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신종 전염병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두 달여 사이에 1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기하급수적인 확산 속도와 치사율 10%에 근접하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과 비교하여 한국의 효과적인 대응과 치사율 1%대 초반이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국민은‘코로나19 격리비용 7,300만 원’의 미국 의료시스템을 보면서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와 의료시스템에 대하여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보면 유사한 사례인 사스와 메르스를 겪었으면서도 재난 상황에 대비하여 국가책임과 공공의료체계는 전혀 확충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노동자·민중 서민들에 집중되어 고통을 전가하는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적폐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구지역의 경우, 확진자를 격리하여 치료할 수 있는 공공병원이 없어 남원의료원으로 입원하거나 경증환자를 김제 연수원으로 입소시키고 감염전담병원이 없다 보니 무늬만 음압 격리병상이 임시로 만들어져 운영되었고, 병상이 없어 자가에서 대기하는 일까지 발생하였으며 노인요양시설은 감염병 위기상황 관리 메뉴얼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등 우리나라 공공의료체계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정부와 여당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며 자화자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 3월 15일 ‘국가재난안전대책본부’는 대구 및 경북 일부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다. 특별관리지역 지정 23일 만에 법적 근거를 둔 특별재난지역으로 격상하여 소득을 상실한 가구 생계비를 보조하는 생활안정보조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자금융자 등이 가능해지고 국세, 지방세, 건강보험료, 연금보험료, 전기·통신요금 등 재난지원 복구금액의 50%가 국고보조를 통해 긴급추경 11.7조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긴급한 재난 상황이라 하더라도 동의와 절차가 있다. 긴급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어떤 근거도 없음에도 정부와 여당은 건강보험 재정의 절대적 기여자인 가입자들의 의견수렴을 내팽개쳤다. 건강보험 재정지출에 대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논의 등 건강보험료 부담의 주체인 가입자단체와 어떤 사전협의 조치사항도 없었다. 오만함과 독선을 여과 없이 보여준 것이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특별재난지역 등으로 인한 보험료 경감(3개 월)에 따른 경감 보험료는 1조622억 원의 50%인 5,311억 원이다. 정부는 이중 2,655억 원만 추경에 반영할 계획인데, 이는 건강보험 수입 감소 예상액 5,311억 원의 절반이다. 즉 경감되는 보험료의 25%를 국가가, 나머지 25%를 건강보험이 각각 부담하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75조(보험료 경감)와 보건복지부 고시 제2017-29호 보험료 경감 고시 제2조(보험료 경감 적용방법) 규정에 따르면, 가입자 또는 세대별 보험료액의 100분의 50까지 경감할 수 있다. 국가적 재난 상황이므로 보험료를 경감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부담을 국가가 아니라 보험 가입자들에게 전가할 게 아니라 정부가 국고에서 전액 지원해야 한다. 국민이 재난 상황에 부닥쳐 보험료를 경감한다고 해놓고 국민이 낸 보험료로 충당하는 것이 정상적인 정책인가. 이는 건강보험 재정을 위태롭게 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요양급여비용 선지급이 대구·경북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요양기관이 신청만 하면 3개월 치 급여비용을 선지급하도록 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요양기관만이 아니라 건강보험료 체납 요양기관(3,683개 요양기관 체납액 458억 원)들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고, 지난 메르스 사태 당시 요양기관 선지급 관련 채무(약 20억)가 아직 미납인 상태에서 요양기관들의 요구만으로 정부 보전을 전제로 최대 약 3조 9,751억 원에 가까운 건강보험 재정 지출을 결정하였다. 이는 요양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눈감고 부추기는 것이다. 그리고 세밀한 대책도 없고 절차를 무시한 졸속 결정은 적지 않은 후유증을 초래할 것이다.
코로나19는 한국사회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으며 전 세계가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적 비상체계로 운영하고 국가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 국가책임 정상화 및 확대를 위한 대국민 운동을 전개했지만, 국고지원은 법으로 규정된 20%에 훨씬 못 미치는 14%에서 그쳤다. 정부가 그동안 미지급한 국고지원금도 24조여 원에 이른다. 결국, 이러한 국가책임의 유기는 보험재정을 불안정하게 하는 또 다른 편법을 양산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사태는 한국사회의 근원적 치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보건의료 분야에서 너무나 취약한 공공의료와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국가부담 회피에서 더욱 그렇다. 정부는 근시안적이고 땜질식 정책에서 벗어나 국민의 눈높이와 기대에 맞게, 건강보험재정이 아닌 국가부담을 통해 국가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정부는 기업주들과 채권자들(금융기관)을 지원하기 위해 100조 원을 선뜻 내놓았다. 기업들이 이 돈을 상환하지 못하면(그럴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정부 재정에서 채워 넣어야 하고 이것은 세금에서 충당된다. 기업주들에게는 이렇게 천문학적 거액을 통크게 지원하면서,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건강보험에 더 많은 지원은커녕 도리어 2,655억 원을 부담지우려 한다.
경감액 전액을 국고에서 부담하라.
2020년 3월 25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가난한이들의 건강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기독청년의료인회, 광주전남보건의료단체협의회, 대전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서울YMCA 시민중계실,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성남무상의료운동본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동조합,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