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헬스 산업전략 해부 ③] 인보사 사태로 본 약품 허가 간소화의 문제점 2
19.07.10.
전진한
▲ 식품의약품안전처가 3일 오전 의약품 성분이 뒤바뀐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확정해 발표했다. | |
ⓒ 연합뉴스 | 관련사진보기 |
무려 3700여 명의 피해자를 낸 인보사 사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허가 제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식약처는 기본적인 검증도 하지 않아 제품의 핵심 물질이 뒤바뀐 ‘가짜 의약품’을 허가해 줬는데, 심지어 허가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음에도 무시했음이 밝혀졌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식약처가 무능함을 넘어 국민의 안전을 포기·방치해온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애초에 인보사는 유전자 치료제인데도 세포 재생효과는 없고 통증 완화 효과만 있는 의문스러운 치료제였다. 통증 완화 효과조차도 생리식염수 위약과 비교해서 통과시켰다. ‘유전자 치료제는 기존 치료법에 비해 안전성 유효성이 현저히 개선돼야 한다’는 법률 규정도 무시한 것이다.
게다가 올해 3월 22일 상황을 보고 받고도 29일까지 인보사 판매를 중지하지 않아 27명의 추가 환자를 냈다. 이는 부패와 비리를 의심케 한다.
수많은 문제점이 ‘인보사 사태’에서 드러난 만큼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식약처의 친기업적 행태를 쇄신하고 임상시험과 품목허가 제도를 더 엄격하게 강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보사 사태는 규제완화가 부른 것이고, ‘재생의료’ 관련해서는 식약처 허가 부실이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재생의료 의약품 사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포치료제인 ‘크레아박스-알씨씨’, ‘콘드론’, ‘케라힐’, ‘뉴로나타-알주’ 등이 모두 제대로 된 검증절차 없이 허가됐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
문제의 핵심은 임상 3상 면제받는 ‘조건부 허가’
문제의 핵심은 ‘조건부 허가’ 제도다. 임상 3상(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은 1상→2상→3상 이렇게 3번 한다)은 환자군 다수를 대상으로 안전성·유효성을 확증하는 매우 중요한 절차인데, 이 3상을 통과하지 않은 채 환자에게 써보도록 하는 게 조건부 허가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3상시험을 피할 수만 있다면 많은 돈과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환자들은 그만큼 위험하거나 효과 없는 의약품으로 치료 받게 된다. 지금도 이 제도가 무분별하게 남용돼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이 수백만원의 고가로 환자에게 투여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세포치료제들도 모두 조건부 허가된 것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인보사 사태를 겪고도 규제를 강화하기는커녕 거꾸로 가고 있다. 규제완화법인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첨단재생의료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법은 유전자 치료제와 세포 치료제 조건부 허가를 더 용이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약업체들이 이 법을 목을 빼고 고대하는 이유다.
우선 이 법이 통과되면 별도의 ‘심의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곳에서 소위 ‘재생의료’ 전문가들이 바이오의약품 품목허가와 조건부 허가 관련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는 인보사 허가과정을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인보사는 원래 재작년 4월 심의위원회에서 다수가 반대해 허가에서 탈락한 약이다. 그러자 식약처는 두 달 만에 이례적으로 회의를 다시 열었고, 이 자리에 ‘재생의료’ 전문가들만 추가했다. 그리고 이들이 몰표를 줘 결과가 뒤집어졌다. 추가된 전문가에는 심지어 같은 동종 바이오업계 회사 대표도 있었다. 관련 업계와 학계 인사들은 밀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꼼수로 인보사를 허가한 식약처는 현재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데, 이런 일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이 법이다.
