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경제와 문화는 어느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다.

2006년 2월 28일 스크린쿼터데일리 논평

한 나라의 경제와 문화는 어느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다.
국민 모두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있다.
전문가는 설명해야할 의무가 있다.

2월 27일 문화일보에 한 경제학자(김영봉 교수)의 상식 이하의 오만한 칼럼이 실렸다. 요지는 FTA에 대한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경제학자에게 맡겨두라는 것, 미국의 문화침략과 같은 문화제국주의 논리는 영화인들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이 칼럼에서 구시대의 끔찍한 두 망령이 부활하고 있음을 본다. 하나는 국민의 알 권리와 문제제기의 권리 자체를 무시하는 전문가 집단의 지적 우월주의와 관료주의의 망령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문화를 폄하해온 엘리트주의의 오랜 편견이 그것이다.

하나씩 따져보기로 하자. 첫째 FTA에 대한 이해득실은 경제학자에게 맡겨두라?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FTA의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질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제학자는 그 이해득실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더욱이 사회의 주요 공공영역을 희생시키며, 그리고 기존의 공공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도덕적 불감증을 지닌 집단 이기주의자로 몰아붙일 정도로 자신감이 있다면 과학적 근거를 대는 것이 경제학자의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우리는 누누이 말해왔다. FTA가 진정으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스크린쿼터를 양보할 것이라고. 하지만 어느 경제학자도 어느 경제관료도 우리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칼럼 필자의 자신만만한 태도와는 반대로 유감스럽게도 이 짧은 칼럼은 어떤 반대자도 설득시키기 어렵다고 본다.
김영봉 교수가 FTA 체결을 위한 근거로 드는 것은 단 하나 뿐이다. “한미 FTA가 성사되면 일본에서 수입하던 중간재와 자본재를 대폭 값싸진 미국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폭”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답을 해주기 바란다. 일본의 수입선을 대체할 주요 중간재와 자본재 품목은 어떤 것들인가? 그 품목들이 FTA로 완화되는 관세는 어느 정도이며, FTA 체결 결과 개선되는 수입대체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그 구체 메커니즘은 어떻게 되는가? 오만한 비난을 늘어놓을 지면에 그 구체적 치수를 제시했다면 더 빨리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전문가 집단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분야를 다루면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바보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인들도 이런 비판을 호되게 당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우리 전문 분야의 논리와 지식과 체험을 온 국민과 공유하고자 애써왔고 우리의 부족한 점을 밝혀 왔다. 이제 경제학계의 차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들은 우리에게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 하지만 당신들이 우리들을 대신하여 판단할 권리는 없다. 우리는 당신들의 설명을 듣고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있고 당신들 주장의 진위를 가려낼 정도의 양식은 가지고 있다. 그러니 칼럼의 필자인 중앙대학교 김영봉 교수는 위의 질문들에 대하여 제대로 된 답을 내놓기를 바란다.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정말로 전문가라면 제대로 된 분석 결과도 없이 대충 수사로 넘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두 번째로 미국의 문화 침탈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칼럼의 필자는 경제는 전문가인 자신들에게 판단을 맡겨두라고 하면서 자기 전문분야가 아닌 문화에 대해서는 잘도 판단한다는 것이다. 김영봉 교수는 마치 미국의 문화침탈이 실재하지 않는데도 한국 “영화인들끼리 상상하고 부풀린”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김교수와는 달리 경제학자도 문화 분야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최소한의 지식은 갖춰주는 것이 권리를 행사할 요건이자 다른 분야 전문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한다. 미국 문화 침탈의 허구성을 강변하는 김교수가 문화분야의 비전문가인 점을 감안하여 우리는 전문가로서의 예의를 갖추어 두 가지 점을 “친절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국제 무역에서 오랜 동안 원칙으로 자리잡아온 “문화적 예외”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미국 문화의 전 세계적 지배에 대응하기 위해 이차대전 이후 현재까지 국제무역의 관행으로 자리잡아온 원칙이다. 프랑스는 1998년 이 문화적 예외를 관철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논의되었던 MAI(다자간 투자협정)를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또한 2005년 UNESCO가 채택한 문화다양성협약과 “문화의 종다양성” 보호라는 개념이 있다. 무분별한 개발로 생물의 종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미국 문화의 무분별한 지배로 지역의 문화들이 사라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나온 것이 문화적 종 다양성이라는 개념이다. 문화적 예외도 문화적 종 다양성도 한국의 영화인들이 멋대로 상상하여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다. 2005년, 미국의 문화로부터 자국의 문화를 지원할 정책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문화다양성 협약이 148개국의 찬성과 2개국(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로 가결되었다. 김영봉 교수는 148개국의 대표들이 실재하지도 않는 미국의 문화침탈을 두려워하여 협약에 찬성했다고 생각하는가?
또 하나, 김교수는 방송 중 배우 박중훈의 사견을 가지고, 한국 영화인들이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문화제국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지만, 그것은 방송에서 본인이 말한 대로 사견임을 전제하고 발언한 것이다. 그것은 한국영화의 경쟁력 목표치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우발전 사견일 따름이지 한국 영화계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물론 김교수는 배우 박중훈의 의견=영화계의 공식의견으로 ‘착각’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우리 영화인들은, 또 그 의견이 반영된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호혜에 기반한 문화교류, 공동제작을 정책적으로 제안하고 실천에 옮겨 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바이다. 김교수는 나아가 아시아 나라들이 일치단결하여 한국 문화에 반대하여 쿼터를 주장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 누누이 말한 바이지만 우리는 제2의 할리우드가 되기를 원치 않으며, 그 때문에 다른 모든 나라들에도 쿼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중국은 우리에게 배워 2002년 66.6%의 쿼터제를 채택한 바 있다. 더구나 ‘한류’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수용한 아시아인들이 붙여준 개념이다. 그러니 제발 문화제국주의라는 미국의 죄를 엉뚱하게 우리에게 덮어 씌우지 말기를 바란다.
김교수는 베를린영화제와 유바리영화제에 참가한 우리 영화감독들이 행한 스크린쿼터 사수시위를 “한국영화계의 폐쇄주의가 무슨 자랑이라고 외국에까지 가서 선전하는가”라고 비난하면서 “영화인들은 지금 1인시위보다 말과 행동부터 가릴 줄 알아야 한다”고 건방지게 충고한다. 스크린쿼터는 한국영화의 폐쇄주의가 아니라 유네스코가 세계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문화 종다양성의 최소한의 보호장치이다. 이 보호장치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가장 잘 작동하고 있어 영상문화 분야에서는 일종의 세계문화유산과도 같은 가치가 높은 것이다. 이런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미국과 우리 정부가 앞장서 그 허리를 잘라내고 있으니 세계인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우리의 저지투쟁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김교수에게 충고하고 싶다. 한미FTA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추상적인 말만 되풀이 하지말고, 경제학적 수치분석과 전망을 분석하는 노고, 그 복잡한 내용을 국민들이 알기 쉽게 풀어내려는 노고를 직접 몸으로 수행해보시기를. 그런 노고와 행동을 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입이나 다물고 있으시기를.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할 때 국민들은 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체결 후에 그 조약이 곧 매국이었음을 실감하고 독립운동에 나섰다. 우리 영화인들과 국민들은 그런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또 다시 묻는다. 한미FTA가 진정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경제학적 근거를 과학적으로 설명해달라고. 그리고 이를 위한 방송토론과 공청회를 갖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