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 받던 18세 소년, 왜 사흘만에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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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두 달간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관심을 모으고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아이스버킷이 한창 유행이었다. 이런 행사를 통해 루게릭병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의료인으로서 루게릭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루게릭병 치료제에 대한 최신 정보를 찾아볼 겸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뉴로나타-알주’라는, 루게릭병에 대한 줄기세포 치료제의 시판이 허가됐다는 지난 7월 30일 식약처 보도자료를 보았다. 이는 국내에서 네 번째, 세계적으로는 다섯 번째로 허가된 줄기세포치료제였다.

전세계 줄기세포치료제 5개 중 4개가 한국서 허가… 네이처 ‘일침’

그런데 이상했다. 아이스버킷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며 루게릭병에 대한 사상 초유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등장한 이 치료제에 대해서는 오로지 국내 언론만 보도했다. 줄기세포 중 세계에서 다섯 번째, 루게릭병 치료제 중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허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지금까지 세계적으로 품목 허가를 받은 루게릭병 치료제는 미국FDA 승인을 받은 리루텍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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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8월까지 전세계에서 품목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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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에서 보듯이 전세계에서 줄기세포 치료제로 품목 허가를 받은 제품은 5개뿐이다. 그 중 4개는 한국기업이 한국에서 허가를 받은 것이다. 반면, 세계적 바이오기업들이 가장 많고, 가장 이른 시기에 개발을 시작했으며, 현재 많은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이 이루어지는 미국에는 정작 허가를 받은 치료제가 없다. 심지어 미국 기업인 오시리스는 캐나다와 뉴질랜드에서 품목 허가를 받았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국의 의학 기술이 이루어낸 개가로 봐야할까. 외국 과학잡지 <네이처>는 한국의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대해 여러 차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2010년 RNL 바이오가 만든 줄기세포 치료제로 인해 두 명의 환자가 사망한 전례가 있다(물론 해당 기업은 환자 사망과 줄기세포 시술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지속됐다). 아래 기사 내용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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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줄기세포 치료제 허가의 허술함을 지적한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 기사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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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동료평가(peer reviw) 데이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줄기세포 치료제를 허가해 준다’는 제목의 기사다. ‘식약처 관계 공무원들은 국제 기준에 따라 심사했다고 주장하지만 해외 전문가들은 한국의 식약처는 허가절차에 있어 너무 성급한 것 같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한국에서 허가된 줄기세포치료제의 경우 (중요한 검증 절차라고 할 수 있는) 동료평가(peer-review) 논문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식약처와 관계부처에서 내보낸 홍보성 기사들에 의한 정보’가 대부분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있다.

<네이처>가 이런 충고를 해서가 아니라, 줄기세포 치료제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한국에서만 줄기세포 치료제가 허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치료제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그 치료제의 시험 대상자가 될 국민의 생명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설상가상으로 박근혜 정부는 최근 6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며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에 대한 규제를 더 풀어버렸다.

안전성 우려에도 ‘자가 줄기세포 치료제→모든 줄기세포 치료제’로 확대

(개선방안) 연구자 임상의 상업화 연계 지원 및 연구대상 확대
상업 임상 1상을 면제할 수 있는 연구자 임상 인정범위를 현행 자가줄기세포 치료제에서 모든 줄기세포 치료제로 확대(식약처 고시 개정, 14년 하반기)

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이 규제완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 전문용어와 임상시험 과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새로운 약물이나 치료제는 사람에게 투여해보기 전에 흔히 동물실험으로 대표되는 ‘전(前) 임상시험 단계’를 거친다. 이 전 임상시험에서 효능과 안정성이 확인되면, 비로소 직접 사람을 대상으로 시험을 하게 되는데 이를 ‘임상시험’이라고 한다.

이 임상시험은 다시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임상 1상은 건강한 사람이나 특정 환자군을 대상으로 치료제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임상 2상, 3상 단계는 임상 1상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치료제가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는 단계이다. 그런데 이 임상시험은 그 목적에 따라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임상시험 중에서 연구자가 학술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외부의 의뢰 없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경우를 ‘연구자 임상’이라 하고, 기업이 시판 목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경우를 ‘상업 임상’이라고 한다. 그 목적이 다른 만큼 관리 수준도 다르다.

