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가 약 한 달 남았다. 최근 조사 결과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로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 평가에 동의한다. 건강보험과 공공의료를 강화해 누구나 걱정 없이 진료받고 감염병 등 재난상황에 대한 치료영역의 대비를 다하는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국회 책임은 하나도 수행되지 않았다. 반면 법안 처리율 최저라는 결과 속에서도 의료 영리화와 규제완화 악법들은 대거 통과돼 왔다.
의료정보 상업화, 제2의 인보사 재앙 법, 엉터리 의료기기 양산 법, 초법적 규제샌드박스 규제완화 법 등을 통과시키고 생명과 안전, 인권을 위한 규제들을 파괴해 온 20대 국회는 마지막 한 달을 속죄하는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 2차 유행이 예고되고 있는 지금, 최소한으로 통과돼야 할 공공의료와 건강보험 관련 법안들조차 거들떠보지 않아 폐기될 위기에 처하게 만든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즉시 국회를 열어 마지막 할 일을 하기 바라며 아래와 같이 강력하게 촉구한다.
1. 공공의과대학 설립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자 국가가 공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의사 부족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정부는 2차 유행 시에도 선량한 의사 개인들의 자발적 헌신이나 군 의료인력 동원으로 공적 보건의료 인력체계를 대체하려 해선 안 된다. 이런 미봉책으로는 규모를 예측할 수 없는 2차 유행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한국은 인구 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의 3분의 2 수준이고, 의과대학 졸업생 수도 인구 대비 OECD 평균의 절반밖에 안 되는 나라다. 그나마도 민간 중심의 상업적 의료 시스템 속에서 상당 수 의사들이 의료 취약지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기보다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돈벌이가 쉬운 분야로 쏠려있는 실정이다.
설령 정부가 공공의료기관을 늘려도 그곳에서 일할 전문 의료 인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공공의료 인력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공 교육기관에서 의사를 양성해 공공의료기관에서 상당 기간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 법안은 그 시작이다. 20대 국회는 반드시 이 법을 통과시켜 코로나19 사태 위기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할 일이라도 해야 한다. 이에 태만하거나 방해하는 정당이 있어서는 안 된다.
2. 건강보험 국고지원 정상화 법을 처리해 건강보험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건강보험법 상 불명확한 규정을 악용해 건강보험 국가예산 지급을 법정 비율보다 적게 지원해 온 것은 오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지금껏 정부가 미지급한 금액이 누적 24조 5천억 원이 넘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20%를 지급해야 하는 법적 기준을 어기고 이명박(16.4%), 박근혜(15.4%) 정부보다 적은 13.4%를 지급하고 있다. 보장성을 강화하겠다면서 시민들이 내야 하는 보험료율을 매년 대폭 올리면서도 말이다.
정부가 최근 ‘아프면 사나흘 집에 머물라’면서도 “상병수당을 도입하려면 작게는 8천억 정도, 크게는 1조 7천억 정도의 재원이 소요”된다며 난색을 표한 것은 어처구니없고 무성의한 응답이다. 작년에만 법을 어기고 3조 7300억 원 이상을 미납한 정부다. 오로지 정부의 의지 문제다. 거리두기에 필요한 사회정책은 펴지 않고, 이를 위해 필요한 국가책임도 다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그 책임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정부 의지가 없다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보장성이 OECD에서 최하 수준으로 낮고 미충족 의료비율과 재난적 의료비 지출가구 비율이 높은 나라다. 건강보험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최소한 국고지원을 정상화해야 한다. 정부가 어기고 있는 현행 20%조차도 일본 38.8%, 프랑스 52.2% 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 최소한의 과제조차 다음 국회로 또다시 미뤄서는 안 된다.
5월 한 달도 코로나19 2차 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국회가 전력을 다 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를 거대 정당들이 정쟁으로 소비한다면 역사에 죄인으로 남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또 우리는 정부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원격의료, 의료정보 상품화 등 규제완화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크게 우려한다. 공공의료를 확충하라는 국민의 요구에 원격의료로 응답하다니 황당하다. ‘디지털 뉴딜’이 아니라 ‘공공의료 뉴딜’이 필요하다. 부족한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의사·간호사 인력을 확충해 일자리를 늘리고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사회정책이 시급하다.
공공의료·건강보험 강화 법 통과가 잘못을 씻고 거꾸로 된 방향키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20대 국회 마지막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2020년 5월 7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가난한이들의 건강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기독청년의료인회, 대전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서울YMCA 시민중계실,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성남무상의료운동본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동조합,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