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안보정상회의의 본질은 오바마판 ‘테러와의 전쟁’ 이다. 진정한 핵안보의 길은 핵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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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극단적 전제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는 ‘이중사고’를 장려한다. 이 ‘이중사고’는 이들의 국가적 슬로건에서 명백히 드러나는데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것이다.

구럼비 폭파를 기어이 강행한 한국 정부가 핵안보정상회의의 슬로건으로 내건 슬로건은 “더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 beyond security towards peace(안보를 넘어 평화로)”이다. 군사기지를 짓기 위해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면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지금 한국의 모습이 조지 오웰이 암울하게 예견한 전제주의 국가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반대가 있더라도 기어이 군사기지를 건설해야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고 풍자한 젊은이를 군 당국이 직접 형사 고소를 해야 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안 떠올릴 수가 없다.

제주 해군기지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은 수없이 지적됐다. 필자는 한 가지만 첨언하고자 한다. 제주도에 군항을 만드는 것은 곧 이 기지에 미국의 핵잠수함과 핵항공모함이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의해 미군은 한국의 모든 군항을 (심지어 한국정부의 동의 없이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0년 이후 미국은 부산 해군기지에 기항한 핵잠수함을 세 번이나 공개했다. 이러한 공개 입항은 극히 이례적이다. 또 2010년 11월 연평도 교전 이후 서해에서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동원한 군사훈련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는 한반도의 긴장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핵잠함과 핵항모의 제주 해군기지 입항 문제로 곧바로 연결된다.

ⓒ청와대

핵안보정상회의의 정치적 목적

평화와 안전을 내세운 핵안보정상회의가 오는 26~27일 열린다. 이 회의의 아젠다는 “핵 테러 대응을 위한 국제적 협력, 핵물질의 불법 거래 방지, 핵물질·원전 시설 등의 방어”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대대적 선전에도 53개국 정상들과 EU, IAEA, UN, 인터폴이 참가하는 이번 회의에서 핵문제에 대한 진전된 문제 해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국가나 연구단체는 어디에도 없다.

핵테러를 반대한다는 데에는 어느 누구도 반대할 사람이 없다. 또 핵물질을 안전하게 보관하자는 걸 반대할 사람도 없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러나 2년 전 1차 핵안보정상회의가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을 때 핵테러에 대한 논의는 무성했지만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 주된 평가다. 반면 정작 민감한 문제들은 피해갔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워싱턴 정상회의가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파키스탄에 대한 생산 중단이나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를 논의하지도 않았다면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예민한 문제들을 회피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회의는 왜 열리는 것일까?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핵안보정상회의의 정치적 효과다. 바로 ‘핵테러’의 문제다. ‘핵테러’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영화 <미션임파서블>에 나오는 것처럼, 핵무기로 공격하는 테러리스트를 떠 올린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정의하는 핵테러는 단순히 테러 집단만이 아니라 테러 집단을 지원하는 국가까지 포함한다. 이는 핵안보정상회의의 배경이 된 오바마의 2010년 핵테세검토보고서에서 확인된다. 즉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거나 도와주는 국가, 테러집단 등에 전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명시했다. 흔히 떠올리는 테러리스트들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지목하는 ‘핵테러’ 국가들이 진짜 목표라는 말이다.

이들 국가들은 누구인가? 애초에 핵테러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 2011년 9.11 사태 이후였고 이때 조시 W. 부시 대통령이 내놓은 2002년 핵테세검토보고서에서 바로 ‘악의 축’ 이라크, 이란, 북한이 등장한다. 이후 잘 알려져 있다시피 ‘테러와의 전쟁’을 한다면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라크와의 전쟁이 미국의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부시 행정부에 이어 보다 개혁적이라는 오바마 정부가 등장했다. 오마바는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핵 테러에 대한 전면적 대응’을 들고 나왔다.

오바마가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노리는 것은 바로 핵테러를 저지르는 국가들에 대한 응징이다. 실제로 1차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란 제재를 위한 미국의 압력에 대한 동의를 얻으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바마는 1차 핵안보정상회의 직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핵 프로그램 추진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을 다하겠다고 밝혔고 1차 핵안보정상회의 기간 중에 열린 미중 정상회의에서는 이란에 대한 제재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결국 핵안보정상회의와 ‘핵 테러에 대한 대응’의 진정한 본질은 부시가 말했던 ‘테러와의 전쟁’의 오바마 판이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말한 것처럼, 오바마는 ‘핵 테러 대응’을 말하면서 이란과 북한에 대한 공격과 경제 재제의 명분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핵안보정상회의의 위선

핵안보정상회의의 위선은 초청된 국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인도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미국과 핵 협정까지 맺었고 이번 정상회의에 초청되었다. 파키스탄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도 NPT를 무시해 1차 정상회의에 불참하기까지 했고 핵무기 보유 사실도 부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초청 대상이다. 그러나 NPT에 가입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도 받는 이란은 초청되지 않았으며 미국의 제재가 진행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NPT 체제를 보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둘째, 물론 가장 큰 위선은 핵안보정상회의 그 자체에 있다. 전 세계에서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들이 모여서 핵무기를 어떻게 없앨 것인지는 논의를 하지 않거나 10여년 전 합의된 이야기만 반복하면서 핵안보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위선이다.

셋째로 핵안보정상회의가 핵물질과 핵발전소에 대한 방어를 얘기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가장 커다란 위선이다. 인류가 실제로 겪은 핵테러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몇 번의 핵테러가 있었다. 첫번째는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미국이 떨어뜨린 핵무기다. 현재까지의 유일한 핵무기의 사용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아직도 핵 선제공격을 포기한 바가 없다. 인류가 겪은 핵테러는 또 있다. 바로 각국 정부들이 그토록 안전하다고 선전하는 핵발전소에서 벌어진 사고들이다. 바로 쓰리마일 사고, 체르노빌 사고, 1차 핵안보정상회의와 2차 회의 사이에 벌어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그것이다.

인류가 겪은 유일한 핵테러는 바로 이번 회의에 모이는 국가들이 그토록 안전을 장담하는 핵무기나 핵사고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일본의 노다 정부는 어떻게 하면 핵발전을 재개할지 고심중이다. 또 미국 정부는 스리마일 사고 이후 수십 년간 중지됐던 핵발전소 건설을 다시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고가 일어났다고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9.5 규모의 지진에도 안전한 원전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핵발전소를 수출하려 혈안이 돼 있다. 작년에 UAE와 핵발전소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인도에도 핵발전소를 수출하겠다며 한·인도 핵협정까지 맺었다.

진정한 핵안보의 길은 핵없는 세상

진정으로 핵안보를 걱정한다면 모든 핵물질을 없애야 한다. 금을 안전하게 보관한다며 거대한 납시설에 금을 쌓아 놓듯이, 정말 핵안보를 걱정한다면 세계에 있는 모든 핵무기와 핵발전소의 핵물질 모두를 모아 안전한 납시설에 보관해야 한다.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은 핵발전소를 없앨 때만 핵테러로부터 진정으로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핵안보정상회의의 진정한 목표는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핵안보를 명분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군사적·정치적 패권을 유지하고, 이란과 북한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압박을 정당화하려는 회의일 뿐이다. 또 핵발전소를 더 안전하게 지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 핵발전소에 면죄부를 주려는 회의다. 이번에 부대행사로 열리는 서울 원자력산업정상회의(원자력인더스트리서밋)가 바로 그러한 회의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핵안보정상회의 항의행동’을 결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반핵의사회 공동운영위원장  

* ‘핵안보정상회의 대항행동’과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으로 마련한 릴레이 기고 세번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