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1주년을 맞는다.
한미FTA로 한국 사회가 총체적으로 친자본·친시장적 일방통행을 가시화할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지난 1년간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또한 향후 어떠한 변화가 예상되는지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13일 오전 10시부터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2층에서 ‘한미FTA 발효 1년 평가 토론회’를 열고 지난 1년간의 정책모니터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범국본 공동집행위원장인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보건의료 ▲농업 ▲한국 법체계 ▲투자자국가소송(ISD) 등 사회 각 분야의 걸쳐 한미FTA가 미친 영향을 진단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정태인 원장이 ‘한미FTA 발효 1년, 새로운 통상전략의 모색’을,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이 ‘농업 피해와 쇠고기 추가개방 논란’을,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이 ‘보건의료 개방 및 공공부문의 자발적 민영화’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종보 외교통상위 변호사가 ‘한미FTA는 한국의 법령을 어떻게 바꾸었나?’를, 사단법인 오픈넷 남희섭 상임이사가 ‘ISD 재협상 논란’을 발표했다.
‘보건의료 분야에 미치는 영향’ 발표에 나선 보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한미 FTA로 인한 변화는 급격하게 일어나기 보다는 서서히 그리고 친자본적·친시장적인 일방향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때문에 1년만에 한미FTA가 초래한 한국사회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피력했다.
전국 8곳에 ‘영리병원 설립’
그럼에도 우 실장은 “1년이라는 짧은 시기, 또 양대 선거가 실시된 시기였음에도 제도적인 변화들이 일어났고 민영화 정책이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이 추진됐다”며 “이러한 점에서 한미FTA가 가질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피력했다.
참고로 정부는 의료나 공공분야는 한미FTA의 ‘예외’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1년 동안에도 보건의료분야와 공공분야의 민영화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동했다는 게 우 실장의 주장.
그렇다면 우석균 정책실장이 왜 그런 주장을 펼칠 수 있는지, 지난 1년간 있었던 일들을 살펴보자.
먼저 이명박 정부는 작년 총선 직후인 4월 17일 국무회의에서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또한 4월 30일에는 복지부가 이 시행령에 따른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영리병원에 대한 ‘규칙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후 10월 29일 대통령 선거를 2달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규칙을 최종 공표했다.
이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주요 골자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영리병원은 투자지분 중 50%를 국내기업이 투자 가능하고, 내국인 진료도 무제한 할 수 있으며, 외국의사 면허소지자는 전체 의료진의 10%면 되도록 한 것이다.
우석균 실장은 “이명박 정부는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을 위한 법률 개정을 시도했으나 여론의 반대로 가능하지 않자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방법으로 이를 허용한 것”이라며 “이러한 영리병원 허용이 한미FTA 발효 후 총선 직후와 대선 전에 시행된 것은 우연으로 볼 수 없다”고 피력했다.
또한 그는 “영리병원 시행령·시행규칙은 현재까지 허용되지 않았던 국내 영리병원을 우회적으로 허가해주는 것”이라며 “외국의료기관과의 공동운영을 명문화해 수익 분배 및 해외 송금 등 한국의 의료기관에서는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제는 이러한 영리병원이 비단 인천 송도와 제주도에서만 허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미FTA 발효 당시 경제자유구역은 대구와 부산 등 3개 광역시를 포함해 전국 6개 지역 18개 시 였다.
한미FTA 발효는 이들 지역에서 영리병원 설립 허용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다시 되돌릴 수가 없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퇴임 직전인 지난달 4일 충북과 강원도 2곳을 추가로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다. 즉, 전국적으로 영리병원이 설립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고삐 풀린 의약품! ‘가격 폭등’ 우려
한미FTA 발효로 예상되는 또 하나의 변화는 의약품 및 의료기기 가격의 폭등이다. 이미 2005년 미국과 FTA를 체결한 호주가 2008년 이후 의약품 가격폭등의 후폭풍을 경험한 바 있다.
