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로 보낸 의견서 한국 전투병 추가 파병에 대한 의견서

□ 이라크 전투병 추가파병에 대한 의견서

이라크 전투병 추가파병에 대한
이라크 반전평화활동가 및 의료지원단 의견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그 결과로 빚어진 이라크의 상황에 대해 근거 없는 거짓말을 일삼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정부가 자신들의 침공을 미화하고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려고 거짓말을 일삼고 있으며 일부 한국인들이 그에 동조하여 국익이니 혈맹을 운운하며 무지와 맹목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이라크는 석유만 존재하는 땅이 아닙니다. 그 곳은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우리가 만나고 온 이라크의 사람들은 이익과 패권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13년 간의 경제제재와 군사적 침략에 고통을 받고 있는 평범한 생활인들일 뿐입니다.
우리들 이라크에 방문하고 돌아온 종교인, 활동가, 작가, 의료인들은 근거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폭력을 부추기고, 어린이들을 학살하는 전쟁을 정당화하며, 한국의 젊은이들을 이라크 민중 학살에 동원하려는 음모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이라크 현지에서 직접 조사한 내용에 기초하여 잘못된 주장들에 대해 그 근거 없음을 밝히고, 이라크인들이 지금 느끼는 것은 무엇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1. 이라크인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해방전쟁,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고 믿고 있는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믿고 있는가?

미국정부가 그들의 침공의 명분을 대량살상무기의 제거를 통한 테러방지나 후세인 제거를 통한 민주주의 회복 등 무엇으로 내세운다 하더라도 그것을 믿는 이라크인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라크인들은 미국정부의 침공을 그들의 석유에 대한 이권과 중동지역에서의 패권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땅에 석유가 없었다면 저들이 왜 왔겠느냐”고 말합니다.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의 정부건물 중 유일하게 미국의 공습에서 안전했던 석유청 건물을 가리키면서 이번 전쟁의 원인을 이야기합니다.
지난 13년간 미국에 주도로 저질러진 경제봉쇄로 인한 사회적 피폐와 굶주림과 고통은 이라크인에게 미국정부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사담 후세인 정권도 애초에 미국정부의 지원하에 성립되고 유지되었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정부는 사담후세인과 더불어 이라크인의 분노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들의 인식은 “노 아메리카, 노 후세인”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2. 후세인의 출신 종파인 수니파는 미국에 반대하지만 탄압 받던 다수의 시아파는 미국에 찬성하는 것이 아닌가?

수니와 시아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반응은 수니와 시아를 막론하고 이러한 질문 자체가 이라크인에 대한 무지요 모욕이라는 것입니다. 수니와 시아이기 전에 우리는 같은 무슬림이고 이라크인이라는 것이 그들의 대답입니다.
흔히 수니는 미국에 적대적이고 시아는 협조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현지사정과 전혀 다릅니다. 수니도 시아도 미군과 미국정부에 대한 인식은 차이가 없습니다. 특히 대다수의 시아파는 1991년 후세인에 대한 봉기가 일어났을 때 후세인이 시아파들을 잔인하게 진압한 것의 배후는 미국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이라크인들에게 후세인과 미국은 한 묶음으로 분노의 대상일 뿐이지 후세인을 미국이 제거해주어 미국정부에 대한 호감이 있다는 것은 순전히 미국정부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3. 어쨌든 자유와 사회복지의 측면에서는 이라크가 후세인 시절보다 좋아진 것이 아닌가?

오히려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그 이후의 악화된 민중의 생활이 미국정부와 미군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크게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사회기간시설은 걸프전쟁과 13년 간의 경제봉쇄기간동안 파괴되고 제대로 복구되지 못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고 이번 전쟁으로 그 기능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발전시설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전기사정이 극히 불량합니다. 수도 바그다드조차도 자가발전기가 없으면 전기를 구경하지 못하는 원시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전기가 없는 상태에서는 섭씨 50도에 가까운 더위에서 냉방시설은 물론 선풍기도 작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상하수 처리시설이 작동하지 않으니 배설물이 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더러운 강물을 그대로 먹어야 합니다. 설사병 등의 전염병의 창궐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어른들은 어떻게 견딘다고 쳐도 아이들은 이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습니다. 질병에 걸려도 약품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제대로 된 치료를 기대하기가 힘듭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라크인들은 정치에 무관심할래야 무관심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치안부재의 상태입니다. 어떤 정부이든지 최소한 시민의 안전문제를 책임져야 할 것인데 지금 이라크는 아무도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어디서 총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혼란상황에 의해 주어진 정치적 자유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치안을 책임져야 할 미국이 오히려 치안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군이 가택수색을 한다고 가정집을 군화발로 밀고 들어와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무릎을 꿇리고 시민을 연행하는 일이 일상사가 되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이들에게는 매우 극심한 모욕에 해당되는데도 말입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미군이 귀중품을 강탈하고 강간을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의 ‘소문’을 대다수의 이라크 사람들이 믿고 있으며 분노에 차서 이야기합니다.

