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2“노무현 정부 의료정책은 부자 위한 “병원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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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위기의 한국의료, 어디로 가야 하나 <2> 영리병원 허용 비판 ======

  
  정부는 사실상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을 가속화하는 각종 법안을 추진 중이다. 과연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한국의료의 대안일까? 최용준 한림의대 교수는 정부와 일부 의료계의 영리병원 허용 주장과 그에 따른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초래할 여러 가지 상황을 꼼꼼이 따져보았다. 편집자.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과연 한국의료의 대안인가?
  
  지금 우리나라 보건의료 제도는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 9월부터 정부가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는 여러 법률들의 제정 및 개정 때문이다. 대표적인 보기 두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재정경제부가 제출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9월 10일 입법예고). 이 개정안은 기존 법률에서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이라는 용어를 없애고, 의료기관 개설의 주체로 기존의 “외국인” 외에 “외국인 투자 기업”을 덧붙였다.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이라는 용어를 없앤 것은 곧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경제자유구역에 사는 외국인만을 상대해서는 외국병원이 수입을 올릴 수 없고 따라서 들어올 외국병원이 없다는 것이 법률 개정의 이유라고 한다. “외국인 투자 기업”을 덧붙인 것은 국내 기업이 영리병원을 세우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외국인투자촉진법은 “외국인 투자 기업”을 “외국인”의 투자 금액이 5천만 원 이상이면서 주식의 10% 이상인 기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중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다음으로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한 복합도시개발 특별법(기업도시법) 제정안(9월 22일 공청회 자료). 법안 공청회 자료에 따르면 기업이 도시개발과 동시에 의료기관을 세울 수 있으나 병원 운영을 시작할 때 비영리 의료법인으로 바꾸어야 한다. 특이한 점은 노인 병원, 생명공학 전문병원, 암 전문병원 등 특수 목적 병원을 운영할 때 발생하는 잉여금 일부를 기업도시 개발에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말로는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으나 실질적으로는 의료기관을 운영해서 생기는 수익을 의료기관 바깥으로 유출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다. 말하자면 실질적으로는 영리법인 의료기관 운영을 용인하는 법이다.
  
  ”의료’기업’ 만드는 데 혈안된 정부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정부가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핵심 법안들이 모두 영리법인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나라 의료 제도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이들 정책은 모두 경제 부처에서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복지정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부처들의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정책에 맞서는 방파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국정의 형편이다.
    
  

  @연합뉴스

   참여정부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 공약이라 할 수 있는 45%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진료비가 100만원이면 자기 주머니에서 55만원을 내야한다는 뜻)의 80%까지의 확대와 8%에 머물고 있는 공공의료기관의 30%까지의 확대(OECD 평균은 공공의료기관비율이 75%이다) 정책은 새 정부 출범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전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경제 부처의 정책 드라이브가 참여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리병원, 정확하게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정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병원을 세우는 데 외부의 자본을 끌어들이고 병원을 운영하여 거둬들인 이윤을 자본 투자자들에게 배분하는 것이 영리병원이다. 영리병원은 ‘이윤 획득’을 존재 이유로 삼는 하나의 의료 ‘기업’인 셈이다.
  
  영리병원의 장점은 단순한 경제 논리, 즉 경쟁 논리라는 경제학의 상식에 기초하고 있다라는 점에서 주장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윤 동기는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경쟁력 강화는 서비스 개선과 비용 절감, 가격 하락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보건의료가 다른 재화나 서비스에 비해 특수하다는 것이 모든 보건학과 보건경제학 교과서의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요약하면 의료라는 재화는 다른 상품과 달리 소비자가 의료라는 상품을 판단하기 곤란하고 따라서 공급자가 주도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의료가 필수재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효율적일까?”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효율적이다? 이론적으로도 사실로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지 오래다. 우선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일 경우 하지 않아도 될 비용부담이 크다. 영리병원은 우선 비영리병원보다 세금부담이 높다. 또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마케팅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비영리병원을 운영할 때는 그리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가 있다.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배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먼저 수입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의료의 특성인 소비자 무지(consumer’s ignorance)를 악용하여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환자는 자신의 병이나 치료 내용에 대하여 (설명을 듣더라도) 알기 어려우므로, 속수무책인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서비스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환자의 조기 퇴원을 유도하여 병상 회전율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의료 산업에서는 의료진, 특히 간호사나 보조 인력의 수를 줄이는 것이 효과적인 방안일 수 있다.
  
  이렇게 상식선에서 파악할 수 있는 영리병원의 장단점은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미국의 사례가 도움이 된다. 미국의 경우 2002년 현재 영리병원의 병상수가 전체 병상수의 13%로,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을 비교할 수 있는 자연 실험(natural experiment)의 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연구 결과 몇 가지만 살펴보자.
  
  -메디케어(Medicare)* 중증 환자의 영리병원 사망률은 비영리 비수련(non-teaching) 병원보다 7%, 비영리 수련병원보다 25% 정도 높았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미국 연방 정부가 운영하는 의료보장 제도다.)
  
