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운동의 두 개의 기원 – 윤소영

<연세춘추> 2003년 3월 24일에 실린 것을 확대, 보완한 이 인터뷰는 2차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2003년 3월 20일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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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운동의 두 개의 기원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 운동의 확산을 어떻게 보십니까?

-오늘의 반전 운동은 두 개의 기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1999년 코소보 전쟁을 계기로 2001년 영국에서 조직된 ‘저항을 세계화하자(Globalise Resistance)’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운동은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기로 ‘전쟁을 중지하라(Stop the War)’는 구호를 채택했습니다. 올 들어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이 운동은 그러나 영국과 유럽 일부(특히 그리스)에 국한된 현상일 뿐이지요.

이 때문에 반전 운동의 또 다른 기원이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 반세계화 운동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대안세계화 운동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반대해서 사회운동이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는 것이 대안세계화 운동의 핵심이지요.

대안세계화 운동은 1997-98년 아시아 위기를 계기로 토빈세 도입을 주장한 프랑스의 아탁(ATTAC, 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99년 시애틀에서 벌어진 세계무역기구(WTO) 반대투쟁으로 확산된 대안세계화 운동은 2001년부터 매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WSF)-1995-96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던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WEF)에 대한 반대를 상징하는 명칭-으로 발전했지요. 우리나라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은 2000년 자유무역협정.세계무역기구반대국민행동(KoPA) 결성과 2001년 세계사회포럼 참여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세계사회포럼은 처음부터 세계화와 군사화에 반대하여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 운동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왔습니다. 지난 2월 15일 미국 반전연합(ANSWER)의 제안을 유럽사회포럼, 세계사회포럼이 수용하면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조직되었던 것이 그 증거지요.

대안세계화 운동으로서 반전 운동

*이 두 반전 운동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나요?

-우선 이론적으로 볼 때 레닌의 고전적 제국주의론에 대한 평가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레닌에 의하면 자본주의 열강이 주변부를 식민지로 분할, 재분할하는 것이 제국주의의 핵심이고, 이 과정에서 야기되는 열강간의 경쟁이 바로 전쟁의 원인이지요. 이런 고전적 제국주의론을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안세계화 운동의 핵심적 주장입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전적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에 대한 1960-70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쟁을 알아야 하는데, 우선 레닌이 원용하는 힐퍼딩의 독점자본, 금융자본론, 부하린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요. 나아가 레닌의 자본수출론을 현대화하려던 자본국제화론도 전후 미국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자본의 초민족화를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요.

이런 입장에서 결국 ‘금융을 지배적 요소로 갖는 세계적 축적’으로서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대한 분석이 제출되는 것입니다. 금융세계화는 대체로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1970년대 런던의 유로달러시장과 초민족은행(TNB)이 주도하는 단계와 1990년대 뉴욕의 증권시장과 금융화된 초민족자본(TNC)이 주도하는 단계가 그것이지요. 금융화된 초민족자본이란 지주회사를 핵심조직으로 하는 ‘산업을 지배적 요소로 갖는 금융그룹’을 가리키지요.

첫째 단계에서 둘째 단계로 이행하게된 계기가 바로 1980년대 외채위기와 이를 해결하려던 베이커 플랜(외채상환조건의 재조정) 특히 브래디 플랜(외채의 증권화)이었습니다. 그 결과 대부자본(은행신용)에서 가공자본(증권)으로 금융자본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신흥공업국은 이른바 ‘신흥시장’으로 변모했지요. 1994년 멕시코나 1997-98년 아시아처럼 외채상환 대신 ‘시장’의 위기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1930-5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주의 정부가 시도했던 외채상환거부(moratorium)와 세계경제로부터의 이탈(delinking)의 가능성은 점점 축소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브래디 플랜이 상징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란 인민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반격이었던 셈이지요.

*이런 차이가 전쟁론과는 어떻게 관련됩니까?

-레닌의 고전적 제국주의론의 정치적 결론은 식민지 분할, 재분할을 위한 자본주의 열강간의 경쟁, 결국 제국주의 전쟁입니다. 바로 여기서 민족주의나 애국주의는 물론이고 평화주의나 도덕주의도 비판하는 ‘혁명적 패배주의’ 입장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계급투쟁)으로 전화시키자’는 러시아 혁명의 구호가 나왔던 것이죠.

이처럼 20세기의 전쟁 중 영국과 독일간의 1차세계전쟁이 가장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쟁이었습니다. 미국, 소련과 독일간의 2차세계전쟁이나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을 제국주의 전쟁이었다고 볼 수 있을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요. 게다가 1989-91년 소련을 비롯한 이른바 ‘현존사회주의’가 붕괴한 후 이른바 ‘탈냉전’ 시대에 들어와 전쟁은 완전히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전쟁의 시작은 1991년 1차 이라크 전쟁(이른바 ‘걸프전쟁’)이었습니다. 이는 1995년 보스니아 전쟁과 1999년 코소보 전쟁 등 두 차례에 걸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른바 ‘발칸 전쟁’),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치러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쳐 오늘 2차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새로운 전쟁이 각자 나름대로의 개별성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지만, 식민지 분할, 재분할을 위한 자본주의 열강간의 경쟁으로서 제국주의 전쟁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갖는다는 공통성에도 주목해야 하지요.

