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 : 경북일보
어제(13일) 정부가 ‘감염병 효과적 대응 및 지역 필수의료 지원을 위한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병상 동원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공공의료를 방치해 병상부족 사태를 초래한 지금 면피용으로 발표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이 미흡하고 매우 뒤늦은 계획이다. 이 정부가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전혀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발표이다. 시민들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귀담는 정부라면 공공의료강화계획을 완전히 다시 내놓아야 한다.
첫째, 공공병상 확충 안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2025년까지 겨우 지방의료원 3개소를 신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감염병 시대 시민들을 우롱하는 수준이다. 정부가 정한 70개 의료생활권 중 적정 규모의 종합병원이 전혀 없는 지역이 25곳이다. 이런 지역들의 의료현실은 포기하고, 광역지자체임에도 지방의료원이 없는 울산과 광주 같은 지역도 외면하겠다는 선언이다. 게다가 정부가 발표한 3개소는 이미 설립이 추진 중인 지역이다. 부산서부권과 대전동부권은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중이고, 진주권은 이미 경남도민들이 공론조사에서 95.6% 압도다수의 의지로 공공병원을 설립하기로 한 바 있다. 이런 곳에 겨우 예타면제를 해주겠다며 생색내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다. 17개 시도별로 2개씩은 늘려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은 물론이다.
6곳을 이전신축하고 11곳을 증축하는 안도 크게 부족하다. 41개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중 35곳이 300병상이 안 된다. 정부는 이 중 절반인 17곳만 “중증 응급 대응이 가능하도록 적정 규모(약 400병상)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병원들은 지역거점 지역거점의료기관으로서 적절한 진료기능을 담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것이다.
어제 나온 내용은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감염병 효과적 대응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했지만 정부가 2018년 공공보건의료발전종합대책과 2019년 지역의료강화대책에서 내놓았던 것들을 목표시기를 특정해 재탕 발표한 것뿐이다. 조금이라도 의지가 있다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재인대통령은 지역별로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하고 취약지역 300병상 이상 거점 종합병원을 신설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정권 초기에 공약만 충분히 지켰더라도 오늘과 같은 병상 부족사태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5년 뒤에 5,000병상을 늘리겠다는 계획은 부족한데다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예비타당성조사 제도개선도 한가한 이야기다. 공공의료기관에 비용대비 경제성이라는 수익성 잣대의 예비타당성조사는 근본적으로 불필요하다. 일부 제도개선 수준이 아니라 국회에 이미 이를 아예 면제하는 내용의 개정법이 논의되고 있고 사회적 요구가 높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지방의료원 신·증축 시 국고보조율을 현행 50%에서 3년간 한시적으로 일부 지역에 60%까지 상향한다는 계획도 하나마나한 계획이다. 최소한 법을 개정해 70~80%까지 높여야 한다. 지자체 재정부담이 높아 설립추진이 어려운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둘째, 의료인력 충원계획도 매우 미흡하고 왜곡되었다.
의대정원은 의사협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즉각 늘려야 한다. 정부는 의사확충은 의정협의체에서 논의한다며 백지계획을 내놓았다. 이해당사자 집단하고만 협의해서 해당 정책을 논의하는 정부가 어디 있는가? 이는 정부 기능의 포기이며 전국민을 분노케 한 의사집단 진료거부에 대한 완전한 굴복이다. 국립의과대학 정원을 활용하거나 공공의대를 설립해 의사를 양성하고 공공의료기관에 의무복무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정책은 전혀 내놓지 않고 의사협회 입맛에 맞는 지역 수가가산과 특정 과목 수가가산 같은 의료비인상정책을 내놓은 것은 시민들을 배신하는 것이다.
간호인력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이고 타당한 방법은 환자 당 간호사 수를 법제화하는 것이다. 한국은 90% 민간병원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간호사를 적게 고용해 병상당 간호인력이 OECD 평균의 5분의 1 수준이고 면허간호사 중 활동인력이 절반에 불과하다. 이를 개선하려면 적정인력을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 이는 병원자본과 갈등을 감수해야 할 문제다. 반면 정부가 내놓은 유연근무제는 오히려 간호사를 저임금 소모품으로 쓰겠다는, 병원 경영자들의 입맛에만 맞는 정책이다.
이렇게 인력충원 정책은 미미하거나 왜곡된 반면, 인력충원으로 해결할 문제를 ‘스마트공공병원’이라는 이름의 의료산업화로 대체하려 하는 것도 문제다. 인공지능 환자관리, 위치주적, 원격 중환자 모니터링 등은 공공의료가 양적, 질적으로 제 기능을 하고 병원현장에 의료인력이 충분할 때 도입할지 말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이다. 공공병원과 공공인력이 극히 적은 상황을 방치하면서 이런 입증되지 않은 장비를 도입해주는 대기업 돈벌이 지원사업을 공공의료 강화계획에 끼워 넣는 것은 황당하다.
현재 한국은 병상과 인력부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10% 미만의 공공병상이 감염병 사태를 오롯이 감당하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민간병원자원을 서둘러 동원하는 것이 당장 눈 앞에 놓인 국가의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공병상을 늘려야 앞으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수많은 감염병 위기를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민 모두가 알게 되었다. 정부가 향후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되길 원치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이런 미흡한 계획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공의료 강화방안을 제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