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2일 ‘한국 과학 및 의료계의 성수대교 붕괴사고’라고 결론을 맺은 검찰수사 결과 발표로 황우석 사태는 일단 한 단계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여러차례 지적해왔듯이 황우석 사태는 황우석씨 개인의 과학사기로만 규정하고 이와 관련된 몇 사람만의 처벌에 그쳐서는 안될 사안이다. 황우석씨의 사기행위에 적극적으로 공모하거나 이를 활용한 청와대․정부, 언론, 기업 및 과학․의학계의 관계자에 대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황우석 사태를 만들어낸 뿌리는 놓아둔 채 그 가지만을 잘라내는 꼴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와 과학계, 의료계 관련자 모두가 이 세기적인 사기 사건을 공모해놓고 이제 와서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황우석씨만을 처벌토록 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는 상황을 우려해왔다.
바로 그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대병원(병원장 성상철)의 “세계줄기세포허브”처리 문제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해 10월 대통령 및 정부요인, 국내외 학계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개소식을 열었고, 여기에 서울대병원 자체 예산 65억 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아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논문조작에 기반한 허황된 ‘과학사기’로 드러나게 되었으며 이어 정부가 지원을 약속한 40억원의 연구개발비 뿐만 아니라, 75억원의 경상운영비까지도 취소되었다. 그리고 결국 세계줄기세포허브는 폐쇄되었다.
첫째 우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공공병원인 서울대병원이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으로 48억 여 원을 공중에 날리고(서울대병원은 투자했다고 자랑한 65억 원 중 일부는 미지출했다고 이제 와서야 밝히고 있다) 수많은 인적 자산을 투입한 프로젝트가 완전히 허황된 것으로 드러난 지금에도 왜 경영진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지를 묻는다.
서울대병원 경영진은 이러한 어마어마한 재정과 인적 손실에 대해 현재 아무런 책임을 질 의사가 없다고 판단된다. 서울대병원 노조에 의하면 서울대병원 측은 “5일 동안의 감사를 받았고 여기서 드러난 문제가 없으므로 책임질 일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밀한 검토 없이 계획에도 없던 예산을 지출하여 허황된 세계줄기세포허브를 만들어 놓고, 형식적 감사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책임이 없다고 강변하는 것이 한국의 대표병원의 경영진의 자세인가?
둘째 서울대 병원은 아예 재정적 손실이 없다고 주장할 요량으로 “첨단세포․유전자치료센터”라는 것을 설립하여 세계줄기세포허브를 위해 투자된 시설을 활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줄기세포허브 시설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해결의 선후가 분명해야만 한다. 세계줄기세포허브 설립의 진상을 규명하고 어떤 과정에서 잘못된 결정이 내려지게 되었는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며 관련 책임자를 문책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미 설치된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오히려 책임을 모면하려는 서울대병원 측의 뻔뻔한 태도와 유전자치료 분야의 활로를 찾으려는 일부 연구자/기업들의 기회주의적 야욕이 결합하면서, 첨단세포․유전자치료센터가 세계줄기세포허브와 똑 같은 경로로 졸속으로 추진되는 것에 우리는 깊은 우려를 갖는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경영진이 책임져야 할 재정적 손실의 부담을 병원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움직임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세째 서울대병원의 가장 큰 문제는 세계줄기세포허브를 둘러싸고 환자들을 상대로 벌인 비윤리적 행동이다. 서울대병원 경영진과 세계줄기세포허브 관련 의료진들은 최소한의 의료윤리를 내팽개치면서 수많은 환자들과 그 가족의 가슴에 쓰라린 상처를 남겼다. 서울대병원은 세계줄기세포허브를 개설한 후 12월까지 2만 명이 넘는 환자들의 등록을 받았다. 존재하지도 않은 연구성과를 가지고 환자를 기만하여 헛된 꿈을 꾸게 만든 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의료윤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황우석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 이미 양식 있는 의료인들과 정당․사회단체는 황우석씨의 이른바 ‘맞춤형 줄기세포’ 에 대해서 여러 차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서울대병원 노조가 3/4분기 노사협의회에서 줄기세포 기술을 과장하여 임상적으로 적용되는 것처럼 환자들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설사 그런 직간접적인 우려와 비판이 없었더라도, ‘히포크라테스 선서’ 를 비롯하여 의료윤리 지침과 규범들을 존중하는 의료기관과 의료인이라면 세계줄기세포허브의 설치와 대규모 환자 모집과 같은 일은 벌여서는 안 된다. 이는 서울대병원의 의료진 내부에서도 반성이 제기되었던 문제이기도 하다. 서울대병원이 명시적으로 ‘치료’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을 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경영진은 사과 편지를 내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자신들도 황우석씨에게 속았다며 피해자인 척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서울대병원은 세계줄기세포허브와 관련하여 2만 명의 환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범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병원으로서 서울대 병원이 명예를 되찾기 위해소라도 사태가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 경영진의 총 사퇴와 진심어린 사과가 최소한의 조건이며 사실상 이에 관여한 모든 의료인들은 의사윤리지침에 따른 징계 등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환자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인 피해를 입힌 부분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해야만 한다.
넷째 우리들은 이번 황우석 사태가 황우석씨 개인의 부정행위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청와대․정부, 언론, 기업 및 과학․의학계의 공모․묵인․방조에 대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하고자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 감사원 조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조사는 이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정부차원의 정책감사를 포함한 황우석 사태에 대한 총체적인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또한 황우석 사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는 이미 약속되어 있는 국회의 국정조사가 필요하다. 이에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은 국회가 황우석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조속히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은 황우석 사태에 대한 진실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자구적인 노력도 병행할 것임을 밝힌다. 특히 서울대병원의 세계줄기세포허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 문제에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서울대병원이 세계줄기세포허브의 환자 등록을 유도하기 위해서 과장하거나 기만한 일이 없었는지, 이후 처리 과정에서 부당한 행위가 없었는지 “세계줄기세포허브 환자피해신고센터”를 개설하고 환자들의 자발적 제보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향후 국회 국정조사, 감사원 특별감사, 국가인권위원회 고발, 민형사상 소송 등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 될 것이다. 또한 국정조사가 부실한 경우, 올 정기국회의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핵심적인 이슈로 삼아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
1. 세계줄기세포허브 사기극으로 환자들에게 깊은 상처와 고통을 주고 서울대병원에 65억 원의 손실을 입힌 서울대병원 성상철 원장과 경영진은 즉각 사퇴하라.
2. 서울대병원은 또 다시 근거 없이 추진하고 있는 첨단세포, 유전자 치료센터 사업을 즉시 중단하라.
3. 정부는 서울대병원이 세계줄기세포허브를 세우면서 환자들에게 저지른 근거 없는 의료광고행위 및 사기행위에 대해 서울대병원장 및 경영진, 관련 의료인들에 대해 즉시 책임을 물어 징계하라.
4. 정부는 공공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의 주먹구구식 경영과 대국민 사기극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대한 감사원 특별감사를 즉시 실시하라.
5. 국회는 이미 약속한 황우석 사태 국정조사를 즉각 실시하라.
2006. 6. 2.
민주노총 공공연맹 병원노동조합협의회, 서울대병원지부노동조합,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민주노동당, 생명공학감시연대 과학기술전문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