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의 복지부는 기업복지부가 될 것인가
- 김승희 후보자 장관 지명은 윤석열정부 기업규제완화와 의료민영화 의지를 보여준 것
지난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장관에 김승희 전 의원·전 식약처장을 지명했다. 윤 대통령은 김승희 후보자를 지명하며 ‘현장과 정부, 국회에서 쌓아온 경륜과 전문성’을 언급했다. 그런데 그가 정부(식약처)와 국회(복지위)에서 발휘해온 전문성과 쌓아온 경륜이란 다름 아닌 의약품·의료기기의 안전과 효과를 평가하는 데 필요한 허가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영리 의료회사들 돈벌이를 위해 기업규제완화와 의료민영화를 추진해온 대표적 인물이다. 게다가 공직 수행 이후 김승희 후보의 행보는 제약 및 의료기기회사 로비스트로서의 활동이었다. 정호영 후보자 낙마 이후 고르고 고른 인물이 바이오 기업 로비스트란 말인가?
김승희 후보자는 보건복지위 소속 국회의원일 때 노동시민사회가 반대한 대표적 의료민영화 법안인 ‘첨단재생의료법안’과 ‘체외진단의료기기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첨단재생의료법안으로는 줄기세포·유전자치료제 등을 식약처 허가를 받지 않고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게 하려 했다. 기존 허가절차보다 허술하고 관련 이해당사자·연관자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만 거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또 이런 치료제를 임상시험(‘임상연구’)할 때 비용은 당연히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데 거꾸로 환자에게 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 이런 시도는 시민사회의 강한 반대운동 때문에 상당 부분 저지되긴 했지만 결국 인보사 사태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어 무분별한 재생의료 연구들이 난립하게 만들었다. 소위 ‘재생의료’라고 불리는 줄기세포·유전자치료제 등은 기존 의약품보다 예측·통제하기 어려운 심각한 부작용 위험이 높으므로 오히려 더욱 신중하지 않으면 커다란 안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분야이다. 그런데도 김승희 전 의원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난치성 질환 환자들의 기대를 악용해 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영리회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가 발의한 체외진단의료기기법도 식약처가 해오던 체외진단기기 임상시험 승인 절차를 무력화해서 정확하지 않은 기기들이 허가될 가능성을 높인 것이다.
김승희 후보자는 그보다 앞서 식약처장일 때는 소위 ‘웰니스 기기’ 분류를 만들어 사람의 건강을 다루는 의료기기임에도 식약처 허가를 받지 않아도 출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웰니스 기기인지 의료기기인지에 대한 판단은 제조회사의 자의적 판단에 맡겼다. 김승희 식약처장은 이 때도 산업계 입맛에 맞는 정책만 편다는 각계의 비판에 직면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강행했고 정확도가 낮은 건강·만성질환 관리 기기들이 판매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김승희 후보자는 공직에서 기업을 위한 규제완화를 한 후에 법무법인에서 바이오·제약 기업들을 위한 고문 역할을 한 후 다시 복지부 장관에 지명됐다. 전형적인 회전문 인사다. 회전문 인사 끝판왕이라 불리는 한덕수 총리에 이어서 의료민영화에 특화된 인물을 회전문으로 복지부 장관에 앉이려는 윤석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5년을 예상할 만 하다. 김승희 후보자와 함께 지명돼 인사청문회 없이 며칠 전 임명된 식약처장의 당선 일성도 ‘산업성장을 위한 규제완화’였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의료와 복지확대가 아니라 영리기업들의 산업 지원부서로 정부 부처들을 활용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후보 시절에 ‘가난한 사람들은 부정식품이라도 먹게 해야 한다’고 한 데 이어 ‘암 걸려 죽을 사람은 임상시험 완료 전 약이라도 먹게 해줘야 한다’면서 미국 FDA(식품의약국) 규제가 과도하다고 한 사람이다. 이런 논리는 전형적으로 바이오 기업들이 규제 완화를 위해 내세워온 것이다. 하지만 설령 치료가 어려운 질병에 걸린 환자라도 안전하지 않은 의약품 부작용으로 고통받지 않고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고 존엄하게 남은 삶을 살 권리가 있다. 이런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라고 식약처와 보건당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김승희 후보자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도 역행할 인물이다. 국회의원 시절 문재인 케어 같은 보잘것없는 보장성 강화정책도 재정 건전화론을 펴며 반대했다. 재정절감을 앞세우며 복지를 축소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이 밝혀온 기조와 일치한다. 윤석열 당선 후 기업주들의 조직인 경총도 ‘보험료 폭탄론’을 앞세우면서 건강보험 보장을 축소해야 한다고 이에 발맞춰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노동자와 자영업자 등 서민들은 이미 건보료와 연금보험료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OECD 평균만큼 내고 있다. 이보다 훨씬 덜 내고 있는 것은 기업주다. 기업들은 GDP의 1.7%(약 35조원)을 덜 내고 있다. 보험료 부담으로 서민들을 협박할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더 부담하고 정부가 책임을 져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또 비급여를 통제해서 의료공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김승희 후보자는 이런 길과는 반대의 길을 걸을 인물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 지금의 세계는 사회생태적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코로나19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새로운 팬데믹 출현이 예고되고 있으며, 기후재난으로 인한 건강과 생명의 위기는 심화될 것이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시급한 과제는 공공의료의 강화, 인력 확충,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이다. 그리고 돌봄과 복지를 강화해 서민들의 삶을 지키는 것이 복지부의 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재난자본주의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며 기업 돈벌이를 위한 기업규제완화와 의료민영화에 특화된 복지부 장관을 임명하려는 것에 우리는 강하게 반대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승희 장관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