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판결을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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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판결을 해서는 안된다

 

- 정당해산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진보적 사회운동에 대한 탄압

 

 

어제(17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선고 기일을 내일(19일)로 정했다고 밝혔다. 작년 11월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사상 처음으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한지 13개월 만이다. 우리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공안기관이 앞장서 통합진보당을 탄압하고 이석기 의원을 ‘내란음모죄’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비록 박한철 헌재소장이 지난 10월 국정감사 오찬자리에서 연내 처리하겠다고 말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중차대한 판결을 서두르는 것에 대한 우려를 그칠 수 없다.

 

첫째, 박근혜 정부의 국면전환용 카드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져서는 안된다.

최근 들어 세간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바로 이른바 ‘실세’ 정윤회의 국정개입 의혹에 관한 것이다. 지난 1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취임이후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주요 지지층인 보수, 노인, 대구경북지역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이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리얼미터는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정치적 위기를 다시금 케케묵은 색깔론으로 돌파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통일 토크 콘서트’에 대한 황산테러 사건을 두고 대통령은 “종북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고, 한 여당 의원은 너무나 솔직하게도 “정윤회씨가 황선, 신은미, 이석기보다 더 잘못했다는 건가” 물으며 그 속내를 드러냈다.

게다가 대법원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의 소위 ‘내란음모’ 상고심에 대한 심리가 오늘부터 들어간다. 정당해산심판에 있어서의 가장 주요한 근거가 되는 판결이 최종 선고를 한 달 이상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정당해산심판 선고를 내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둘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법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 것이다.

정당 해산에 대한 역사적 논의와 제도 개혁은 정권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다수 세력이 소수자를 억압하는 것을 막고 정당의 자유를 보장해주기 위한 쪽으로 발전해 왔다. 바로 자유당 정부가 자의적으로 진보당을 해체한 것과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헌법분야의 유엔’이라는 베니스위원회의 ‘정당의 금지와 해산 및 유사조치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정당해산은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하고 해산을 위한 행동을 취하기 전에 ‘위험’을 막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에서의 관용과 다원성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당해산은 극히 제한적으로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바로 법무부가 통합진보당의 강령 중에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에서 사용하는 용어라는 근거를 들어 정당을 해산하려는 것을 막고자 함이다.

게다가 내란음모의 근거가 되는 모임에서 오간 논의들은 구체적 실행 가능성도 낮고, 전망 인식도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 수준에 불과했다. 또한 논의되었다는 내용에 대한 이른바 ‘녹취록’도 주요부분이 왜곡되고 조작되어 그 진위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자료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런 정도의 논의에 국가 공안기구가 총동원되어 호들갑을 떠는 것은 헌법 제19조에 명시한 양심의 자유를 억누르고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위축시키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

 

셋째, 정당해산심판의 숨은 목적은 진보적 사회운동에 대한 체계적 탄압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부터 한편으로는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공공부문을 민영화함으로써 자본에게 투자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최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다시 들고 나와 대통령이 직접 몇 차례나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기조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공무원 연금개악이나 담뱃값 및 공공요금 인상과 같이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조세를 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강력한 신자유주의 개혁조치가 계속됨에 따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정부가 공안사건을 일으켜 진보운동을 탄압하고 불만을 잠재우려 했던 일은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이다.

작년 12월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한창일 때 노조 현장조직인 ‘한길자주노동자회’의 국가보안법 사건을 발표한 것과 마찬가지로,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을 정부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서두른다는 의혹을 떨치기 어려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정당의 해산을 규정한 헌법 제8조 4항에 명시된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는 민주주의 내에서의 다원성을 해치고자 하는 행위를 제재하기 위한 장치이지, 정치적 적(敵)을 탄압하기 위함이 아니다. 헌법의 전문에도 언급이 되어있는 4・19 혁명을 비롯해, 5・18 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항쟁을 거쳐 피와 땀으로 이룩한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헌재는 결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헌재가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에 반하는 판결을 한다면 그 판결을 한 9명의 헌법재판관들은 민주주의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다.<끝>

 

 

2014. 12. 18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