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기요틴 및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 대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입장
-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규제가 아닌 의료민영화를 폐기하여야 한다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올해도 계속될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규제완화 및 민영화 의지 선포였다. 의료서비스를 “미래성장 동력,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으며, 규제 개혁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언급하면서 “연말에는 규제 단두대 방식을 적용하여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규제들을 전격 해결하였[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규제개혁은 경제의 중심을 정부에서 민간으로 옮기는 핵심”이라며 규제완화가 바로 민영화임을 자인했다.
대통령이 언급한 ‘규제기요틴’ 회의에서는 의료민영화 정책들로 국민들에게 이미 알려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원격의료, 영리병원 및 의료정보 활용 의지가 재천명되었고, 의료기기에 대한 추가적 규제 완화 등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반하는 정책들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지난 한 해 동안 쉴 새 없이 의료민영화 정책들을 쏟아냈던 정부가 계속해서 경제단체들만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반민주적, 친기업적 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단두대에 올리려는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며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환자 의료정보에 대한 규제완화는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규제기요틴 회의에서 “의료정보의 외부 보관 및 공유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료정보는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로 철저히 보호되어야지, ‘공유’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미 한국에서는 의료정보 유출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한 의료기록 프로그램 업체가 환자들의 신상과 의약품 처방 내용 등이 포함된 진료기록 5억건 이상을 빼돌려 팔아넘긴 것으로 알려지며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정보에 대한 규제를 더욱 완화하는 것은 향후 더욱 심각한 유출사고를 정부가 부추기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의료정보를 가장 앞장서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이를 완화하려는 핵심적 이유는 바로 원격의료 추진이다. 지난 8월 정부가 내놓은 6차 투자활성화대책에도 이것이 “의료‧IT 융합 및 활용”을 위한 조치임이 언급되어 있다.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된 바 없고 국민의 의료정보까지 유출될 원격의료가 의료기기 및 통신기업의 이윤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정보는 기업의 다양한 돈벌이 수단으로도 사고 팔릴 수 있다. 이것이 취업 등에 부당하게 이용되거나 민간보험회사의 보험금지급 거부에 활용될 경우 프라이버시 침해가 심각할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직접적 피해를 줄 것이다.
둘째,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의료민영화 정책들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정부는 대표적 의료민영화 정책들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 원격의료 허용, 영리병원 규제완화를 조속히 추진하고, 메디텔과 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대해서는 추가적 규제완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를 포함한 공공적 사회복지 영역을 ‘산업’으로 규정하고 경제부처인 기획재정부에 사실상 전권을 부여하는 의료민영화 추진 법안이다. 경제자유구역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외국인 영리병원의 외국인 규정을 점차 없애 내국인 전용 영리병원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는 국민이 반대하는 영리병원에 대한 우회적 추진 정책이다. 정부는 메디텔에 대해서도 외국인 환자 관련 설립기준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하여, 메디텔이 외국 환자 유치용이라는 것이 결국 거짓이었음을 드러냈다. 메디텔은 종합병원 내 의원유치로 의료전달체계를 파괴하는 매개체이며, 보험사 외국인환자 유치알선 추진과 함께 민영보험사-병원 간 직접계약을 허용하기 위한 국내 규제완화용이다.
셋째, 의료기기에 대한 새로운 안전규제 완화조치는 국민 안전을 위협한다.
이번 개선과제에는 의료기기를 이용한 관련 기업의 요구를 해결해주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이 포함됐다. 먼저 ‘미용기기’ 분류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료인에게만 사용이 허용된 의료기기 중 일부를 규제 완화하는 것은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이는 의료기기 및 미용업 관련 자본의 이익에만 도움이 되는 조치일 뿐이다.
또한 디지털 헬스기기에 대한 ‘선제적 인증’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이 제도로 “신의료기기 인허가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고 조기 시장진입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에 소요되는 시간과 자원을 낭비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이미 의료기기에 대한 신의료기술평가 제도조차 무력화시키는 조치를 진행하였던 정부가 더 이상 국민의 안전장치를 파괴하여서는 안 된다.
넷째, 대통령은 국민 의료비 경감 문제와 복지 확대에 대하여 국민을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4대 중증질환에 대한 진료비와 3대 비급여 부담을 작년에 이어 지속적으로 낮출 것이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맞춤형 급여로 개편하여 더 충분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4대 중증질환 환자들에게 3대 비급여를 포함 치료비 전액을 보장한다던 약속을 누더기로 만들었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역시 최저생계비 기준을 폐지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를 넓히고 있을 뿐이다. 국민들은 경제 위기 속에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경제적 수준에 따른 건강불평등과 의료이용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국민을 속이지 말고 진정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을 위한 안전장치를 단두대에 올리겠다는 발상은 매우 부적절하며 위험하다. 정부는 규제기요틴에 대해 ‘비효율적이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를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선하는 규제개혁방식’이라고 설명하지만, 보건의료분야는 효율성이 아닌 공익성을 추구해야 할 사회보장 제도이며 시장실패의 영역이다. 의료규제는 기업과 정부에게는 서둘러 없애버리고 싶은 장애물이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과 규제기요틴 발표는 새 해에도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과 대척하겠다는 것을 드러낸 선전포고였다. 우리는 의료민영화 정책들을 막아내고 국민들이 바라는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의료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나갈 것임을 밝힌다.
2014. 1. 13.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