단적으로 말해서 새로운 전쟁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위한 ‘통치성’(governability)을 유지하는 것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즉 중심부가 금융세계화에서 주변부를 선별적으로 포섭하거나 배제(또는 심지어 절멸)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새로운 전쟁이라면, 그 원인은 주변부에 대한 중심부의 ‘공동지배’(condominium)에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볼 때 유고슬라비아 전쟁이나 그보다 훨씬 덜 주목받고 있지만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저강도 분쟁이 전형적인 새로운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고전적 제국주의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입장에서는 이라크 전쟁을 특권화하게 됩니다.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 심지어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간의 갈등이 악화될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제국주의라는 용어를 그대로 쓴다고 해도 그 새로운 내용은 범대서양적 규모에서 전개되는 미국과 유럽의 초민족화된 신자유주의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참고로 동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자유주의의 초민족화는 미,일 동맹과 중국사이의 잠재적인 이해갈등 때문에 일정한 특수성을 가질 수 밖에 없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렇다면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 일부 나라가 반대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1차 이라크 전쟁, 유고슬라비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달리 2차 이라크 전쟁에서 프랑스와독일이 미국에게 반대하는 동기로 세계 제2의 석유매장량을 갖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지적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석유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배에 대해 유럽이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유럽 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 결코 일관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프팡스의 경우 시라크의 우파 정부가 사회운동이 반전구호를 독점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선수를 쳤다고 분석되기도 하며, 독일의 경우 지난해 선거때 슈뢰더의 좌파 정부가 정권 재창출을 위해 반전 구호를 활용했다고 분석되기도 합니다.

금융세계화에 평행하는 군사세계화

*새로운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의 관련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군요.

-우선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평행하는 군사세계화에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이 말은 1990년대 미국의 군수산업이 인수, 합병과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세계화에 포섭되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1980년대 이른바 ’2차 냉전’을 통해 부활한 군사케인즈주의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혁되고 있다는 뜻이지요.

미국의 대이라크 최후통첩 이후 주식시장이 상승하는 동시에 유가가 하락하고 있지만, 전쟁을 통해서 미국경제가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빈약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의 국민소득에서 군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말 거의 8% 까지 상승했지만, 2000년에는 2차 세계전쟁 이후 최저치인 3.8%로 하락했고 2002년에도 4.3%로 상승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전쟁의 원인을 군비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 찾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위한 통치성이라는 정치적 측면에서 찾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세계체계론 식으로 말하자면 헤게모니 상승을 특징짓는 ‘좋은 전쟁’과 달리 세게모니 쇠퇴를 특징짓는 ‘나쁜 전쟁’은 결국 경제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죠.

게다가 ‘전쟁이란 단지 또 다른 수단(군사력)에 의한 정치의 추구(Fortsetzung)일 뿐이다’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명제로 더 이상 새로운 전쟁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미국의 헤게모니뿐만 아니라 베스트팔렌체계라 불리는 세계자본주의의 국가간체계도 쇠퇴함으로써 ‘신중세적 무질서’가 도래하고있다는 사실의 증후겠지요. 정치적 목적과 군사적 타겟이 혼동되고 또 왜곡된 타겟이 목적을 변질시킴으로써 전쟁이 일종의 광기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지 않으십니까?

-물론 2000-01년 미국의 신경제가 ‘경착륙’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 생각으로는 신경제가 ‘연착륙’했으며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2년 미국경제의 이윤율이 1973-75년 도는 1979-82년 수준으로 떨어졌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1970년대 대불황에 빠졌던 미국경제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통해 1990년대 들어와 증권시장과 정보, 통신, 미디어 산업을 토대로 하는 이른바 ‘신경제’로 발전합니다. 신경제가 지표상으로 후퇴하기 시작한 것은 2000-01년부터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1997-98년 아시아 위기를 계기로 미국경제의 이윤율도 점차 저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민족자본의 이윤율이 급속히 저하했지만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주도하는 기관투자가(연금기금. 투자기금, 보험회사 같은 이른바 ‘소액주주들’)와 금융화된 초민족자본(직접투자(10% 이상의 지분을 획득하는 증권투자)와 인수, 합병)의 이윤율이 급속히 상승했기 때문에, 2000년까지 미국경제의 이윤율 저하가 감속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사실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의 최대의 수혜자가 미국경제임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가 이윤율 저하를 무한정 지연시킬 수는 없지요. 이 때문에 2000년 4월 주가, 특히 나스닥이 붕괴하면서 정보산업이 동요하고 또 12월 초민족자본 엔론의 회계부정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경제지표가 급속히 악화되었던 것입니다.