즉, 상업 임상의 경우 그 결과물이 많은 환자들에게 직접 적용될 것이기 때문에 기준이나 평가가 보다 엄격하고 그 승인과 관리 주체는 식약처가 된다. 연구자 임상의 경우 그 승인과 관리를 연구자가 소속된 기관의 자체 임상시험심의위원회(IRB)에서 하게 된다(단, 줄기세포 치료제의 경우엔 연구자 임상이라 해도 식약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자, 이쯤에서 다시 정부가 발표한 문장으로 돌아가 보자. 문장을 해석해 보면 현재 연구자 임상 1상의 결과를 상업 임상 1상으로 갈음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식약처는 2012년 ‘자가세포치료제의 연구자임상시험이 상업화 연계가 용이하도록’, ‘자가세포치료제의 연구자 임상시험 자료 또는 전문학회지에 게재된 자료로서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 이를 초기 안전성 임상시험 자료로 갈음’하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뀌기까지의 과정부터 참 씁쓸하다.

학술지에 실렸다고 안전성 입증? 황우석 사건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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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9년 10월 26일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황우석 박사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정부지원 연구비 횡령과 난자를 불법으로 매매한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은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법정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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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뜬금없이 ‘자가유래 세포치료제는 연구자 임상 또는 임상 1상 종료 후, 2, 3상 조건부 품목허가’를 내용으로 하는 방안을 대표발의 했다. 안전성 평가만 되면 효과는 나중에 검증하고 일단 팔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이런 정신 나간 발의에 식약처는 나름 올바른 입장을 내놓았다.

‘세계적으로 의약품 허가 규정에 임상시험을 면제한 경우가 없는 점, 자가 줄기세포치료제라 할지라도 체외에서의 배양을 거쳐 대량으로 투여되므로 안전성 문제 발생의 우려가 있는 점, 현재까지 줄기세포치료제에 대한 연구가 초기 단계이고 전 세계적으로 허가받은 제품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이 방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식약처가 이 나름의 기준을 지키려하자 2011년 9월 1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줄기세포 R&D 활성화 및 산업경쟁력 확보방안 보고회’에 직접 참석해 “너무 보수적으로 하면 남들보다 앞서갈 수 없다”며 식약처(당시 식약청)에 업계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 개선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결국 2012년 3월 ‘안정성이 확보된 경우’라는 애매한 문구를 넣고 개정에 대한 특별한 의학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가세포치료제의 연구자 임상시험 자료 또는 전문학회지에 게재된 자료’를 상업 임상의 안정성 자료로 갈음해주었다. 의학적, 윤리적 기준 하에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변경해야 할 이러한 중대한 문제가 정치적 입김에 의해 이처럼 간단히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 내용은 더욱 문제다. 연구자 임상의 경우 말 그대로 ‘순수한 연구로서 시험적인 관찰’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시판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 임상에 비해 임상시험 대상자가 상대적으로 적을 가능성이 크다. 보건복지부가 스스로 2014년도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 공모에서 연구자 임상을 ‘소규모 임상연구를 통해 인체내 안전성 및 치료효능을 검증하게 하여 실용화를 촉진’하는 작업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환자들에게 곧장 적용하게 될 상업 임상에 연구자 임상의 결과를 함부로 눙쳐 적용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황우석과 오보카타 하루코 논문 조작에서 보았듯, 최고의 학술지로 불리는 <사이언스>와 <네이처>도 이른바 ‘학술논문’에 속아 넘어가는 마당에 전문학회지에 실렸다고 안전성 평가를 마친 것으로 갈음해준다는 발상은 가히 놀랍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자가유래 줄기세포 치료제에만 해당하는 규정을 ‘눈 딱 감고 화끈하게’ 모든 줄기세포 치료제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자가유래 줄기세포는 말 그대로 자기 몸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배양·증식해서 자기 몸에 넣는 것이기 때문에 의학적, 윤리적으로 그나마 문제가 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를 다른 사람에게서 추출한 동종유래 줄기세포와 동물에게서 추출한 이종유래 줄기세포에 적용할 경우 그 위험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식약처는 이에 대해 세계적 기준에 준거한 그 어떤 객관적인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안전성이 확보된” 치료제만 허가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숨은 ‘신의 한 수’