4. 미군에 대한 공격은 일부 테러리스트에 의한 것이며 대다수 이라크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미국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6월 미군이 시위대에 발포하기 전까지 최소한 바그다드에서는 미군에 대한 테러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 발포가 있기 전까지 바그다드에서 반미 시위는 비교적 자유로웠고 거의 매일 집회나 시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위대에 미군이 발포를 하고 난 후 반미 시위를 포함한 모든 시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미군에 대한 테러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보통의 이라크인들이 공공연하게 미국에 대한 성전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일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이라크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라크인 10명이 죽어도 미군 하나를 죽이면 결국 미국이 물러나지 않겠는가”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이야기되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미국에 대한 공격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미국정부가 믿고 있듯이 소수의 후세인 추종자나 일부 테러리스트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미군에 대한 공격은 이라크에서 하루에도 10차례 이상씩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미군이 매일 1-2명씩 사망하고 이보다 훨씬 많은 수가 부상을 당하여 미국으로 후송됩니다. 6000명 이상이 이미 미국 본토로 후송되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군의 10배 이상의 이라크인이 죽거나 다칩니다. 누가 자신을 공격할지 모르는 패닉상태에 빠진 미군들은 과잉대응을 하는 일이 자신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고 믿고 있어 평화적인 시위에도 발포하고 비무장 민간인에게도 발포를 합니다. 이 과정이 매일 매일 더욱 증폭된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 이라크의 지금의 상황입니다. 이라크의 전쟁은 종결된 것이 아니라 이라크 전체 민중 대 미국의 전쟁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이라크의 현실입니다.

5. 현재 미국에 대한 일부의 적개심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전후 사회안전망의 복구가 이루어지면 회복될 성질의 것이 아닌가?

걸프전과 13년 간의 경제봉쇄, 그리고 그 후의 미군의 침공으로 파괴된 사회기간시설은 하루아침에 회복될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사회기간시설의 복구에만 약 1000억 달러가 들 것이라는 보고는 미국 측의 보고입니다. 문제는 미국정부가 사회기간시설 복구에 진지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앞으로 그러할 조짐조차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국제 NGO 들은 미국정부가 이라크민중들의 복지에 아무런 신경을 쓰고 있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전쟁비용만 1주일에 10억 달러씩 사용하고 이것조차 미국 국방비와 예산에 커다란 부담을 주고 있는 상태에서 어떠한 이라크인들도 미국이 인도주의적 지원에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믿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미국의 전쟁비용도 결국 이라크인들이 부담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분노와 적개심은 그들의 종교적, 도덕적 신념과 가치와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랍에서 미국이나 서구국가들의 지위는 역사적으로 종교적 침략자, 제국주의적 침략자였으며 이것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지배하려는 서양인들은 이라크 민중에게 성전의 대상이며 알라에게만 무릎을 꿇는 그들에게는 무릎을 꿇리는 미군은 말할 수 없는 분노와 복수의 대상입니다. 하물며 자신의 가족을 죽인 자들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대응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6. 이라크 파병시의 한국군이 닥칠 위험은 과장되어 있지 않은가? 구체적인 위험성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이라크에 전투병이 파병된다면 이들은 치안유지, 즉 이라크인들의 저항의 진압을 맡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가장 저항이 강력한 지역중의 하나인 북부지역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 한국의 역할은 미군을 대신하는 미국의 총알받이일 것이라는 점은 너무도 명확하기에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할 것입니다. 지금 미군이 그러하듯 말입니다. 현재 상황은 거듭 거듭 말하건대 진정될 어떤 상태가 아닙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라크 민중의 저항은 거세어 질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군은 발칸전쟁, 걸프전쟁에서 미국과 유럽의 병사들이 경험한 발탄신드롬, 걸프신드롬이라는 괴질에 노출될 것입니다. 열화우라늄탄의 피해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정부는 그 피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엽제에 의한 피해도 고엽제가 살포될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미국정부는 아무런 위험성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고엽제의 피해도 수많은 병사의 항의가 있고 나서 십년이 넘은 뒤에야 그 질환의 원인과 피해범위가 규명되었다는 점이 인식되어야 합니다.
전쟁에 의한 정신적 피해도 심각할 것입니다. 아무런 명분없는 전쟁, 침략전쟁이라는 것이 너무도 명백한 전쟁에서 이라크 민중에게 총부리를 들이댈 수밖에 없고 그들과 싸워야 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고통은 어떠하겠습니까? 심지어 전쟁의 정당성을 믿고 있는 상태에서도 전쟁후의 충격후스트레스증후군(PTSD) 어김없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면 한국의 젊은이들이 느낄 정신적 고통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정신적 고통과 도덕적인 혼란은 우리의 한세대의 정신적 상태를 황폐하게 할 것이고 파괴할 것이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한국군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 테러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충분히 이성적인 이라크 사람들은 전투병과 공병 및 의료병을 정확하게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공병과 의료병은 이라크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미국의 동맹군으로 참전을 했지만, 아직까지는 테러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이라크 사람들과 직접 전투를 하진 않았지만, 전투병을 파병한 폴란드군은 이미 몇 차례의 공격을 당했습니다. 한국이 전투병을 파병한다면 이라크 사람들은 더 이상 한국군에 대해 관대하지 않을 것임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7. UN 결의를 거쳐 파병하면 미·영 다국적 군에 비해 권위가 높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이라크의 상황은 안정되지 않겠는가?

