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 근거 없이 계속되는 중국인 차별과 배제가 멈춰져야 한다
- 감염자와 특정 집단에 대한 비난은 중단되어야 한다
코로나19가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지적한 부실한 공공의료와 인력의 문제는 점차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은 이미 병상이 없어 확진판정을 받고도 수십명이 집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고, 음압병상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전원되다 사망하는 환자도 생겼다. 정부는 이제라도 의료시스템을 공공적으로 전환하면서 대응해야 한다.
감염병이 드러내고 있는 이 사회의 또 다른 민낯은 차별과 배제다. 열악한 폐쇄병동에 갇혀 있던 청도 대남병원 정신질환자들의 잇따른 죽음은 그 생생한 증언이다. 또 국내 환자 간 감염이 대부분인 상황에서도 여전히 중국인이나 중국동포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계속되고 있다. 특정 환자 개인들과 집단에 대한 혐오도 짙어지고 있다. 차별과 배제는 바이러스가 퍼지는 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가 위기와 혼란에 직면하면서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논리가 영향력을 얻고, 여기에 일부 세력들이 기생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경계한다. 무너진 사회공공성이라는 진정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주변 약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야말로 부당하고 해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맞닥뜨린 감염병 확산이라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인권을 보장하고 평등하게 대우할 것을 엄중히 요구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정신질환자와 취약계층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청도대남병원에서 사망자 8명 중 6명이 발생했다. 사실상 수용소에 불과한 폐쇄병동에서 정신질환자들은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며 신체기능 저하상태로 내몰려 왔다. 방역시스템에서 배제된 탓에 103명 환자에 감염이 확산됐고, 최근까지도 대다수가 같은 공간에 갇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야만적 상황은 정부가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환자들을 적절한 치료가 가능한 1인실로 한시 급히 전원해야 한다. 나아가 비인권적이고 치료와 사회복귀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수용시설형 의료기관은 사라져야 한다. 지역사회 개방형 정신의료체계 중심으로 정신질환자들을 보호하는 체계 전환이 필요하다.
또 폐쇄병동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 취약계층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신체약화와 고립에 방치돼온 저소득층은 이제 지역사회 복지중단에까지 직면했다.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장애인도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정보를 얻도록 보장해야 한다.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는 공공병원에서 소개될 취약한 환자들에 대한 의료제공도 국가책임·관리 하에 지속되어야 한다.
한편 약자들에 대한 권리보장이 노동자의 부당·초과노동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노동자와 가족에게 유급병가와 유급 돌봄휴가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하고, 보건의료와 사회복지, 우편·집배 등 대면 서비스 노동자에게는 충분한 보호구가 지급돼야 한다.
둘째, 근거 없이 계속되는 중국인 차별이 중단돼야 한다.
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전문가단체의 이름으로 중국인 전부 입국금지를 주장해왔다. 미래통합당 등 보수정치세력과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다. 국제적 합의를 어기고 ‘우한폐렴’이라는 용어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경폐쇄는 현실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비정상적 입국이 늘어나고 감염자의 능동적 검진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부작용이 크다는 게 학계와 국제사회의 공통된 견해다. 비과학적일 뿐 아니라 부당한 희생양을 찾아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주장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중국 유학생에 대한 교육부의 인권침해적 조치도 중단되어야 한다. 개강하면서 입국하는 중국 유학생들 상당수가 생활시설 등에 사실상 격리되고 있다. 현재 후베이성 외 중국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은 유학생을 포함해 모두 방역상 특별 입국절차를 거치고 있다. 유학생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여기에 더해 격리조치를 강제할 의학적 근거는 없다. 휴학 권고는 더욱 과도하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감염자들 간 확산이 주되게 벌어지고 있고 현재까지 중국 국적 환자는 단 6명에 불과한 상황이므로, 국경봉쇄와 중국인 배제는 더더욱 실효성이 없다. 오히려 중국 유학생들이 대구경북이 위험하다며 휴학을 고려하는 게 직면한 현실이다. 불필요한 중국인 차별 주장과 정책을 펼칠 역량이 있다면 국내 방역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감염자와 특정 집단에 대한 비난은 자제되어야 한다.
격리와 진단과정 중 실수를 범한 개개인에게 과도한 비난과 책임이 쏠리고 있다. 이는 부당할 뿐 아니라 시민들의 투명하고 능동적인 자기감시와 정보공개만 어렵게 만들 뿐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감염인 탓을 부각할 정보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 또 신상과 상세 동선 공개는 최소화해야 한다. 감염자가 지나간 특정 시간과 장소만을 공개하는 것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신천지 관련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이 단체의 어두운 면을 부각·과장하는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이들이 당국의 역학조사나 방역조치를 거부한다면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이 방역조치를 거부하리라고 예단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들의 가장 큰 문제인 폐쇄적 태도는 사회적 혐오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인 측면도 있다. 특히 교단 지도자들이 아니라 평신도들 전부를 비난하고 낙인찍어선 곤란하다. 보건학적으로도 방역의 주 대상을 혐오하는 것은 방역에 가장 큰 어려움을 가져온다. 혐오로 이들을 더욱 숨게 해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는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해결은 바이러스가 조명하는 불평등과 혐오를 바꿔나가는 사회개혁 과정과 함께여야 한다. 인권보호에 방역의 성패가 달려있기 때문에 이것은 당면한 과제다.
게다가 외국인혐오는 곧 우리의 문제가 되었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에서 중국인에 대한 폭행이 자행될 때 우리에게는 먼 일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이제 15개 국가가 한국인 입국을 금지·제한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외국인을 혐오하면서 외국에서 차별받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개인의 인권을 잠시 접어두는 게 아니라 가장 철저하게 보장할 때 공중보건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불평등하고 시장주의적인 의료체계와 사회구조를 올바르게 겨누기 위해서도 차별과 혐오를 넘어야 할 때다. 우리 보건의료인들은 사회가 정의로운 감염병 문제 해결의 길을 걷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