언론에 따르면, 한 달 반 전인 7월 박근혜 정부가 ‘줄기세포·재생의료 치료기술 개발 전략로드맵(TRM)’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박소라 GSRAC 센터장(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식약처가 줄기세포 치료제 제품에 대해 허가를 내줬던 것은 “사실 ‘기준’에 맞아서 이지(허가를 내준 것이지, 세계적 기준대로) 5~10년 관찰 뒤 허가를 받아야 했다면,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또 그는 또 “줄기세포는 오랜기간 임상을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가 사망을 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수 있는 등 제약이 많다”면서 “이는 곧 상품화가 수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이 인허가를 잘 안 하는 이유는 명확한 기전이 없기 때문”이라고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허가 기준의 차이에 대해 상당히 솔직하게 언급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 아래 가장 주목 받는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자도 인정하는 사실을 식약처와 바이오산업계만 아니라며 항변을 늘어놓고 있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강기신 실장은 “우리나라는 오히려 규제가 강하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말대로 그렇게 강력한 규제를 통과한 한국의 줄기세포 치료제가 왜 미국 FDA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일까?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왜 다른 나라로 수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정부의 말처럼 신성장동력답게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와야 할 텐데 말이다.

바이오업계는 대한민국 국민들만 대상으로 장사하지 말고 스스로의 말처럼 “세계적인 기준에 맞는 대한민국 식약처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기업답게 외국의 허가라도 좀 따와서 <네이처>에 조롱당하는 대한민국 식약처의 위상을 높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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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시험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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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의 경우 막대한 비용과 시설이 필요한 만큼 연구자 임상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렇다. 지금까지는 사실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2013년부터 연구자 주도 임상(investigator-initiated trial)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민의 세금으로 연구자 주도 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연구자들이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연구자 주도 임상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비용이나 시설을 스스로 마련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연구자 주도 임상이라 할지라도 기업이 시설과 비용을 합법적으로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다. 핵심은 피험자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있다. 임상시험은 연구에 대한 총체적 관리와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따라 연구자 주도 임상과 의뢰자 주도 임상으로 나뉜다. 연구자 주도 임상은 주로 연구를 맡는 대학병원의 의사가 그 책임을 지고, 의뢰자 주도 임상은 주로 임상시험을 의뢰한 기업이 책임을 진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박근혜 정부의 계획대로 모든 줄기세포 치료제가 개발되면 기업은 꿩 먹고 알 먹는 셈이 된다. 사람에게 처음 써보는 것인 만큼 가장 많은 사고와 부작용이 우려되는 임상 1상 안전성 평가가 연구자가 책임지는 형태로 확대되고, 이 결과를 바로 자신들이 제품을 만드는 데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부가 부추긴다고 해도 연구자가 정부 지원금 몇 푼에 그런 위험 부담을 지겠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바로 여기에 6차 투자활성화 대책의 ‘신의 한 수’가 들어있다. 즉, 의과대학이 독립적 기술지주회사를 갖고 이를 통해 영리자회자를 두어 투자자를 직접 받을 수 있게 되면 바이오기업의 직간접적인 후원이 병원과 의사에게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6차 투자활성화대책이 강조하고 있듯 기술지주회사를 통한 특허와 인센티브가 연구자에게 대폭 제공될 경우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는 의과대학이 기술지주회사를 통해 만든 영리자회사의 스톡옵션까지 교수(의사)에게 제공하도록 친절히 권유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 켈시 여사가 필요한 이유

