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회사의 복음 : 한미 FTA
– 한미 FTA 의약품 협상 : 이윤인가 생명인가
소아마비와 특허
당신이 30대 중반이상이라면 학창시절에 한반에 한 두명 정도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들이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소아마비 탓이었다. 오늘날 세계보건기구가 소아마비 박멸선언을 준비할 정도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소아마비가 과거의 질병이 된 이유는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백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된 수많은 질병들 중에 소아마비가 유독 ‘박멸’에 이르기까지 된 이유는 바로 개발자인 소크(Jonas E Salk)박사가 특허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태양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다”며 특허를 권유하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쳤다. 이 때문에 지금 세계보건기구에 납품되는 소아마비백신 1개의 값은 100원이다. 그가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의 100대 인물에 선정된 이유는 백신개발보다 연구성과를 인류의 공동재산으로 돌린 과학자 정신에 있었다.
소크박사가 주목되어야 할 이유는 바로 오늘날 세계가 직면해 있는 의약품문제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의 가장 큰 보건문제는 치료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에이즈(AIDS)다. 에이즈는 이른바 칵테일 치료법 여러치료제를 함께 쓰는 병행요법
이 발견된 이후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관리만 하면 활동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병이 되었다. 그러나 UN(UNAIDS)에 따르면 2005년에 에이즈 환자 중 정기적 치료를 받는 환자는 20%이며 임산부 중 치료받는 비율은 1.6%에 불과하다. NGO들의 보고에 따르면 제 3세계의 환자들 중 적절한 치료를 받는 비율은 1%미만 이다. 매년 300만 명이 에이즈로 죽는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에이즈환자에게 요구하는 약값은 최저 월 300달러다. 그런데 전체 에이즈 감염인이나 환자의 63%인 2,450만명이 사는 사하라남부 아프리카의 경우 전체인구의 44%가 하루 1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간다. 이들에게 에이즈치료제는 그림의 떡이다. 똑 같은 약을 인도에서는 월 20달러에 판매한다. 이 복제약만 사용해도 에이즈사망자를 분당 사망자로 계산해야 하는 이 황당한 현실은 쉽게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 값싼 복제약을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나라들은 모두 다국적 제약회사나 선진국들의 무역제재를 당했기 때문이다. 남아공, 브라질, 태국 그리고 최근에 부시대통령이 복제약 생산을 중단시킨 아프리카 6개국 등, 이 모든 나라들의 노력은 좌절되었다.
약값이 비싸야만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과 몇몇 선진국들이 이 같은 사실상의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다름아닌 ‘특허권의 보호’이다. 올해 한국정부가 약가절감을 위해 도입하려는 포지티브리스트 허가된 의약품 중 일부만을 건강보험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네가티브시스템과 달리 이중 비용효과가 뛰어난 일부약제만을 보험적용대상으로 하는 제도. 우리나라는 약 2만개의 약품이 보험적용대상이지만 포지티브리스트를 시행하는 호주, 프랑스, 스페인 등의 나라에서는 약 3000-5000개 정도의 의약품만이 보험대상이다.