사실상 이라크에서는 아무도 유엔과 미국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지난 13년간 이라크인의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경제봉쇄는 미국이 아니라 유엔의 이름으로 행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매달 5000명의 어린이가 죽었고 120만 명의 이라크인들이 사망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던 이라크인들 대부분이 그 경제봉쇄로 인해 지금은 하루 1달러미만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이들 이라크인들에게 미국과 유엔은 전혀 구별되지 않습니다.
이라크 전역에 뿌려진 이라크 무장세력의 전단은 “제발, 제발, 제발 미군에 가까이 가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협력자들은 미군과 똑 같은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유엔의 권위를 빌리는 것이 미국의 행위에 대한 사후면죄부라는 정치적 진실은 별도로 하더라도 유엔의 권위가 이라크에서는 아무런 무게를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 정확히 인식되어야 합니다. 유엔의 결의는 어떠한 상황의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의 이름이건 유엔결의하의 다국적 군이건 미국에 의한 이라크의 침략이라는 본질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8. 어쨌든 파병을 해야 이라크의 전후복구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국익이라는 말이 논의되고 있는 것에 한국인으로서 큰 수치를 느낍니다. 도대체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이익을 논할 수 있습니까? 이라크인들은 그들의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들과 똑 같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이들, 전쟁과 경제봉쇄의 참화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총부리를 겨누면서 그들 땅의 석유를 놓고 이윤을 논한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국익’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국익을 거부합니다.
그 알량한 ‘국익’이라는 것도 자세히 뜯어보면 너무나도 허구로 가득 찬 이야기입니다. 일단 국익이라는 것이 만일 있다해도 그것은 한국의 한 세대의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건강을 파괴하고 얻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여기에 전후복구사업의 참여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정부가 나누어줄 몫은 유럽정부가 챙겨갈 것입니다. 지금 미국과 유럽정부의 유엔결의를 둘러싼 논의들이 이러한 분배과정임은 너무도 명확합니다. 한국에게 돌아올 몫이 있다고 누가 믿겠습니까?
또 그러한 이라크의 존재하지도 않는 이익을 쫓는 과정에서 한국과 한국사람들은 아랍과 아시아의 다수의 무슬림들에게 적대와 복수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아랍과 무슬림의 문화를 이해한다면 파병한 군대는 물론이고 한국인 자체가 그들의 적대와 공격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위험성이 인식되어야만 합니다.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아랍인과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적대의 표적이 되는 것이 세계가 하나인 이 시대에 우리의 국익이란 말입니까?

9. 미국에 경제적·군사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파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미국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압력을 뿌리친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이라크의 현실을 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라크에 파병을 하는 것은 더욱이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미국이 빠진 수렁에 대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빠져나오기 힘든 미국의 수렁입니다. 이라크에 대한 파병행위, 특히 전투병 추가파병은 미국정부의 잘못된 결정에 대한 책임을 한국이 지겠다는 어리석은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미국인들을 친구로 여긴다면 그들 정부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 될 것입니다. 그들의 정부가 한국정부의 비협조를 이유로 들어 군사적이거나 경제적인 압박을 가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주축은 미국정부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은 그러한 일시적 경제적 어려움보다 장기적으로 10배 100배나 더한 경제적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점만 지적하겠습니다.

10. 지금 이라크인 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 이라크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외국의 군대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 스스로에 의한 평화, “이라크인에 의한 이라크의 평화”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친구의 인도주의적 원조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 기간 시설을 복구하기 위한 지원이며, 전쟁의 상흔을 씻어주고 고통을 나누며, 이런 더러운 전쟁의 재발을 막으려는 전 지구적인 평화의 연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총을 든 군인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 민간인이다. 즉, 이라크인들을 존중하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제봉쇄와 전쟁의 참화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라크인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아닙니다. 영양실조와 질병의 고통을 겪고있는 이라크 어린이에게 폭탄을 퍼붓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그들이 스스로의 정부를 세울 수 있도록 외국군대가 이라크에서 물러나도록 요구하는 것이고 그들을 인도주의적으로 지원하는 일입니다.
이라크인들에게,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국군대와 폭탄이 아니라 평화요, 우유와 일자리, 연필과 의약품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