▲  대한민국을 뒤흔든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의 실체를 파헤치는 진실추적극 <제보자> 중 한 장면. 서울대병원은 2005년 황우석 박사 붐에 편승해 1만4천명의 환자를 모아 세계줄기세포허브 구축을 꿈꿨으나 지금은 폐쇄된 사이트에 사과문 하나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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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사)가 정작 시험 대상자인 환자가 알지 못하는 이러한 이윤 동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료윤리상 큰 문제다. 그리고 실제 역사상 많은 사고를 유발시켰다.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한국사회가 경험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조작 사건도 사실 엄청난 연구비 집중과 연구 결과의 상업적 가치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인해 빚어진 결과였다. 그런 쓰라린 경험에 대한 학습효과도 없이 정부가 이러한 재앙을 또다시 부추기려 하는 것이다.

199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일어난 젤싱어 사건에서 보여주듯이 환자는 의사가 순수한 목적으로 자신을 임상시험한다고 믿는다. 젤싱어는 오르니틴 카르바밀전이효소 결핍증(ornithine transcarbamylase deficiency)을 앓고 있었으나 치명적인 장애는 없이 투약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던 18세 소년이었다. 인류의 의학발전에 기여한다는 공익적 가치와 연구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젤싱어의 가족은 위험성이 큰 유전자 치료제 임상시험에 동의했다. 그러나 시험약을 주입한 지 사흘 만에 젤싱어는 사망했다.

연구자에 대한 신뢰가 컸던 젤싱어의 부모는 사망 후 오히려 연구자를 방어했다. 그러나 미국 식약청 조사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연구자 윌슨과 펜실베이니아대학은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전 임상시험의 치명적인 부작용들을 보고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대학과 윌슨은 연구 의뢰자인 바이오기업 제노보 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제노보는 윌슨이 설립한 연구소로 매년 윌슨의 연구비용 20%를 대주고 있었으며, 그 대가로 제노보는 윌슨의 연구결과를 제품화 할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경제적 이해는 연구자와 대학의 윤리성을 쉽게 파괴시켰다.

그런데 베이-돌 법안(1980년 특허 및 상표에 관한 법의 개정안, 이 법안의 주요 골자는 미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은 공공연구소, 대학, 비영리연구소 등의 연구결과를 그 기관이 특허를 출원하고 기술사용료를 받을 수 있게 허가한 것이다)이 존재하고, 가장 앞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이 시작됐고, 가장 많은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아직까지 단 한 개의 줄기세포 치료제도 허가하지 않았다.

이는 결코 그들이 기술이 부족해서나 자금이 달려서가 아니다. 오직 하나의 이유, 즉 안전성 때문이다. 미국 FDA는 한국의 식약처와는 달리 오히려 줄기세포 치료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자국민이 과장된 줄기세포 치료제 광고에 현혹되지 않고, 불법시술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공식적인 경고를 게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FDA가 이러한 기준을 고수하고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게 된 계기는 1960년 켈시 박사 덕분이었다. 1957년 시판되기 시작한 수면제와 입덧치료제로 쓰인 탈리도마이드는 1만 명이 넘는 팔다리가 없거나 짧은, 이른바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를 만들어 냈다. 바로 이 탈리도마이드가 1960년 미국에서 시판허가를 신청했을 때 이 약의 허가 담당업무를 켈시 박사가 맡았다.

그녀는 신입사원이었음에도 이 회사가 유럽에서 점차 알려지고 있던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제약회사의 온갖 압력을 버티며 시판 허가를 지연시켰다. 그녀로 인해 미국에서는 탈리마이드로 인한 부작용이 단 17건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미국 FDA는 유럽의 권위를 넘어 전세계적인 위상을 얻게 됐다.

6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의과대학은 물론 식약처와 같은 공공기관마저 더욱 심화된 상업화 흐름에 내몰릴 것이다. 생명의료윤리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젤싱어의 죽음을 통해 베이-돌 법안으로 인해 상업화된 임상시험에 대한 개선조치가 겨우 논의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피를 보기 전에 막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켈시 여사가 필요하다.

 

 

최규진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기고되었습니다. 출처 : http://school.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32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