자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성을 먼저 추구한다. 병원이 수익을 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환자들로부터 진료비를 더 받거나 인력을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영리병원의 진료비가 비영리병원보다 20%나 더 비싸고 과잉진료가 만연하다고 하는 것이다. 또 필수 의료를 등한시하고 인력을 감축해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환자와 병원 인력의 고혈을 빨아 투자자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바로 영리병원이 하는 일이다.
한국엔 아직 이런 영리병원이 한 곳도 없었고, 법으로도 금지되어 있었다. 이것이 일부 법적으로 가능해진 것은 2003년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영리병원이 허용되면서부터다. 이 영리병원은 처음에는 외국인만 설립할 수 있고 외국인 환자만 받을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그런데 정부가 법을 슬금슬금 개정해 지금은 국내 환자도 진료할 수 있고 국내 자본이 진출할 수 있는 병원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그나마 ‘외국병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주 최소한의 규제조차 없애려고 한다. 바로 ‘외국인 의사를 10% 이상 고용하고 병원장 및 진료의사결정기구의 50% 이상을 외국인으로 두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무늬만 ‘외국병원’인 것도 거추장스러워 지워버리겠다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은 현재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새만금·군산, 대구·경북, 충북, 동해안 등 전국 주요 8개 지역에 허용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사실상 국내 영리병원을 전국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건강보험 무너뜨리는 영리병원, 먼 일 아니다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정부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영리병원과 달리 기존 병원들은 모두 건강보험이 유지될 것이므로 아무 문제가 없고, 의료민영화도 아니라고 한다. 내국인 환자들이 굳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싼 영리병원을 이용할 리 없다는 것이다.
▲ 강남의 ‘차움’은 입회비만 무려 1억7000만 원에 연회비가 450만 원 수준으로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각종 과목 진료뿐 아니라 초고가 유사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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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싼’ 치료에는 수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강남의 ‘차움’은 입회비만 무려 1억7000만 원에 연회비가 450만 원 수준으로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다. 차움은 의료서비스와 부대사업을 각각 분리해 운영하는 등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이곳에서는 각종 과목 진료뿐 아니라 초고가 유사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번 규제완화는 의사들이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이런 병원을 짓고 건강보험에서 벗어난 고가의 진료를 통해 돈을 벌겠다고 하는 것을 한층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이른바 ‘명의’들과 부유층 환자들은 영리병원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부유층이 아니더라도 하나뿐인 내 몸의 진료와 수술을 최고의 전문가에게 받고 싶어 하는 환자들도 영리병원으로 향할 것이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병원이 확산되면 한국의 모든 병원이 건강보험 환자를 받아야 한다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유명무실해진다. 또한 영리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 특히 부유층을 중심으로 건강보험 의무가입에 대한 불평이 커지게 되면서 건강보험 존속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다.
영리병원은 그 자체로도 주변의 비영리병원의 의료비를 상승시키는 ‘뱀파이어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리병원이 한 군데 생기면 지역의 병원들이 모두 영리병원의 상업적 의료 행태를 따라하게 되는 것이다. 의료비가 지금보다 오르면 현재도 보장성이 낮은 건강보험이 보험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기 힘들어진다. 부실한 건강보험의 빈 자리는 민간보험이 채워나갈 것이고 건강보험은 위축될 것이다.
또한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우후죽순 생기면 다른 지역 병원 경영자들의 영리병원 허용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이들은 이미 특정 지역에만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이 지역 차별이라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런데 지금처럼 외국병원이라 부를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제도 모두 없애버리면 이 병원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병원으로 지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마저 사라진다.
만약 영리병원이 전면화된다면 건강보험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껏 정부는 자본의 요구에 따라 영리병원의 규제를 점차 완화해 왔고 경제자유구역을 확대해 왔다. 영리병원의 확산과 전국적 허용은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위험한 줄기세포 병원 산얼병원을 국내 1호 영리병원으로?
이번 투자활성화대책을 통해 정부가 9월 내 제주도 영리병원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1호 영리병원이 설립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 주인공은 지난해 보건복지부에 설립 승인을 요청했으나 보류된 중국 CSC그룹의 ‘산얼병원’이다.
CSC그룹은 중 천진화그룹의 자회사로 ‘중국줄기세포’(차이나스템셀, China Stem Cell)에서 나온 말이다. 현재 불법 줄기세포 시술에 대한 우려와 여론 악화로 이름을 중국산얼헬스컴퍼니로 바꾸었다. 줄기세포 관련 규제가 약한 중국에서 줄기세포시술을 주로 하던 병원이다.
CSC그룹이 운영하는 ‘북경산얼병원’(전 왕징신청병원)은 2층 규모의 작은 병원으로 그마저도 2009년 6월 신종플루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진료해 영업정지를 당한 바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CSC그룹은 버진아일랜드에 세워진 페이퍼 회사(‘채무만 있고 채권은 없는’)로 사기에 가까운 줄기세포 기술로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사업을 해 온 조세회피 기업이다.
게다가 자산으로 홍보한 광산도 실체가 없고, 줄기세포도 효과가 없으며, 줄기세포의 효능을 광고하기 위해 사용한 독일과 유럽의 특허와 연구 역시 허구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중국 내에서 시행하고 있는 줄기세포 치료 역시 2011년 발표한 중국 복지부의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어 중단된 상태임을 밝히고 있다’고 한다(관련기사 : 국내 영리병원 1호 산얼병원 수준, 참 한심하다).
▲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한 과수원. 국내 1호 영리병원이 들어설 싼얼병원 부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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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당시 “이 병원이 불법 줄기세포 시술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만한 자료를 내놓지 못했고, 이에 대한 제주도의 모니터링 계획도 부실하다”고 반려 이유를 밝혔다. 그러자 CSC그룹은 ‘줄기세포 관련 시술을 포기하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해당 기업은 이미 중국과 동남아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항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등이 더 필요하다’며 끝내 승인을 보류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투자활성화대책에서 이 병원을 국내 영리병원 1호로 지정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이 병원이 사업계획서에서 줄기세포 기술을 삭제해 승인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줄기세포 시술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았을 때도 씻을 수 없었던 정부의 깊은 우려가 어떻게 이렇게 말끔하게 사라진 것일까?
(줄기세포 연구 치료가 주력인 병원이) 사업계획서에 시술 계획이 없다고 해서 과연 그것을 포기할까. 만약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이 부실하고 의혹투성이인 병원을 승인한다면 정부는 영리병원 설립 사례를 만들기 위해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영리병원 도입 중단하고 공공의료 강화해야
현재 정부는 비영리병원의 영리자회사를 도입하려 하고 있고, 이번 6차 투자활성화대책으로 대학병원의 영리자회사 도입까지도 명확히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비영리병원의 영리자회사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사실상 국내영리병원을 도입해서 국내 의료체계 전체의 영리화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의료가 아예 민영화된 미국식 의료공급체계를 도입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고 가계의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미국식 의료 체계의 도입은 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이번 정부 정책은 돈 없는 환자는 치료를 포기하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지난 12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영리자회사는 영리병원이 아니”라며 “다른 부처 누구라도 영리병원 허용을 주장한다면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건다는 각오로 반대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문형표 장관은 장관직을 걸고 본인의 말한 바를 지켜야 할 것이다.
현재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무제한 허용된 영리병원 허용 법률을 개정하여 영리병원 도입 시도를 차단하고, 지금이라도 공공의료 강화에 힘 써 아픈 사람들이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