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의료개방의 신호탄,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세계화와 민중 제42호
최인순| 의료개방저지공대위,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집행위원장
경제자유구역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편의시설이라는 구실을 들어 유치하기로 한 외국인 전용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이 11월 16일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국회로 이첩되었다. 애초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의료기관이 구역 내 거주하는 외국인의 편의시설일 뿐, 내국인을 진료하지 않으므로 국내 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외국 자본이 수익성을 이유로 내국인 진료를 요구할 것이므로 결국엔 국내 의료체계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료개방저지 공대위 등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무대응으로 일축해왔다. 그래놓고는 지난 오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내국인을 진료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MOU를 외국자본과 체결하고 이제 그를 뒷받침할 법안 개정안을 제출하였으니, 그 후안무치에 기가 찰 따름이다.
개정 법안에 의하면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은 우리나라 사람을 진료하면서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고, 우리나라 의료수가의 5-7배(건강보험혜택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사실상 10-20배의 진료비가 된다)에 이르는 치료비를 받아서 번 돈을 자기나라에 송금하면서도 자금을 지원받고, 각종 세제 혜택을 받고, 환경 및 고용 조건의 규제도 완화된다. 외국 병원에 이렇듯 많은 특혜를 주는데도 한국의 병원협회가 이 개정안에 찬성하고 있으니, 이는 동일 환자를 두고 경쟁할 한국의 병원에도 같은 권리를 마련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병원협회는 외국 병원과 마찬가지로 국내의 병원도 영리법인화할 수 있게 할 것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서 탈퇴할 수 있을 것, 수가를 올려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병협은 영리법인이 되어야 의료서비스가 개선되고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 둘 다가 있는 미국의 경우 영리병원은 의료진을 포함한 인건비에 더 적은 돈을 지출하였다는 통계가 있다. 환자를 돌 볼 사람이 적었는데 의료서비스가 좋았을 리 만무한 것이다. 그 결과인지 메디케어(우리나라의 의료보호 환자쯤에 해당한다.) 중증환자의 사망률이 영리병원에서 7-25% 더 높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병원에 지불한 돈은 영리병원이 3-11% 더 많았다. 결국 영리병원은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는 별로면서 돈만 많이 드는 병원이면서, 병원의 돈벌이에는 아주 효과가 좋은 그런 제도이며 병협이 주장하는 경쟁력은 국민 건강을 위한 경쟁력이 아니라 병원의 돈벌이를 위한 경쟁력에 불과한 것이다.
병원이 영리법인화 되고 의료비가 올라가게 되면 지금의 건강보험 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으므로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민간보험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작년 우리나라 모 생명보험의 경우 2조원을 벌어서 가입자에게 6000억원이 돌아갔다는 통계가 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국민이 100원을 내면 회사가 100원을 내고 그래서 치료비로 사용된 돈이 190원인데 비해, 100원을 내고 30원만 돌아온 셈이다. 이런 민간보험은 국민 건강의 대안이 아니라 자본의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며, 더군다나 현재 암보험이나 상해보험 같은 민간의료보험이 운영되고 있는 상태에서 새삼 강조되고 있는 민간보험은 지금과 같은 보충형 민간보험이 아니라 대체형 민간보험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대체형(또는 경쟁형) 민간보험은 현재 강제가입이 의무화되어 있는 공적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민간의료보험을 말한다. 이러한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부자 국민은 영리법인으로 운영되면서 대체형 민간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소위 고급병원을 이용하면서 그들만의 트라이앵글을 구축하게 되면서, 자신들이 이용하지 않는 국민건강보험에서 이탈하게된다. 의료수가는 인상되고 부자는 빠져나가버린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의 악화는 대다수 국민에게는 의료보장의 저하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개정 법안은 우리나라 의료의 가장 큰 문제인 돈이 없으면 죽어야 하는 의료이용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악화일로의 길로 접어들게 할 뿐 아니라, 애초 설정한 자유구역 내 거주하는 외국인의 편의시설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하는 최악의 법안이다.
최근 KOTRA의 조사에 의하면 국내 의료시설을 이용하는 외국인들은 국내 의료시설이나 의사의 수준은 대체로 높게 평가한 반면, 의료진과의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높은 의료비등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의 임의 가입, 의료비용의 차별 적용을 불편하게 여기는 외국인들에게 건강보험은 아예 적용되지 않으면서 의료비는 국내 수준의 5-7배가 높은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은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개정안은 대다수 국민의 건강권은 물론 특구내 거주하는 외국노동자의 건강권마저 국내외 병원 자본에게 팔아넘기는 의료제도의 시장화 개편시도이며, 이를 저지하지 못하면 인간의 권리인 건강은 돈 있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