지금까지 의약품 및 의료기기의 급여대상 결정, 약제비 결정, 급여대상 평가, 경제성 평가 등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내에서 복지부의 주도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미국은 FTA 협상 과정에서 “일부약제의 급여대상 결정과 경제성 평가 등은 정부가 아니라 독립적 검토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되고, 그 독립적 검토절차에 제약회사 및 의료기기 기업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이에 정부는 2011년 12월 2일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을 일부 개정하고, 「독립적 검토절차 운영규정」을 제정·공포한 바 있다. 한미FTA 발효와 더불어 의약품 급여대상 결정 등 검토절차를 정부가 아니라 독립적 기구에서 하도록 제도를 변경한 것이다.
우석균 실장은 “의약품 검토절차에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이 모두 제외됐다”며 “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제3의 의약품 급여여부와 경제성 평가 등에 대한 별도 절차가 시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검토절차 운영규정은 8개 단체에서 추천한 30명 이내로 구성되는데, 현재 8개 단체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병원협회, 한국병원약사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이다.
우 실장은 “독립적 검토절차 존재 자체가 이미 정부의 결정권한의 약화를 뜻하며, 제약회사 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비록 제약회사 등이 검토절차 주체에서는 배제됐지만, 의료전문가 단체들 위주로 짜여진 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문제는 향후 운영규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미국은 “독립적 검토절차에 제약회사 등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 실장은 “독립적 검토절차는 실제 작년 8월 이후부터 운영됐고, 박주선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1월 31일까지 8건의 치료재료가 검토를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아직 그 영향력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는 이르지만, 짧은 기간에 8건이나 신청한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건보 당연지정제 폐지 우려
한미FTA 발효로 또 하나 예상되는 보건의료 변화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 당연지정제 폐지와 공단이 보유한 국민 개인질병정보의 민간의료보험사 공유 이다.
민영의료보험은 한미FTA의 금융서비스 분야 협정의 적용을 받는데,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6월 발간한 ‘한미FTA와 민영의료보험 시장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미국계 보험회사가 당연지정제 폐지와 요양기관에 대한 심사권한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연지정제’는 법정사회보장제도를 구성하는 활동이나 서비스에 대한 유보조항 때문에 분쟁의 소지가 적다. 그렇지만 보험회사의 요양기관에 대한 심사권한의 경우 미국계 보험회사가 자신의 이익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게 되면 ISD의 제소대상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보고서는 ‘금융서비스 분야에서의 FTA 내용은 보험회사에게 의료제공자에 대한 심사권한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보험회사들은 민영의료보험의 제3자 지불제도 등 심사권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경영상의 장치를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서술하고 있다.
우 실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보험정보의 공유와 보험회사의 직간접적 의료기관 심사 등 직접 계약허용 등의 움직임을 가속화 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 보험정보원 설립 추진이 일단 중단된 것으로 보이나, 이는 보험개발원의 심사평가원을 통한 공적 건강보험정보의 민영의료보험사와의 공유 추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밖에 한미FTA 보건의료 분야 내용 중 ‘의약품 허가와 특허의 연계’, ‘신약 급여고시기간 60일에서 다시 20일로 변경’ 등도 향후 국민부담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사안들이다.
우석균 실장은 “(의약품 가격이 폭등한) 호주의 경우 특허의약품의 가격을 높이는 의약품 관련 제도가 개정될 때까지는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정부의 자발적 민영화 조치와 한미 FTA라는 ‘악몽의 조합’이 벌써부터 구체적 정치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우 실장은 “한미FTA는 정부의 공언과는 반대로 공공부문 민영화를 촉진하는 협정이며 다국적 기업들과 한국의 재벌들에게는 축복이지만 한국의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재앙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가 한미 FTA를 활용해 친재벌적, 친시장적, 반서민적 정책을 추진한다면 경제위기 속에서 서민들의 민생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