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포럼2006 폐막 선언문
새로운 대미종속과 사회 양극화를 가속화할 한미FTA를 저지하자!!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한미FTA와 한미동맹 재편이라는 이상기류
지난 가을 이래 한국사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급격한 이상기류 속으로 빨려 들어 표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달 간격으로 불길한 징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올해부터는 일련의 조치들이 거의 매주 태풍처럼 한반도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2005년 10월 의약품 가격 인하조치 중단 합의, 2005년 11월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 완화 합의, 2005년 12월 쌀 협상 비준 동의안 국회 통과, 2006년 1월 13일 쇠고기 수입재개 합의, 1월 19일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허용 합의, 1월 26일 스크린쿼터 73일 축소방침 발표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재난의 범위가 확대되고 강도가 높아지고 있었으나 그때마다 우리들은 해당 부문별로 문제를 규명하고 진상을 살피는데 급급했고 여러 재난들이 어떤 내적 상호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런 분산적 대응방식은 2월 3일 새벽 5시 30분 김현종 외교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 미 의사당에서 미국 무역대표부와 공동회견을 통해 한미FTA 협상 개시를 기습 발표했을 당시만 해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의 일련의 사태들을 통해 총체적인 연관성이 급속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2월 25~26일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 측근들의 반대 고언을 물리치며 남은 임기 2년간 한미FTA 체결에 전념하겠다고 공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3월 7일 스크린쿼터 축소 시행령 개정 단행, 3월 16일 대법원의 새만금 공사재개 허용, 3월 17일 평택미군기지 이전반대 관련 인권운동가 구속 등을 자행한 것이다. 이런 사태 전개를 통해 우리는 지난 6개월간에 걸쳐 일어난 불길한 징조들이 실제로 쓰나미와 카트리나를 합한 것보다 더 큰 망국의 징조들이었다는 사실을 비통한 마음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1994년 NAFTA와 1995년 WTO의 출범 이래 전 세계에 불기 시작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폭풍이 1997년 IMF 외환위기와 더불어 한반도를 강타한 후 그 파괴적 결과가 민중들의 삶에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지금 미국식 FTA의 새로운 최강도 재앙이 이제 막 한반도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와 민중의 삶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한반도의 쓰나미’가 될 이 중대한 국가적 협약을 추진함에 있어, 한국정부와 관료들의 사회적 무책임성 또한 우리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미국과 FTA를 맺으면 뭐가 어느 만큼이나 좋다고 해야 합니까?”라는 한덕수 부총리의 질문에 FTA 실무자가 “그게 아직 정확한 자료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외교부 고위관계자도 “솔직히 한미FTA를 하면 감(感)으로 좋다는 것일 뿐 이를 뒷받침하는 수치는 아직까지 정부 내에 없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어찌 고소(苦笑)와 서글픔, 분노를 금할 수 있겠는가? 더욱 기막힌 것은 헛된 “FTA 활용론(用세계화론)”을 들먹거리며, 한미FTA로 얻은 과실로 양극화 해소의 재원을 충당하겠다며 국민을 달래고자 하고 있다는 점이다. IMF 경제위기 시절 시장개방으로 얻은 이득으로 구조조정의 폐해를 보완하겠다고 했을 때와 똑 같은 논리이다. 그러한 논리가 기만이고 허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미FTA와 한미동맹 재편의 비밀스런 연관
우리는 지난 50여 일간 스크린쿼터 축소 및 한미FTA 저지 투쟁과 한미동맹 재편 저지투쟁 등의 과정에서 그간 분산되었던 일련의 문제들이 지닌 내적 연관성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한미FTA 협상개시의 장애물이던 4대 쟁점들을 일정 간격을 두고 각기 분리하여, 대중적 반발의 강도가 약한 쟁점부터 미국의 요구대로 해소해버린(지난해 10월부터 의약→11월 자동차→1월 쇠고기→1월 스크린쿼터)후 보다 거시적인 틀에서 이를 합법화하기(한미FTA 협상개시)“라는 공식이 그것이다.
