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부실한 공공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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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병원 늘려 음압병상 확충하라

- 감염병 전문병원을 공공의료기관에 지정·설립하라

- 공공인프라로 감염병 전문인력 확보하라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환자수 증가 추세가 꺾이고 질환 자체의 중증도가 매우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점 등은 낙관적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사망자가 1500명에 이르고 있어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에서 정부의 대응은 박근혜 정부 메르스 사태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민간병원 수익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병원명 공개를 꺼리는 등 최악의 비밀주의를 고수했던 지난 정권과 비교하면 투명성 문제가 많이 개선됐다. 이는 메르스 사태의 교훈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공공병원과 음압격리병상의 부족, 전문인력 부족의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정부는 부족한 인프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임기응변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대응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은 것에 반성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에서 이번 사태가 재앙으로 번지지 않고 있지만, 만약 질병의 근원지가 한국이었더라도 중국과 달랐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중국은 지난 4일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서 후베이성 외 지역 치명률은 0.16%에 불과하다며, 우한의 높은 사망률(4일 기준 4.9%)은 중국 병원 인프라의 부족 때문이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우한 내 대규모 감염병환자 진료에 필요한 병원이 없어 여러 의료기관에 환자들이 흩어지면서 제대로 된 진료와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중국의 열악한 의료시스템이 진정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이보다 낫다고 볼 수 있는가?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아래와 같이 밝힌다. 이제라도 정부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첫째, 공공병원을 확충·지원해 음압병상을 늘려야 한다.

정부는 음압병상 부족 우려가 제기되자 최근 900개 병상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여러 면에서 부실한 주장이다. 먼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민간병원의 음압병상 지원을 500병상 가까이 받아야 목표달성이 가능하지만, 수익추구에 혈안인 민간병원들이 이를 극도로 꺼릴 때 강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민간병원 병실은 물론 지역거점 의료기관의 음압병상도 코로나19 관리에 부적합하다. 1급 감염병으로 분류된 코로나19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은 원칙적으로 대부분 공공병원인 국가지정 격리병실 161개 뿐이다.

그런데 국가지정 음압격리병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방의 국가지정음압병상은 경상남도에 병실 4개, 경상북도에 병실 3개, 전라남도에 병실 4개가 전부인 수준으로 매우 열악하다. 전남에 유일한 국립목포병원 음압병실은 그마저 시설이 낙후되고 인력이 없어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알려졌다.

지난 메르스 사태도 한마디로 공공의료의 위기였다. 발생 초기부터 이미 국가지정 음압격리병상이 부족해 제대로 된 관리가 어려웠다. 당시 국가지정 음압격리병상은 105개였다. 현재는 다인실 포함 198병상까지 약간 늘어난 수준이지만 이마저 박근혜 정부 때 있었던 일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 변화가 없다. 따라서 지금도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거나 유증상자가 동시에 몰리면 병상수급에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인 점은 마찬가지다.

이 정부가 공공병원 확충이나 감염병 인프라 마련은 뒷전이고 오로지 의료민영화만 추진하면서 생긴 결과다. 한국은 공공의료기관 병상이 OECD 최하인 10%다. OECD 국가 평균은 73.3%다. 근본적으로 민간병원으로 감염병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제 상식이 됐다. 이제야말로 정부가 공공병원을 늘릴 때다.

 

둘째, 감염병 전문병원을 공공병원에 지정·설립해야 한다.

최후의 보루인 국가지정 음압병상조차 감염병 관리에 최적화된 시설이 아니다. 격리치료실만 있을 뿐 필요한 지원공간이 존재하지 않아 종합적 감염관리가 어렵다. 병원당 2~10개의 소규모 음압병상을 운영하기 때문에 대량의 집단환자 수용도 불가능하다. 감염병 전문병원이 있어야 에볼라나 생물테러 등 고위험 신종감염병 대응을 위한 고도음압격리시설을 운영하고, 일시에 대량 감염병 환자가 발생했을 때 격리와 치료를 할 수 있다.

정부가 몰라서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 문재인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바가 있지만 그뿐이었다. 계획은 축소됐고, 예산은 삭감됐으며, 권역에는 민간병원인 조선대병원 한 곳을 겨우 지정했을 뿐이다.

그런데 감염병전문병원은 공공병원에 지정·설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역에 외상센터가 존재하지만 아주대병원 같은 민간에 위탁해 커다란 문제를 발생시킨 것처럼, 감염병전문병원도 수익성을 중시하는 민간병원에 지정해서는 제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공공병원에서 국가예산으로 적자가 나더라도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유럽국가들과 일본 등에서도 공공의료기관으로 감염병 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2016년 질병관리본부는 용역보고서를 통해 메르스사태 등 감염병 위기 시 제대로 대응하려면 136병상 이상 중앙감염병전문병이 필요하고, 5개 지역에 각각 50병상 이상의 권역감염병전문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밝힌 바가 있었다. 136병상조차 메르스 최대 재원환자수 기준으로 최소한일 뿐이다. 국민의 생명·안전을 위해 충분히 늘려야 한다. 정부가 의료민영화·규제완화로 돈벌이하겠다며 발표한 수없이 많은 계획과 바이오업체 퍼주기에 들이겠다고 발표한 수조원 세금의 일부만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셋째, 공공인프라 확충으로 감염병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국가지정 격리병상과 일반 격리병상, 보건소 등에 전문인력 부족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전국 13곳 검역소에도 역학-감염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알려졌다. 역학-감염전문가는 평상시 필요성이 낮고 수익을 남길 수 없지만, 일정 수가 훈련받아 유지되어야 감염질환 확산 시 대응할 수 있다. 감염병 전문인력이 평소에 존재하려면 공공병원이 존재하고 국가 책임 감염병 훈련·교육·연구기관 등 감염병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감염병전문병원이 필요하다.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해 공공의료 인력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 공공의대법이 통과되어야 하고, 서남대 뿐 아니라 여러 곳에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해야 한다. 국립대학교 의대의 경우 일정비율 정원을 늘려 이들을 무상으로 교육하고 대신 지역공공의료기관에서 예를 들어 10년 이상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정책 등이 고려돼야 한다.

또 메르스 이후에도 여전히 간병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딸을 간병하다가 감염된 사례가 나왔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확대돼야 하고, 충분한 간호인력 고용이 전제돼야 한다. 한국의 병상당 간호인력은 OECD 평균의 3분의 1 미만이고 간호사로만 따지면 5분의 1수준 밖에 안 된다. 누차 지적됐듯 민간병원 중심 의료체계의 폐해다. 정부는 병원에 간호인력 적정기준을 제시하고 강제하는 것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중국은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자 1000병상짜리 공공병원을 열흘만에 완공했고, 최근 상하이에도 짓고 있다고 알려졌다. 국가가 의지만 있으면 당장에라도 보건의료 인프라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너무 늦은 조처다. 한국 정부도 끝까지 운 좋게 감염병 재앙을 피해가리라는 기대로 국민 생명을 담보한 도박을 하지 말고 이제라도 재앙이 닥치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환경을 파괴해 야생동물 서식처를 없애고 공장식 축산을 시행하고 도시 밀집지역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한 우리는 늘 주기적으로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협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감염병 문제는 점차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의 발본적 변화도 필요하겠지만, 중국처럼 의료체계가 재앙을 키워내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문제도 시급하다.

정부는 이 사태가 종료되면 시민들이 또다시 망각할거라 기대하며 공공의료체계를 바로세울 책임을 져버려선 안 된다. 이는 우리 모두의 생존의 문제다. 보건의료인들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2020. 2. 14.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