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세계화와 건강

** 다함께 신문 <다함께> 기고한 글입니다.

  세계화와 건강

변혜진(아래로부터 세계화 실행위원 /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

  세계화와 의약품접근권

  한국의 백혈병 환자들이 환자복을 입은 채로 거리로 나와 “돈이 없어 죽을 수는 없다. 글리벡 약값을 인하하라!” 라고 외치던 날, 우리는 “이윤보다 생명이다”라는 구호의 의미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는 ‘기적의 신약’ 글리벡을 개발한 후 WTO체제하의 TRIPs(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에 의해 보호되는 20년의 독점적 특허를 보장 받았다. 이 독점적 특허를 근거로 노바티스는 죽고싶지 않으면 1인당 월 300만원-600만원씩을 내놓으라고 전세계 환자들에게 요구했다. 노바티스는 이 죽음의 거래를 통해 노바티스 시판 이후 1년도 되기 이전에 개발비용 전체를 회수하였고 자신의 주식가격을 엄청나게 상승시킬 수 있었지만 전세계 대부분 백혈병 환자들에게 이 약은 사먹을 수 없는 죽음의 신약이었을 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0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각종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이들의 대부분은 지구의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다. 이들 중 300여만 명이 에이즈로, 200여만 명이 결핵으로, 200여만 명이 설사병으로, 그리고 100여만 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그런데 이렇게 죽어가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의 대부분 의약품을 구할 수 없어 죽어가고 있다. 전세계 에이즈 환자 3000만명 중 2800만명이 제 3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중 오직 0.01%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에이즈치료제를 쓸 수 있다.
90년대 이후 다국적제약회사이 거대 합병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WTO내 지적재산권의 보호 아래 보장되는 20년간의 특허권을 좇아 유사분야의 합병을 거듭한다. 이 과정을 통해 제약회사들과 농약과 제초제회사들, 종자기업들의 다국적 회사들의 순위를 보면 1위부터 10위가지 같은 이름들이 반복된다. 이들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기간동안 레이건 정부를 보조하던 자칭 ‘지적재산권위원회’가 고안한 내용을 기초로 마련된 WTO의 지적재산권협정으로 그들의 넘볼 수 없는 성역을 구축한 것이다.

  세계화와 식품안전성

  이처럼 다국적 제약자본들은 이제 약만 파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전세계 최대 의약품상인인 동시에 최대의 농약과 제초제판매업자이기도 하다. 2001년의 농화학분야 매출순위를 보면 노바티스와 아스트라제네카의 합병회사인 신젠타(Syngenta)가 54억달러로 1위이고 아벤티스가 2위이다. 이 두기업은 동시에 다국적 제약회사 중 가장 큰 회사들이다. 몬산토, BASF, 다우, 바이엘, 듀퐁이 그 뒤를 있는다. 작년 12월 30일 미국 녹색당은 ‘미국 정부기구들이 쇠고기 및 제약기업들과 유착하여 오염된 쇠고기의 인체위험을 은폐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미 녹색당 기관지 ‘그린 폴리틱스’ 편집자 마이클 코헨은 “거대제약회사들의 권고에 따라 미 정부는 이른바 ‘정제단백질‘, 즉 병든 동물을 포함한 소, 양, 및 다른 동물의 사체와 내장, 피를 갈아만든 사료를 소들에게 먹이는 방법을 택했”고 “동물이 생명체로서가 아니라 공업생산품으로 취급되는 이런 체계 하에서 소들은 대량의 농약과 유전자조작 성장호르몬, 대량의 항생제, 화학물질등을 무차별적으로 주입받고 이것이 생체안에 저장된 채 식육으로 팔려나간다.”고 말했다. 미국정부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광우병의 위험을 대중에게 알리기는커녕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선전을 하기에 바쁘다. 이는 물론 소의 공업적 생산방식으로 인해 거대한 이익을 취하는 미국축산자본과 제약-농화학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몬산토는 세계 50여 개국에 공장을 두고 유전자 조작 곡물의 90%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콩은 자사 제초제인 라운드업에 내성을 지니도록 유전공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모든 잡초를 죽일 수 있는 라운드업 제초제를 개발하고, 이어서 그 제초제에 견딜 수 있는 유전자 조작 콩을 개발해 몬산토는 종자와 농약 둘 다 판매함으로써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 있다. 유전자조작곡물에 대해 자신의 특허권을 지키려는 몬산토는 바람과 벌, 새 등에 의해 자신의 농장에 날아온 씨앗을 키운 농민들을 지적재산권침해로 고발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유전자 조작곡물의 안전성은 어느 누구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유전자조작식품표시제가 있다고는 현재의  제도로는 이를 감시할 수도 없고 동물사료에 포함되는 유전자조작식품들은 그 대상도 아니다.

  세계화의 구체적 이름은 경제자유지역

  세계화의 또 다른 이름은 사유화이다. 지구적 보건의료운동연대단체인 ‘민중건강운동 PHM’은 세계화에 따른 구조조정프로그램이 보건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복지부문의 투자축소, 공공의료서비스의 무상에서 유상으로의 변화, 의료부문의 사유화, 민간의료의 도시집중”으로 요약했다. 한국에서도 민중들의 투쟁에 의해 억제되고 역전되기도 했지만 정부와 자본의 추진방향은 일관된 사유화이다. 현재 의료부문 사유화의 집중된 고리는 경제자유지역이다.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핵심구상에 해당하는 동북아허브화 계획과 경제자유지역은 보건의료영역에서 사실상 실질적인 의료시장개방일 뿐만 아니라 의료부문사유화의 구체적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경제자유지역내에 동북아중심병원을 만들려면 외국병원이 들어와야 하고 외국병원이 들어올 만큼 ‘쾌적한 투자환경’을 조성하려면 내국인을 진료 및 본국에 대한 과실송금이 허용되어야 하며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허용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이 조치들을 추진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하나씩 외국병원이 있고 이들이 내국인을 진료하는 것은 실질적인 의료시장개방이 된다. 또 이들 외국병원자본은 한국에 진출하기도 전에 건강보험체계대신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을 먼저 도입하라고 주장한다. 전경련과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금융자본들은 반족짜리 연금제도의 개악과 더불어 반족짜리 의료보장제도의 사유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공약으로 의료공공성 강화를 내건 노무현 정부의 재경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경쟁력을 외치며 민간의보도입을 주장한다.
  그러나 남미 콜롬비아의 경우 민간의보를 도입한 후 전국민의 13%만이 민간의보에 가입할 수 있었고 나머지 국민들은 부유층이 모두 빠져나가 재정상태가 극도로 열악해져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이름뿐인 의료보험제도에 남아있게 되었다. 이것이 의료보험사유화이고 경쟁력 강화의 이름으로 추진되는 동북아중심병원구상의 실체이다. 현재도 중병에 걸리면 집안이 결딴나는 것이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이다. 의료보장성이 45%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쪽짜리 의료보험제도조차 아예 끝장을 내자는 것이다.  

  ‘세계화’는 이처럼 다국적기업의 이윤추구에 민중의 건강과 생명을 그 먹잇감으로 온전히 내놓는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한일FTA는 노동자들의 쟁의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안전기준의 개악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싱가폴 FTA에는 20년의 지적재산권도 모자라 50년, 70년의 특허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 한다. 단언컨대 건강은 사고 파는 상품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의 무제한의 이윤을 보장하는 그들만의 ‘세계화’에 맞선 우리들의 투쟁만이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