또한 조건부 허가란 원래 초기임상(1상, 2상)에서 기존 치료법에 비해 안전성 효과성이 현저히 개선됐을 경우에 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 법은 이런 요건도 없애버렸다. 게다가 중요한 조건부 허가 기준 대부분을 하위 법령에 위임해 쉽게 규제를 풀어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임상 3상시험을 나중에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조항도 없게 해놓았다. 황당한 일이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된다면 임상 3상이 면제된 유전자 치료제, 세포 치료제가 더욱 무분별하게 시중에 나와 환자 몸에 투여될 것이다. 지금도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는 식약처 허가절차는 더 부실해지고 인보사와 같은 ‘사기 의약품’이 더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이런 규제완화가 버젓이 추진될까? 의약품 안전에 대한 이 나라 식약처장의 인식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지난 4월 국회 법사위에서는 이 법안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여러 문제제기가 있었다. 여기에 이의경 식약처장이 어떻게 답했는지 보자.
▲ 이의경 식약처장이 6월 5일 오전 양천구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 투여 환자 안전관리대책을 발표했다. | |
ⓒ 연합뉴스 | 관련사진보기 |
일본으로 줄기세포시술 원정? 실체 파악 못하는 식약처장
“지금 이러한 진료를 일본에서는 다 오픈을 하고 허용을 해 주고 있어서 1년에 1만 명 정도가 일본에 이런 줄기세포시술을 하러 원정을 가고 있습니다. 그거는 국익의 낭비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신약개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시행착오가 다소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계속 전진해서 할 수 있어야, 지금 경제도 어려운데 이런 산업을 발전시키는 측면도 다소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좀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힘을 합해서 그거를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면…”
- 2019년 4월 4일 이의경 식약처장의 발언 중,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
이익만 좇는 영리기업을 감시하고 규제해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자리가 식약처장이다. 그런데 이의경 처장은 거꾸로 제약회사 CEO나 경제부처 수장이나 할 법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설령 경제부처라도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이런 방향의 정책을 추진해선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그리고 일본에서 다 허용했다는 재생의료의 실태를 알고는 있는 걸까? 일본은 줄기세포치료를 비롯한 재생의료에 대해 연구를 제외하고는 건강보험 영역 외 대체치료로 허용하고 있다. 즉 공신력 있는 일본후생성이나 일본의사회에서 인정하는 치료방법이 아니라, 일본건강보험제도가 보장하지 않는 비공식 영역에서 제한적으로 용인되는 치료이다. 마치 일본에서 이런 치료들을 완전히 학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인정한다고 봐서는 곤란하다.
이런 일본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한국인 환자들에게 근거없는 줄기세포 치료를 시술하는 일본 내 의료기관도 대부분 한국인이 운영하는 기관이다. 문제는 한국 업체들이 국내 환자들을 일본에 보내 해외원정 줄기세포 치료를 하다 사고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0년 9월 30일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본 내 의료기관에서 자가줄기세포치료제를 투여받은 임아무개(73)씨가 폐동맥 색전증으로 사망했고, 2016년 2월에도 일본에서 줄기세포치료제를 시술받은 70대 남성이 귀국 후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근거가 부족한 치료이다 보니 쉽게 사고가 발생하는데, 환자 입장에서 원인규명이 쉽지 않아 사과와 보상을 받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약처장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영국의 유명 학술지 <네이처>는 최근 각국 바이오업체들이 당국에 일본을 본받으라고 압박하는 현실을 우려하며 “잘못된 행동”이라고 단언한 바가 있다. 의약품 신속승인이 위험할 수 있고, 환자가 비용을 내고도 실험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네이처>는 “효과 있는 약물이 제대로 승인을 받아 출시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말한다. 당연한 주장인데도 이마저 반가운 이유는 온갖 언론들이 규제완화 목소리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그야말로 바이오 영리화·규제완화 광풍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보사는 ‘세계 최초 유전자 세포 치료제’라는 장밋빛 기대와 경제성장 논리, 그리고 기대를 먹고 자라는 바이오 주식 버블 속에 세상에 나타난 괴물이다. 그리고 이 괴물은 의료에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이라는 당연한 상식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오로지 정부 당국만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겠는가? 국민들이 다시 외칠 수밖에. ‘첨단재생의료법’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의약품 규제는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도록 강화되어야 한다.
원문보기 : http://omn.kr/1jz9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