에 대해 반대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주장도, 미국이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한국에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 ‘특허권의 보호’이다, 이들의 주장은 약값을 깎으면 신약 연구개발비용이 줄어들어 신약이 개발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주장하는 신약개발에 드는 비용은 신약 하나당 무려 8,000억원이다. 미 상무성도 이 주장을 똑같이 반복하면서 11개 주요국에서 약가절감정책이 포기될 경우 제약회사들이 더 벌어들일 돈이 65조원이라고 친절하게 계산까지 해놓고 있다. 진실은 어떠한가? 정말로 다국적 제약회사의 약값을 깎으면 우리는 새로운 약이 개발되지 않는 암담한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우선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벌어들이는 돈을 살펴보자. 2002년 포츈지 선정 500대 기업 중 제약사는 10개이다. 그런데 이 10개 회사의 순수익이 다른 490개 회사의 수익총합보다도 더 많다. 2001년 500대기업의 매출대비 수익률이 평균 3.3%, 2003년 4.6%인데 다국적 제약회사는 18.5%, 14.3%였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연구개발비라고 주장하는 비용은 그들이 올리는 순수익보다도 적다. 또 제약회사가 쓰는 마케팅 및 행정비용이 약 전체 비용 중 35%정도다. 전문인이 처방하는 신약의 광고비용이 왜 들며 마케팅 및 행정비용이 왜 연구비의 3배가 넘어야 하는 것일까? 연구개발비를 말하려면 제약회사의 천문학적인 이익과 마케팅 비용부터 줄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제약회사가 주장하는 연구개발비용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다. 뻔한 비용 부풀리기가 활용되는데, 세금이 공제됨에도 공제되지 않은 비용으로 계산하고, 실패한 의약품에 투자한 비용까지 개발된 신약에 쓰인 돈으로 계산되며, 연구개발비용이 실투자액수가 아니라 기회비용으로 계산된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연구개발비는 최소 10배 이상 부풀려져 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의학저널인 NEJM의 전 편집자 Marcia Angel이 저자인 “The truth of Drug company”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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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 누가 하나?
그런데 진짜 문제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정작 신약을 개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고? 미국식약청이 2002년 승인한 신약 87개 중 과거의약품보다 임상적으로 효과가 있는 신물질의약품은 단지 7개(8.0%)였다. 미 식약청(FDA)의 신약인정기준은 “밀가루(placebo)보다 효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렇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진짜 연구개발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무엇하러 모험적인 연구개발사업에 돈을 쓰겠는가? 효과도 판로도 보장된 기존 약을 조금 바꾸어 이른바 유사의약품(“me too drug”)을 만드는 것이 훨씬 안전한 길이다.
물론 혁신적인 신약이라 불릴만한 ‘진짜 신약’들도 개발된다. 그러나 이러한 진짜 신약은 제약회사가 아니라 정부연구소나 대학에서 개발된다. 즉 국민의 세금으로 개발된다는 것이다. 제약회사들이 하는 일은 단 한 가지, 이 신약의 특허를 자기 소유로 이전하는 것이다.
첫 번째 에이즈치료제인 AZT(zidobudine)의 예를 들어보자. 이 약제는 1964년에 버로우웰컴사에 의해 항암제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항암제로는 쓰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죽은 약이었다. 그러다가 1984년에 미국 국립보건청(NIH)이 에이즈라는 질병을 분류해냈다. 미 국립암연구소와 파스퇴르연구소가 병원균인 레트로바이러스를 밝혀냈고 메인대학교와 국립암연구소가 공동으로 연구 끝에 1986년 AZT가 레트로바이러스에 듣는다는 것을 발견해내고 임상실험을 진행하였다. 여기까지는 전적으로 정부연구기관과 비영리기관이 진행한 연구였다. 그런데 1987년 갑자기 버로우 웰컴가 마지막 임상실험에 끼어들더니 특허를 등록했다. 버로우웰컴사는 연구의 마지막 몇 개월동안 남이 다해놓은 연구에 기대어 특허만을 따냈을 뿐이다. 나중에 그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합병된 버로우웰컴사는 이 AZT로 1인당 1만달러의 약값을 챙겼다. 메인대학교와 국립암연구소가 항의를 했으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오죽 신약이 개발되지 못하고 있으면 올해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나라마다 GDP의 일정액을 걷어 필수적 백신이나 의약품의 개발을 위한 공공펀드를 만들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을까?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진짜 문제는 그들이 고가의 약값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비아그라 등의 이른바 해피드럭이나 유사약제 이외에 정작 그들이 개발하는 신약이 거의 없다는데 있다. 약값을 올려야만 신약접근권이 높아진다는 그들의 주장은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히려 신약개발도 없이 천문학적 이익을 가져가는 다국적 제약회사 그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살 길 : WTO와 FTA
고가의 약값 때문에 각 나라의 보험재정이 휘청댈 정도가 되자 각국정부는 결국 약가절감정책을 펴게 되었다. 나라마다 약가절감정책은 다양하지만 대개 비용대비 효과가 확인된 제네릭(특허가 없는 약품)은 보험적용을 하고, 비싸기만 하고 개선효과는 불분명한 특허의약품은 보험적용을제한하거나 약값을 깎는다. 다국적제약사가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2000년부터 매년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보유한, 약품 하나에 수조원씩 벌어들이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의약품 예를 들어 화이자는 리피토라는 의약품으로 1년에 13조원을 벌어들인다.
