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정세에서 미국의 중간선거를 바라보며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가 있었다. 435명의 하원의원 전원과 100명중 33명의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이번 중간선거는 민주당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반면 12년간 정부와 의회를 장악해온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은 쓴맛을 보게 되었다.
새삼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가 전세계 여러 나라들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미국이 이 지구상에서, 한반도에서 어떤 위치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미국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이 지구의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다.
민주당이 승리하면 북미 직접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느니, 이라크에서 철군하게 될 것이라느니, 한미FTA 체결이 어려워질거라느니 말이 많다. 민주당은 공화당 부시정권을 상대로 북미직접대화, 이라크 철군 또는 재배치, 한미FTA 체결 반대를 주장해왔다. 민주당 집권과 공화당 집권은 일정정도 차이를 보여온 게 사실이다. 한반도 정세만 놓고 보면 실제로 민주당 클린턴 집권시절이었던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로 북미수교가 거론되었고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이루어질 듯했다. 하지만 공화당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악의 축’으로 북이 거론되면서 북미간 첨예하지만 총성없는 전쟁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민주당 역시 제국의 나라, 미국을 움직이는 거대한 한쪽 수레바퀴이기 때문에 부시 공화당 정부와 정반대의 길로 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라크에서 13만명의 미군을 완전 철군시키기보다 반미감정을 최소화할 주둔군은 여전히 남길 것이다. 대신 이라크 친미정권과 미국에 예속된 경제를 건설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북미간 대화는 하겠지만 경제봉쇄뿐만 아니라 대량학살무기 확산을 방지한다는 PSI훈련, 각종 한미연합 군사훈련은 지속할 것이다. 민주당은 공화당과 방식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세계를 미국의 입맛에 맞게 지배해야 한다는 제국의 나라, 미국을 부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여 전쟁만 생각하는 부시의 바지 가랭이를 붙잡게 된 양상이어서 다행이다. 다시 이 시점에서 변화를 예견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이 1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전세계는 한반도를 주목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외교, 안보, 군사 담당자들이 수시로 한반도에 드나들었다. 한 일간지는 북핵실험으로 촉발된 한반도 정세를 이렇게 표현했다. 단군 이래 한반도가 이보다 세계의 중심이 된 날은 없었을 것이다고. 그만큼 사안이 심각했고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세계 강국들의 역관계에서 상당한 파열음을 냈던 것이다.
북 핵실험은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북 핵실험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북과 북이 아닌 전세계라는 대립관계에서 파악되기보다 60년이 넘게 대립하고 있는 북과 미국과의 대립 과정에서 인식되어야 한다. 90년대 초반에도 북핵문제는 제기되었다. 그 당시에는 핵무기 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보다 북이 핵무기 개발을 할지도 모를 흑연감속로 원자력을 이용하게 할지 말지의 문제였다. 그래서 94년 제네바합의는 북에 중유와 경수로를 지원함으로써 전력공급을 해주고 북미 관계정상화의 방향으로 나가자고 타결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력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핵무기라는 군사적 대응을 용인할지 말지로 변화되었다. 북의 입장에서는 부시 정권이 전세계 ‘악의 축’을 제거하기 위해 대북압살, 선제공격을 거론하고 있는 시점에서 ‘보다 나은 전력’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생존’ 방식으로 핵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핵무기라는 ‘절대악’은 생존을 위해 선택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남아 있다. 이 문제는 인간의 이성, 보편적 사고로 이해되기 어려운 문제이다. 북의 핵무기 개발은 용인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사고하기보다 미국의 고강도 정치, 경제, 군사적 압박 속에 있는 북의 핵무기 개발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느 때고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와 더불어 엄존한 현실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던 집이 헐리고 길거리에 내앉게 될 운명에 놓인 재개발지역 철거민들이 화염방사기, 사제총을 제작했다는 보도는 보통 사람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 화염방사기로 뭘 어쩌자는 거냐는 생각은 사람들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거와 생존문제를 생각해보고 또 왜 재개발은 폭력적으로 강행되어야 하는가 생각해본다면 그들의 심정이 어떤지 대략은 가늠해볼 수 있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주거공간과 기초 생활을 보장해준다면 그 누구도 화염방사기같은 무시무시한 도구를 생각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94년 제네바합의대로 북미간 관계정상화가 이루어져 한반도 평화협정, 북미간 상호불가침조약이 이루어졌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군축논의로 이어지고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미국은 한반도에 최첨단 대량살상무기들을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한국 정부의 국방비 명목으로 들여오고 있다. 북핵과 더불어 그보다 최소 100배는 더 가공할 미국의 대량살상무기들을 동시에 제거하기 위한 논의가 공평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원래 무기가 많은 나라니까, 군사적 제국주의 나라니까 계속 문제제기하면 되지만 북은 애초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생각은 균형잡힌 대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 핵실험에 집중하기 보다 북핵과 미국이 가지고 있는 100배나 가공할만한 대량살상무기들을 어떻게 하면 동시에 제거해갈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죽었다 깨어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비정상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북미간에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해야 한다. 서로 칼을 쓰려는 사람들은 동시에 칼을 내려놓고 한발 물러나야 한다.
역사는 역사적 순간을 냉정하게 기억한다. 2006년 한반도에 전쟁이 나네 마네 하던 시절, 그 전쟁은 어떻게 막아졌는가를 논한다면 평화를 지향한다는 진보진영이 설 자리가 그리 녹록치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전직 대통령으로서 악마와도 대화해야 한다며 북미간 직접 대화할 것을 촉구하고 한나라당의 대북포용정책 폐기 공세에 맞서 햇볕정책은 지속되어야 한다며 목청을 높혔다. 그리고 PSI훈련 참여에 신중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가장 타당하면서도 정곡을 찌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의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죽이기에 맞서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구체적인 전쟁방지 조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진영은 북핵이 용인되어야 하는가, 절대 용납해서는 안되는가 하는 북과 북핵에 대한 관점 논의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면서 정작 한반도 평화를 목죄고 있는 현안 문제들인 대북제제, PSI훈련 참여, 경제봉쇄 강화 조치들을 시기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마침 소위 ‘일심회’라는 간첩단 사건이 국정원과 수구언론에 의해 적극 홍보되면서 진보진영의 평화공세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진영은 관점 토론에 집중하기보다 당장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촉발하고 있는 현안들에 어떻게 하면 내실있게 대응할 것인가에 주력해야 한다. 북핵문제에 대한 관점은 다르지만 현안문제들에 대한 이견은 그다지 없다. 그럴수록 무엇을 함께, 당장 실천해야 하는가에 뜻을 모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와 통일을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보진영이 관점토론에 열을 내고 있을 때 김대중 전직 대통령이 보여준 소신과 신념은 실질적인 평화와 통일운동으로 평가될 것이다.
이러한 정세에서 민주노동당 대표단의 방북은 그런 의미에서 각별하다. 소위 ‘일심회’ 사건으로 그 의미가 많이 축소되었지만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가 한반도 정세에 긍적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여지는 시점에서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진영이 전쟁을 자극할 현안문제들에 합심해서 싸워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