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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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통계에 기초한 대통령의 의료산업화론을 경계한다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국정연설을 통해 의료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특히, 해외로 유출되는 의료비가 연간 10억달러(1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면서 고급수요를 충족시키는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의료비의 해외 유출을 막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의료산업화론의 주된 근거로 내세운 ‘해외 유출 의료비 1조원’ 설은 이미 2004년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거짓 통계이다. 이 1조원이라고 하는 숫자는 지난 2002년 한 병원장이 경제일간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언급한 것으로 객관적인 근거를 가진 수치가 아니다. 미국 상무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미국 병원이 2002년 한 해 동안 외국환자 진료를 통해 벌어들인 수입의 합계가 1조2천억원이다. 따라서 미국 병원을 이용하는 외국환자를 모두 한국인이 채우지 않는 이상, 1조원이라고 하는 수치는 나올 수가 없다. 게다가 2004년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우리나라 국민이 미국의료를 이용하는데 지출한 비용을 직접 조사한 결과, 최대 1천억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런 사실관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철 지난 거짓 통계를 내세우면서 의료를 산업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오늘의 상황을 목도하며 우리는 우려를 넘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대통령의 ’1조원’ 주장은 정부의 정책이 기본적인 통계 확인도 없이 졸속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금 인식시켜주었다. 또한 거짓 통계를 보고함으로써 대통령을 실소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청와대 보좌진과 정부 관료에 대해서도 이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당시,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은 없게 만들겠다고 이야기할 당시만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정부의 의료개혁이 기대와 희망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취임 2년을 경과한 지금, 그 기대와 희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 어떤 정권보다 의료의 상업화, 영리화를 급격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의료정책은 철저한 의료의 상업화, 시장화 정책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의료의 공공적 성격은 그대로 살려나갈 것이며, 공공의료 30% 확충도 실현하겠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실제 실행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은 이와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에 진료비를 제맘대로 정할 수 있는 외국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한데 이어,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 검토와 준비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영리법인 허용,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에 대한 언급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일련의 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세계에서 가장 영리적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를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현재의 정부 정책방향이라면,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을 없게 만들기는커녕 오로지 ‘돈’만을 바라보며 움직이는 의료체계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것은 어차피 이용하지도 못할 고급의료의 활성화가 아니라 취약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해서 병에 걸렸을 때, 돈 걱정 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의료정책은 고급의료에 대한 일부 고소득층의 선호를 보장하기 위해 기본적인 의료이용에 대한 대다수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치달아 가고 있다. 의료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서비스산업이 되어서는 안된다. 의료는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기 이전에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권리이다. 최소한의 권리조차 충족되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정작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은 의료를 더욱 돈벌이 대상으로 만드는 ‘의료산업화’가 아니라,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의료의 실질적인 공공성 강화’이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길 원한다면,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망국적 의료산업화론을 즉각 용도 폐기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