특허가 대거 종료되는 상황은 이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제약회사들의 입장에서 길은 두 가지다. 약값을 깎고 진정한 신약개발에 나서는 것. 아니면 특허기간을 늘이고 각국 정부의 약가절감정책을 무력화하는 것.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선택은 두 번째였다. 1995년 성립한 WTO체제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은 특허기간을 전세계적으로 20년으로 대폭 연장시켰고 물질특허를 인정하여 값싼 복제약품을 생산하는 길을 완전히 막았다.그래도 모자라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WTO 10년 만에 각국의 약가절감정책을 무력화시키고 특허기간을 5-10년 정도 더 연장시키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TRIPS 플러스라고 하는 지재권협정의 강화다. 이 TRIPS 플러스를 WTO에서 관철하려다 여의치 않자 만만한 나라들을 골라 관철시키려 하는 것이 바로 FTA이다. 한미 FTA도 당연히 마찬가지이다.
이윤인가 생명인가?
지금 세계에서는 한해에 1400 만명이 약을 두고도 약값 때문에 죽는다. 에이즈 300만명, 말라리아 200만명, 결핵 100만명. 이 1400만 명의 죽음 앞에 특허는 재산권이라는 자본주의에 대한 신앙고백이 유효한가? 더욱이 그 특허제도가 ‘신기술이 한 사람의 비밀로 남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공동재산으로 하기 위한’ 제도라는 목적을 완전히 상실한 지금.
세게보건기구의 의약품 공공펀드 계획에서 그 실마리를 볼 수 있듯 의약품 문제에 대한 대안은 그 개발과 생산⋅공급을 공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모두가 특허를 포기하는 소크박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약개발자에게 충분한 동기를 줄만큼 공적펀드에서 부담할 수 있으며 이것이 제약회사의 주주들에게 1년에 100조원씩을 넘겨주는 것 보다는 개발자 자신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에게 훨씬 더 이익이다.
한미 양국정부는 FTA 의약품 협상에서 타협할 수 없을 것처럼 으르렁대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김종훈 협상대표는 “신약개발에 들어간 연구비용은 보상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측의 다국적 제약회사의 핵심적 요구를 한국측 수석대표가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니 협상대표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FTA, 특히 미국과의 FTA는 그 본질이 약값을 높이는데 있고 한미 FTA를 중단하지 않는 이상 그 결과는 의약품의 특허권 강화와 약값의 폭등이다.
미-호주 FTA 이후 1조 5천억원의 약값인상요인이 발생했고, 미-페루 FTA는 1년 후 9.6%, 10년뒤 100%의 약가상승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었다(페루 보건성). 두 나라의 결과를 한국에 대입하면 한미 FTA체결시 4인 가구당 다국적 제약회사에 1년마다 더 주어야 할 돈이 최소 6만원이다.
결국 아들을 에이즈로 잃은 넬슨 만델라 집권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에이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이즈약을 특허없이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35개 다국적 제약회사는 이 법률이 자신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재판을 걸었다. 이 재판이 열리는 날 프레토리아 재판정 앞에서는 다국적 제약회사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플랭카드가 걸렸다. 그 플랭카드의 구호는 이제는 전세계적 의약품 접근권 운동의 공통의 구호가 된 바로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구호였다. 오늘 한미 FTA 협상을 두고 다시 생각한다. 과연 이윤인가 생명인가.(끝)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의사 우 석 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