이 공식은 “2003년 초 용산미군기지 이전 합의, 2003년 5월 주한미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 개시, 2004년 9월~10월 제4차, 5차 FOTA(심의관급의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한다는 외교각서 전달, 2005년 6월 주한미군이 해외미군 중에서 최초로 신속기동군 체제로 개편 완료” 등 한미동맹 재편에 필요한 실무조치를 다 완료한 후, 금년 1월 19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제1회 한미장관급 전략대화’에서 비로소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미 양국 합의 발표라는 사후 승인의 절차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는 한미FTA의 추진과정과 한미동맹의 재편이 상호긴밀하게 연관되어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잘 말해주고 있다. 이제 한반도는 미국의 대중국 압박의 경제적-정치군사적 교두보로서 기능하기를 강제당하고 있고, 그것이 바로 ‘경제협정+정치군사안보 협정’이라는 100% 개방을 요구하는 포괄적인 한미FTA 협정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의 대한국 압박의 실제적인 내용은 미국 측의 발언에서 드러났듯이 남북관계를 악용한 정치군사적 압박과 이를 매개로 한 100% 경제개방 요구이다. 이러한 FTA추진을 통하여 대기업의 입장에서는 일부 경쟁력 있는 제조업 분야에서의 대미수출 확대를 성취하고자 하며, 노무현 정부 차원에서는 남북 긴장완화와 경협확대 및 남북정상회담 재개 등의 대가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로 일부 상층을 제외한 남한 민중 대다수가 사회 양극화 심화와 사회안전망 붕괴로 극심한 고통을 치러야 할 것이고, 국가적으로 보면 식량주권과 생태주권, 문화주권, 경제주권, 안보주권 등이 모두 파괴될 것이다.
한미FTA에 맞서는 범국민적 운동의 절박성
우리는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절박한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한미FTA에 의해 초강도로 진행될 미국식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소위 “대세론”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비판∙극복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체결한 FTA협정은 이제까지 9개이며, 국가로는 15개국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식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결코 대세가 아니다. 이는 지금까지 발효 중인 전체 186개의 지역무역협정 중에서 5%가 안 되는 숫자이다. 앞으로 FTA 또는 지역무역협정이 대세일 수는 있지만 미국과의 FTA는 결코 대세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통계수치이다. 미국과의 FTA가 대세일 수 없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그것이 미국패권주의 확장의 수단인 ‘경제-군사안보 통합형 협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강압적 협정을 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한미FTA는 불가피한 것도 대세도 아니므로 범국민적 반대가 강렬하다면 얼마든지 저지할 수 있다. 특히 한미FTA는 미국이 체결했던 기존 9개의 협정과는 비교도 안 되게 철저하게 미국이익을 100% 반영하는 합병식 FTA라는 진실을 민중과 시민에게 알려내는 일이 중요하다.
둘째, 사회적 토론과 공감의 과정 없이 밀실에서 이러한 중차대한 사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노무현 정부와 보수양당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문민정부-국민의정부-참여정부’로 이어지는 동안 민주개혁이 전진하고 그 범위 역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3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민주’정부를 자임하는 정부들이 오히려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켜 왔다. 심지어 사회 양극화의 문제를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등 노무현 정부의 행태는 지극히 우려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자임하는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무책임한 추진주체가 되고, 나아가 반민주적인 방식으로 한미FTA를 밀어붙이고 있는 이러한 역설적 상황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우리가 지닌 모든 잠재력과 경험과 지적-창의적 노력들을 아래로부터 광범위하게 끌어 모으는 실천이 필요하다. 지난 2월부터 이런 노력들이 사회각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영화인과 농민, 민중운동 진영이 주축이 되어 범국민대책위원회(준)를 구성했고, 이어 교수학술, 시청각미디어, 문화예술, 보건의료 등 부문별 공대위가 구성되었으며, 교육/학부모, 보건의료, 환경, 여성, 노동과 공공서비스부문, 학생 등 모든 분야로 한미FTA 저지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 부문별 공대위들은 각기 자신들의 분야에서 직면하게 될 다양한 위협과 훼손 가능성을 꼼꼼히 검토하고 새로운 국민적 캠페인을 위한 각 부문운동들의 분업적이고 협업적인 노력들이 필요함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각 부문들의 노력을 기반으로 한미FTA 저지투쟁이 범사회적,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정립되어져 가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한 폭넓은 노력들이 한국사회포럼2006에 참여한 다양한 운동주체들에 의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절박성을 이 땅의 민중, 시민들과 공감하기 위한 광범위한 노력을 통하여, 또한 강력한 시민적, 민중적 투쟁을 통하여 한미FTA추진 시도를 분쇄하고, 새로운 역사적 장을 열고자 한다.
2006. 3. 25.
한국사회포럼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