  -여러 연구에서 영리병원 진료비가 비영리병원 진료비보다 3-11% 가량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영리병원 진료비가 더 싸다고 보고한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보다 관리 운영비를 더 많이 지출하는 반면, 간호사와 기타 의료진에 대한 인건비 지출은 더 작은 것(40.9% 대 48.0%)으로 나타났다.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환자 사망률을 비교한 15편의 연구 결과를 메타분석을 통해 종합한 결과, 영리병원 환자 사망률이 의미 있게 높았다.(메타분석은 쉽게 말하면 여러 연구를 분석하는 포괄하여 분석하는 연구방법이다.)
  
  서비스의 질 개선과 비용 절감, 가격 하락 등 영리병원에 대한 희망 섞인 기대가 현실 속에서 보기 좋게 배반당한 셈이다. 단지 영리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환자의 사망 확률이 커진다면, 그 어떤 것이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을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
  
  ”영리법인 의료기관 도입하면 ‘민간의료보험’도 도입될 것 뻔해”
  
  그럼에도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경우, 뒤이어 따라오는 변화는 ‘민간의료보험’ 도입이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감당하는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절반 수준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건강보험을 의료보장 제도가 아니라 ‘진료비 할인 제도’라고 비꼬기도 한다. 이렇게 급여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비영리병원보다 진료비가 비싼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목돈을 당장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별도의 보험에 들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영리병원이 허용되지 않더라도 건강보험의 급여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다른 대안을 찾기 마련이다. 바로 민간의료보험이다.
  
  마침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민간의료보험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보험개발원의 연구 결과가 거의 모든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지난 10월 14일 보험개발원은 이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본인부담금 비율은 OECD 조사대상국 중 최상위로 나타났으며, 전체 의료비 지출 중 공적건강보험의 지출구성비는 최하위로 나타나 민영건강보험의 활성화가 절실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연구 결과는 정부가 펴내는 <국정브리핑>에 실린 것은 물론, KBS, SBS, iTV, CBS, YTN, MBN 등 방송 전파를 탔으며,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국민일보>, <문화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심지어는 <스포츠한국>도 같은 내용을 논평 없이 고스란히 “받아 적었다.”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과연 그렇게도 매력적인 대안인가? 공적건강보험의 지출 구성비가 최하위라는 문제의 해법이 공적건강보험의 급여 확대가 아니라 민영건강보험 활성화가 될 만큼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절실한가?
  
  이 또한 상식선에서 문제를 본다면,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다. 영리병원과 마찬가지로 사(私)보험의 존재 이유도 역시 ‘이윤 획득’이다. 사보험도 보험 ‘기업’이 파는 상품이다. 획득한 이윤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기 위하여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한 공세적인 마케팅 활동은 필수적이다. 그러니 관리 운영비가 커질 수밖에 없다. 바로 그만큼, 환자 진료에 쓰는 비용은 줄어들게 된다. 건강하고 돈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가입도 쉽지 않다. 나이가 많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질병 발생 확률이 크기 때문에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가 많거나 아예 보험회사가 가입 자체를 기피할 수도 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공적인 건강보험의 경우 가입자가 1백원을 내면 기업주가 1백원을 내야한다. 건강보험공단 관리비로 4원이 들고 따라서 가입자가 받는 비용의 혜택은 1백96원이다. 그러나 모 생명보험의 경우 작년 한해 수입은 2조원인데 비해 가입자에게 지불한 돈은 6천억원이다. 말하자면 1백원을 가입자가 내면 돌아오는 돈은 30원이다. 6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식을 다시 자연 실험의 장인 미국으로 가져가서 극적인 두 가지 사례만을 살펴보자. 인구 3천4백만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큰 건강보험으로 꼽히는 것은 비영리의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와 영리적으로 운영되는 청십자(Blue Cross) 건강보험이다. 그런데 2000년 기준으로 전자는 보험료 수입의 96%를, 후자는 76%를 보험 의료비로 지출하였다. 결국 20%의 차이에 해당하는 금액이 투자자에 대한 이윤 배당과 공세적인 마케팅 비용 등 간접비로 지출된 셈이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공적의료보장 제도에 해당하는 메디케어와 비영리 청십자 건강보험, 그리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의료보험의 간접비 비중을 비교한 그림이다. 그림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막대그래프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암보험 상품의 간접비, 정확하게는 사업비의 비중을 보여준다. 200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건강보험의 간접비, 즉 관리운영비는 4.1%였다.
  
  ”우려스러운 참여정부의 ‘선택’”
  
  지난 7월 14일, 재정경제부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제출한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이라는 보고 문건을 통해 “개방과 경쟁을 통한 서비스의 질 향상, 고용 창출 및 성장 기여, 국제수지 개선 등의 효과를 체험케 함으로써 이해집단의 인식을 바꾸고 사회적 합의 기반을 확충”할 것을 주장했다.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도입 정책은 그 주장의 핵심에 서 있다. 과연 이들 정책이 한국 의료의 새로운 대안인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리의 상식과 현실적 근거들은 재정경제부의 바람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변화의 갈림길에 놓인 한국 의료, 참여정부의 선택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최용준/한림의대 사회의학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