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명>
이제 정부가 나서서 황우석씨 연구와 관련한 의혹을 해결할 때이다
황우석씨의 연구과정과 이후의 해명 및 문제해결과정에 대한 여러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의료인으로서 의료윤리적인 문제점들에 대해, 그리고 정부의 감시 및 감독 역할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이러한 사태와 관련한 의료인들의 행위가 의료윤리의 가장 기본적 지침을 어기고 있으며 명백히 의료법을 위반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노성일 원장의 사실상의 난자매매에 해당하는 난자공여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대한의사협회에서 2001년 11월 공포한 의사윤리지침, 즉 ‘정자와 난자의 매매행위”에 대한 금지 및 ‘의사의 관여금지’, ‘매매행위의 묵인·은폐 금지’ 및 ‘매매행위를 알면서 의료적 처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윤리규정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이는 물론 세계의사협회가 1964년의 헬싱키 선언을 바탕으로 발표한 윤리강령인 “기증과 이식을 위한 장기 및 조직에 대한 대가의 지불의 금지”(인체 장기와 조직의 기증 및 이식에 대한 성명 2000. 11) 에도 명백히 위배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난자채취라는 의료적 처치가 행해지면서 그 처치의 부작용과 이유에 대한 사전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의료적 처치에 대한 사전설명의 의무를 의료인들이 이행하지 않은 것이고 피시술자들의 알 권리가 부정된 것이다. 이는 의료윤리는 말할 것도 없고 사전설명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모든 사태가 의료윤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즉 의료인이 환자를 사심없이 대리하는 “선의의 대변자”로 기능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의 위배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 대해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 노성일씨는 난자매매와 채취과정을 통해 특허권의 지분소유자가 되었다. 또 미즈메디병원에서 난자가 채취되었음에도 한양대병원 기관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한양대의 황정혜, 황윤영 교수는 각각 논문저자로 또한 특허 발명자로 자신의 권익을 얻었다. 이 사실들은 이 모든 사태가 의료인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근거로서 같은 의료인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점에 대해 매우 개탄스럽다.
둘째 우리는 이러한 사태들이 여러 이유로 합리화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매우 큰 우려를 가지고 있다. 노성일씨는 자신의 난자매매행위를 ‘국가적 연구를 위해서’ 또는 ‘환자를 위해서’라는 논리로 합리화시키고 있다. 이는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가능하다는 위험한 인식일 뿐 아니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윤리가 인간 자신이 수단화되고 대상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이라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인식이다.
생명윤리법은 그 발효시기가 2005년이라 당장 법을 피해갈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동일한 인체조직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다른 두 법률에서는 사체의 피부나 뼈,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에 대한 매매와 이에 대한 관여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절박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장기매매를 허용하면 더욱 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진실이 과연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노성일씨와 황우석씨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난자공여자에 대한 금전적 대가 지불이 전혀 없었다고 공언하였다. 한양대와 서울대의 기관윤리위원회는 임상시험승인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연구진의 난자제공문제는 항상 부인되었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다. 무엇이 과연 진실인가? 한국의 과학계 전체가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이 황우석씨가 해명을 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인가?
넷째 우리는 이번 노성일 원장의 난자매매사태를 보면서 연구의 윤리감시주체들인 한양대병원과 서울대 수의대의 기관윤리위원회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심각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황우석씨의 논문에 공저자로서 생명윤리 자문을 해주었다던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의 지금까지의 역할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는 이번 사태로 노성일씨와 황우석씨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박기영씨가 간사로 참여하고 있는 정부의 의료산업 선진화위원회가 관련업계와 의료공급자 협회인사들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편파성의 문제에 더하여 자정능력이 없는 일부 생명공학관련 인사들의 이너써클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을 요구한다.
첫째 정부는 공정한 조사 기구를 구성하여 황우석-노성일-박기영을 둘러싼 제반 윤리적·법적 문제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진행하라. 한양대와 서울대의 기관윤리위원회는 이미 윤리적 의혹을 풀 주체가 아니라 그 의혹의 대상이 되어있고 생명윤리심의위원회도 지금까지의 역할을 볼 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기구가 아니다. 지금은 정부가 팔짱만 끼고 연구진들의 자체조사만 기대할 때가 아니다.
둘째 정부는 황우석 연구의 윤리적 자문을 했다고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을 그 보좌관직에서 즉각 해임하라. 박기영 보좌관은 지금 윤리적 의혹을 받고 있는 연구의 윤리적 자문역을 자임해 왔던 인물이며 정부가 수백 억 원을 지원한 황우석-노성일씨의 연구에 대한 청와대 해당 보좌관으로서의 감시·감독 책임을 방기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는 편파적인 구성에 더해 지정능력이 없는 생명공학연구계의 이너써클의 인사들로만 채워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즉시 해체하라. 윤리적 의혹을 받고 있는 담당 보좌관이 간사를 맡고 윤리적 의혹에 중심에 서있는 노성일씨와 그와 연관된 황우석씨 양인이 위원을 맡고 있는 위원회는 한국의 의료제도나 생명공학의 발전을 위한 제도개선을 논의할 수 있는 신뢰받을 수 있는 기구가 아니다.
넷째 정부는 불임시술이나 연구와 관련된 난자공여를 위해 윤리적 가치와 현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하라.
이 요구사항들은 이번 사태를 더 이상 한국 과학계의 명예실추와 국민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사태를 풀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황우석씨가 과학자로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국고로 수백 억 원을 지원한 정부가 나서서 황우석씨 연구와 관련한 의혹을 해결할 때이다.
2005.11.23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