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건강권을 민간시장에 통째로 맡길 것인가?

최근 대통령산하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종전 재경부 등 경제관련부서와 재벌 및 외국기업을 중심으로 추진하던 대체형 민간의료보험 도입과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전면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인천경제특구와 제주특별자치도에는 외국영리병원의 설치가 확정되고 향후 외국인투자지분을 가진 내국 대형병원들이 영리법인으로 탈바꿈하여 설립될 것이 예상된다.

한편으로 보험사기방지 목적을 내세워서 국민의 진료기록을 민간보험회사에 제공할 수 있는 보험업법개정을 도입하려다가 사회단체의 거센 저항에 한발 물러선 바 있다.

효율과 경제, 개방과 국제화를 모토로 하는 WTO나 DDA체제하에서 우리나라가 살길은 국제조류에 따라 모든 분야에 점진적으로 동참하는 길이라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시급하지도 않으며 선진국에서도 선례가 없고 강하게 요구하지도 않고 있는 의료시장의 문을 서둘러 열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개방론자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경쟁을 통하여 투자를 모집하여 국민의 고급의료수요을 충족하고 의료산업발전을 통한 국부를 창출하고 국외진료로 발생하는 국부유출을 방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기술과 장비수준은 최고수준이기 때문에 고급의료란 극히 일부계층의 비의료적인 호텔식서비스를 말하는 것이지 의료의 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의료산업은 기초의학, 생명공학, 의료기기, 제약 등 관련산업육성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한 것이지 의료시장개방과는 별개문제다. 원정출산 등 외국진료는 개방문제보다도 영주권취득 등 의료외적요인으로 어차피 개방을 하더라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는 주장인 것이다.

차라리 재벌기업 산하 병원이나 민간보험사의 로비 때문이라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선 보기에 그럴듯한 이런 명분으로 국민여론을 호도하면서 국민건강권을 민간상술이나 국제자본의 손아귀에 내 팽개친다는 것은 쌀개방보다 더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민들이 삶에 시달리면서 무관심하는 사이에 엄청난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최근 TV홈쇼핑에서 판을 치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시장은 건강보험재정의 42%에 달하는 1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기존 손해보험시장이 경쟁과다로 포화상태라 남는게 없다보니 재벌보험사와 재정경재부 등 경제부처 등이 주도하여 아예 보충형이 아니라 건강보험을 대체하는 보험인 사제건강보험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민간보험이 국가의 건강보험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준다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 민간보험을 훨씬 먼저 경험한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면 이익보다는 폐해가 훨씬 커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역사적 사실이다.

민간보험이 70%을 차지하는 미국은 건강보험과 의료보장의 실패국으로 악명이 높다.
클린턴을 비롯한 역대정부에서 공적 건강보험을 도입하려고 기를쓰고 있으나 민간보험의 로비에 밀리기 일쑤였다.
미국 현지사정을 보자.

국내총생산대비 14.2%로 세계최대의 국민의료비를 쓰면서도 영아사망율, 평균수명등 건강수준은 OECD국가중 최하위인데다 국민15.6%인 4,500만명은 그나마 보험가입도 못하고 의료사각지대에 있으며, 치료비가 너무비싸서 매년 200만명이 치료비 때문에 파산하고 있다.  

미국의 전철을 밟아 민간보험이 판을 치는 남미의 칠레나 멕시코 등에서도 민간보험시장점유율이 70%이상이 되면서 보건의료시스템에 있어 최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면, 민간보험이 10%미만을 차지하는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의료보장에 있어서도 선진국에 걸맞는 100%보장을 받고 있다.

이는 의료보장 등 사회보장에서만은 효율과 경쟁의 원리가 성립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건강보험과 민간보험 중 선택적으로 가입을 허용하는 대체형 민간보험도입이 어떤 문제가 있는가?
정부는 점차 증가하는 사회복지비용, 특히 건강보험국고지원금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민간보험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나 국민의 반발을 우려해 암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관계자는 의료비에 있어서도 수익자부담의 원칙을 주장하며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면서도 겉으로는 보험시장개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국민의 편익과 국가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민간보험이 효율적이며 개인 및 국가경제에 보탬이 되는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 예를 든다면 민간보험은 회사의 이윤과 과다한 관리 및 광고비용으로 보험료부담에 비해서 60%수준의 혜택을 보게되는 반면 건강보험은 정부부담까지 포함하여 100부담에 107%의 혜택을 보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과다한 단체보험(민간보험) 부담 때문에 세계일류기업인 GM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정도로 고용과 국가경제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다고 한다.  

민간보험은 누가 공짜로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익을 내는데 전문가인 경험많은 보험사의 상술과 회사의 이익이 앞선 그들이 가입시킬 대상이 누구겠는가?
돈은 많고 질병이 없는(덜 위험한) 부자만 선택적으로 가입시키고 가난하고 아픈 서민들은 가입을 하고 싶어도 가입을 거부함으로써 손 안대고 코를 푼다. 왜? 보험사로서는 손해니까…  

가족, 친인척부터 파고드는 세계에 유례없는 보험세일즈의 목숨을 건 무자비한 가입유치전략과 민간보험의 상술에 부자는 민간보험선택으로 빠져나가고 춥고 배고픈 서민들만 건강보험에 남게되고, 영리병원과 보험사가 짝자꿍이 되어 수가에 통제를 하는 공공건강보험을 도외시할 것이며, 또다시 예전의 정부미, 일반미 처럼 차별대우 받는 사태가 오게된다.

일부 재벌보험사나 외국보험사와 재벌영리병원만 이득을 보게 되겠지만 국가경제나 대다수국민들에게는 편익은 커녕 가계부담만 무거워질 뿐이다.

결국은 의료와 건강문제에서조차 사회양극화를 가져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혜택)은 진료비의 61%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다만 최근 담배부담금등 국고지원으로 암과 중증질환, 희귀질환 등 보험혜택을 해마다 증가시켜나가 최종목표를 선진국수준인 80%이상으로 하고 특진비나 특실차액, 식대 등 부대비용도 혜택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는 민간보험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재정지원을 확대하고 복지기반시설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10%에 미달하는 공공의료시설을 적어도 50-60%이상 확보하고 총액치료비 기준 85%이상을 건강보험이 보장한 연후에 민간보험도입을 일부 허용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미 민간보험의 실패를 인정하여 도로 공공보험으로 가려고 기를 쓰는 미국의 예를 보면서도 우리는 거꾸로 가서야 되겠는가? 경제와 효율, 산업화 전략이 치열한 국제경쟁을 돌파하는 화두라고 하더라도 의료와 국방, 그리고 사회복지정책까지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직접 피부에 닿지 않는 사안이라 무심코 도입하는 무책임한 정책이 국가 의료보건시스템을 하루아침에 후진국수준으로 전락시키고 중산층이하 다수국민이 고통받게 되지 않도록 정책당국은 물론 국민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