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국립대병원에 대한 수익성 중심 경영평가 도입 반대성명:
의료상업화와 영리화를 부추길 기재부식 국립대병원 ‘정상화’와 경영평가를 중단하라
- 공공의료 마지막 보루 국립대병원, 기재부 수익성 잣대로 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 공공의료 강화와 국립대병원 노동조건 개선이 공공의료 정상화 방안
지난 19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이하 ‘공운위’)를 열어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방향’을 의결했다. 이는 성과연봉제(인센티브제) 및 임금피크제 확대, 경영평가 강화, 업무저성과자들에 대한 퇴출제도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아울러 기재부는 1단계 공공기관 정상화계획에 대한 이행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기재부는 2014년 말까지 방만경영 정상화계획을 이행하지 않은 공공기관은 전체 302개 중 13개 기관이고 그 중 11개가 국립대병원이었다며, 마치 국립대병원만이 “방만”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명시했다. 그리고 미이행 기관에 대해선 “원칙대로 2015년 임금을 동결”한다며 국립대병원에 이행 압력을 가했다.
이처럼 수익성을 앞세워 국립대병원을 평가하는 것은 이미 상업화된 한국의료를 더욱 상업화시키고 그나마 덜 상업화된 공공의료를 사지로 밀어넣는 것이다. 이는 또한 재작년 진주의료원을 폐업시키면서 공공의료를 강화시키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말과도 정면 배치된다. 우리는 공공의료의 마지막 보루인 국립대병원을 상업화시키는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에 반대하고, 이에 맞서 싸우고 있는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을 지지하며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국립대병원에 대한 수익성 위주의 경영평가는 병원을 상업화시킬 것이다.
교육부가 준비하고 있는 국립대병원 경영평가 기준은 의료수익 증가율, 환자 증가율, 비용대비 의료수익 비율, 인건비 및 관리업무비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평가항목은 공공의료기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지나치게 수익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으로 국립대병원의 상업화를 부채질하는 조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경영평가에 대해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심지어 병원측에서도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병원경영을 걱정하는 국립대병원 경영자들마저도 지난 16일 전국 국립대병원 기조실장 회의에서 교육부의 경영평가 기준에 문제가 있다는데 합의를 하고 향후 공동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하기까지 했다.
공공병원 중 유일하게 먼저 정부기관으로 지정되어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받고 있는 보훈병원은 국립대병원의 앞날을 보여주고 있다. 보훈병원(보훈복지의료공단)은 수익성을 중시하는 평가지표로 인해 병원의 공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보훈병원은 이미 의사 성과연봉제를 전면 도입했고, 수익을 위해 과잉진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훈공단의 보수관리 지표에서 의료서비스의 질이나 공공성이 아닌 성과연봉제 도입이 핵심적 평가요인이었다는 사례를 비춰봤을 때, 국립대병원의 경영평가도 보훈공단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즉, 공공의료의 주요 주체인 국립대병원을 경영실적을 근거로 평가하는 것은 국립대병원으로 하여금 민간병원과 다를 바 없이 수익성 경쟁에 뛰어들라고 하는 것이며,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병원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는 국립대병원의 의료의 질을 저하시킬 것이다.
이번 정상화 방안에는 성과연봉제와 업무 저성과자에 대한 퇴출제도(2진 아웃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수익성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는 환자들의 의료비를 상승시키고,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를 유발한다.
실례로, 서울대병원은 초진환자 특진비 100%, 재진환자 특진비 50%, 검사비 10%를 교수들에게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런 돈벌이 인센티브제도는 당연히 의료의 질 상승이 아니라 과잉검사와 과잉진료로 이어졌다. 더 많은 환자를 보기위해 1분 진료를 서슴지 않았고, ‘성과’를 위해 야간과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수술이 이루어졌다. 또한 경영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싸구려 의료재료들이 사용되었다는 것이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성과연봉제나 퇴출제는 병원노동자의 업무강도를 높일 것이고 이는 의료의 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병원의 병상당 인력 과 고용안정성은 의료의 질과 직결되며, 숙련된 인력이 많을수록 의료의 질이 높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다시 말해 성과를 기준으로 노동자들을 경쟁시키려는 것은 의료의 질 향상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고, 오히려 병원 인력을 감소시켜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만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셋째, 기재부식 ‘정상화’ 미이행 기관 임금동결은 민주주의 후퇴이자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다.
기재부는 2014년 말까지 방만경영 정상화계획을 이행하지 않은 13개 기관의 2015년 임금을 동결하고, 2015년 6월말까지 정상화계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추가로 2016년 임금을 동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대부분의 국립대병원이 이 조치에 해당한다.
임금과 복리후생는 노사 합의의 문제이고, 이를 단협을 통해 규정하도록 한 것이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확립된 작업장에서의 기본적 민주주의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전면적으로 임단협 교섭에 개입을 하고 가이드라인을 통해 지침을 하달할 뿐만 아니라, 경영평가 등 사후적인 방식으로도 지속적으로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작년 6월 제9차 공운위 ‘방만경영 정상화계획 이행방안’에서 “정상화 대책은 공공기관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하여 추진한다”는 스스로의 원칙조차도 저버리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에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임금인상을 억제해왔을 뿐만 아니라 병원의 신·증축, 시설 개보수, 의료장비 확충기금 집행 동결 등을 통해 국립대병원의 단체교섭에 개입해왔다. 최근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에 대한 단협을 병원 측이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방만경영 정상화계획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을 보더라도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의 칼끝이 직접적으로 노동조합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의료민영화를 반대하여 앞장서서 파업 및 투쟁을 벌여온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등에 정부의 탄압이 가해지고 있음에 주목하고 이에 항의한다.
넷째, 기재부가 주도하는 국립대병원 ‘정상화’는 의료민영화의 일환이다.
보건의료 관련 주무부처도 아닌 기재부가 나서서 국립대병원의 방만경영 개선을 언급하는 것은 박근혜정부의 정상화가 오로지 재정긴축, 그것도 복지재정 삭감에만 초점이 맞춰져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국립대병원은 그 하나하나의 병원이 각 지역의 모델이 되는 지역의 거점 공공의료기관이다. 따라서 국립대병원이 해야 할 역할은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적자를 감안하더라도 공공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의 표준진료지침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윤의 잣대를 들이대며 국립대병원을 평가하는 것은 공공의료에 대한 국가 기능의 포기를 의미하고, 이것은 의료민영화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이번 조치는 작년 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착한적자 지원법’이라고 불리는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도 상충된다. 개정안에는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수익성이 낮은 필수보건의료 등 공공의료를 수행하면서 발생한 적자에 대해서는 불리하게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이는 적자를 핑계 삼아 도지사가 일방적으로 폐업시킨 진주의료원 사태를 교훈삼아 개정된 것으로, 공공의료의 최소한의 역할에 대해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대병원 ’정상화’는 이러한 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국립대병원에 대한 경영평가와 ‘정상화’는 제2, 제3의 진주의료원을 만들어 내거나, 국립대병원이 민간병원과 다르지 않는 의료행태를 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는 한국의 의료상업화를 그나마 막아내던 국립대병원의 영리화를 초래하여 우리 사회의 전체 의료의 상업화‧영리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우리는 공공의료를 파괴하고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이러한 시도에 맞서 시민들과 병원노동자들과 함께할 것임을 밝힌다.<끝>
2014. 1. 21.
건강권실현을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