‘금융세계화의 두 번째 단계’는 이렇게 위기와 전쟁 속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위기 속에서 새로운 전쟁의 확산이 시도되고 있다고 해도 199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경제에서 군수산업이 차지하는 위상이 이미 크게 변화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1991년 3대 군수기업에 들었던 제너럴 모터스(GM)는 2001년 10대 군수기업에서도 완전히 탈락했고 5위였던 제너럴 일렉트릭(GE)만이 간신히 10위를 유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현재 10대 군수기업의 수주액 절반을 차지하는 1,2위 군수기업인 록히드 마틴과 보잉은 주가총액으로 보면 각각 65위와 48위인 반면, 겨우 수주액 3%를 차지하는 제너럴 일렉트릭은 주가총액 1위의 기업이지요.

한반도 전쟁위기의 진정한 쟁점

*이라크 전쟁 이후 한반도에서도 전쟁위기가 발생할까요?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전쟁의 무대가 되어버린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까지의 이슬람 문명권이나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와 비교해본다면 동아시아나 한반도의 분위기는 아직 한가하다고까지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끝나는 대로 미국이 본격적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핵, 미사일, 생화학무기) 문제를 제기할 것이 분명합니다. 독일을 제외한다면 일본과 남한에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은 동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사활적 이익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은 1995년 <<동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안보전략>>을 통해 중국에 대한 외교, 안보정책을 봉쇄정책에서 포용정책으로 변경한 바 있으며, 1997-98년부터 이를 북한에도 적용하려고 시도해왔습니다. 여기서 ‘포용’이란 ‘engagement’를 가리키는데, 이를 더 정확히 번역한다면 중국에서처럼 ‘접촉’ 또는 ‘교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햇볕 정책’이란 미국의 대 북한 포용정책을 김대중 정부가 자기 식으로 번안한 것일 뿐이지요. 포용정책 또는 햇볕정책이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별도로 구상된 정책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어쨌든 197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해 왔던 중국은 미국의 포용정책에 따라 작년에는 급기야 세계무역기구에도 가입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이와 달랐지요. 북한이 개혁, 개방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없었던 것도 문제였겠지만,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는 것이 제 개인 생각입니다. 즉 대북한 포용정책 자체가 중국의 양해 아래 전쟁억지를 위한 미군 주둔과 한국군 군비 현대화를 전제함으로써 포용정책과 봉쇄정책을 갈등적으로 결합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결국 2차 한국전쟁의 가능성이 포용정책의 내재적 모순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2002년 1월 부시의 <<연두교서>>에서 ‘악의 축’발언 9월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서 선언된 이른바 ‘부시 독트린’(전쟁억지론에서 예방전쟁론 또는 선제공격론으로의 전환), 10월 켈리 방북직후부터 악화된 북한 핵문제 등은 2차 한국전쟁의 가능성을 말해주지요.

그렇지만 막상 그 현실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1994년과 비교해 볼 때 오늘의 상황에서는 군사적 해결에 대해 더욱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고들 하는데, 특히 그 사이 영변 이외의 지역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핵시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전쟁위기 속에 감추어진 진정한 쟁점은 경제적 제재 같은 비군사적 방법을 통해 북한의 ‘체제붕괴’ 또는 ‘정권교체’를 유도할 수 있는가 여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탈봉쇄정책이 단순한 포용정책이 아니었던 것처럼, 탈포용정책도 봉쇄정책으로의 단순환 복귀는 아니겠지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포용정책을 주장해왔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장이 흡수통일정책을 주장해왔던 신보수주의자들의 입장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래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포용이란 평화공존을 유지하면서 경제통합을 통해 한반도의 분단을 안정화하자는 것이었지요. 반면 신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의 붕괴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흡수통일을 실현하자고 주장했었지요.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도 이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효율성과 투명성을 무시했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북한의 궁극적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지불한 거액의 달러를 노무현 정부가 문제삼는 속사정이야 차차 밝혀지겠지만, 어쨌든 이런 사태 전개도 우연만은 아니겠지요.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햇볕정책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마도 이는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인민주의에서 탈피하는 것이 아직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민주당 주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자신의 계승자로 선택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도 이런 관점에서 설명할수 있겠지요.

작년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반전운동에 대해서도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반전은 곧 반미를 뜻합니다. 그러나 촛불집회는 소파 개정과 미군 철수 사이에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코포러티즘으로 환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이 아직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대안세계화 운동과 결합하지 못하는 반전 또는 반미운동은 도덕주의나 민족주의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사회운동으로서 노동자운동의 부활을 위하여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나 새로운 전쟁에 대한 진정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대안은 장기적인 사회운동밖에 없지요. 1350-1450년 이른바 ’100년 전쟁’ 시기부터 진행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4, 5 세기에 걸친 수많은 사회운동(천년왕국,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 시민혁명)을 통해 실현된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사회운동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19세기 이후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갈파한 대로 생산력 발전과 신분제 폐지등 인류의 진보를 상징했었으나, 21세기의 자본주의는 인류의 절멸을 예고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한번 인류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모색하는 장기적인 사회운동을 시작해야 할 것인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자운동이 사회운동으로 부활해야 할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당과 노조를 중심으로 한 20세기의 노동자운동은 19세기의 노동자 운동을 교훈 삼아 여성운동과 결합할 수 있는 더욱 신축적인 조직형태를 발명해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세계적 규모에서 전개되는 대안세계화 운동과 반전 운동의 성공적인 결합을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