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언문 한국사회포럼 2005를 마치며…

“대안을 위한 소통 – 한국사회포럼 2005”를 마치며

1.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구조조정, 노동의 유연화 속에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종속적으로 편입되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우리들의 삶을 척박하게 만들었으며,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노동자·서민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초국적 투기자본은 생산적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기보다는 대량해고 등 단기적 투기적 이윤극대화에 골몰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사유화·시장화는 공공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고 대다수 사람들의 사회적 기본권을 박탈하였다.

그 결과 사회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첨단산업과 사양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국인노동자와 이주노동자, 고수익자영업자와 영세자영업자, 지역 간의 양극화 등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서 발생하는 중층적 양극화 현상은 일을 하여도 가난한 노동자, 여성의 빈곤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 환경파괴 등으로 표현되는 사회적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문제의 심각성은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사회 전반의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는데 있다.

우리는 이번 한국사회포럼 토론을 통해 초국적 투기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며 노동자·민중의 삶과 권리, 국토와 지역, 환경을 파고하고, 중간층의 몰락을 재촉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대안을 모색하고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사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펴쳐나가기로 하였다.

특히 우리는 이번 한국사회포럼에서 모아진 공감대에 바탕하여 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사회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민적 대책기구” 결성을 위해 노력하고, 기업활동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산업연관의 개혁, 비정규직 차별철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조세개혁을 통한 복지재원의 확충, 교육·의료의 공공성 강화, 공공부조제도의 내실화, 식량주권과 지속가능한 농업발전 등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펴나가기로 하였다.

2.

올해는 해방 60년, 분단 60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는 미국의 새로운 세계 재편 구상의 일환으로 신냉전적 군사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부시 미대통령이 내세우는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과 ‘폭정의 종식’은 미국 중심의 패권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확대를 지지하지만 인권을 도구화하여 정치군사적 개입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3각 지역동맹 구상은 60년간 지속된 역내 냉전구도를 걷어내고 교차승인과 상호협력을 통해 새로운 상생의 공동체로 나아가려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지향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우리는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화가 미일동맹을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적대관계를 빌미로 미국이 군사적 존립근거를 찾으려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미일동맹에 기초한 일본의 군국주의화는 단호히 저지되어야하며 역내 각국 정부와 시민들의 성숙한 평화적 협력에 바탕을 둔 탈군사적 전망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동북아 평화공동체는 군비경쟁이 아닌 국경을 넘어서는 상호협력의 심화, 군사적 신뢰증진을 통해서만 건설될 수 있다. 최근의 영토 갈등과 과거사 왜곡문제 역시 ‘진실과 화해’의 관점에서 지역공동의 역사인식을 공유함으로써 진정한 해법에 도달할 수 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남한이 독립적인 평화의 교량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한국정부는 미군의 신속기동군화와 한미지역동맹 구상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미군의 세계지배를 돕기 위해 파견된 군대를 이라크 등지로부터 철수시키며, 작전지휘통제권의 온전한 환수를 바탕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군축과 탈군사화를 위한 평화외교를 주도적으로 펼쳐야 한다. 평택 미군기지와 제주 화순항 건설을 비롯한 한미군사력의 공격적 재배치에 반대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지키는 것은 지역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전국적 연대가 실현되어야 한다.

한반도 핵위기-북미간 핵갈등의 평화적 해결과 평화체제의 실현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평화로 가는 건널목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자 목표이다. 미국도 북한도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개발, 배치, 사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북에 대한 미국의 핵 선제공격 구상과 악의적 무시정책이 변화되지 않는 한 근원적 해결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한국정부와 주변국들이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행동하기를 촉구한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남북 당국과 민간의 교류와 협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특히 민간 대화와 협력은 최악의 상황을 방지할 창구라는 점에서 어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한다. 남북의 협력은 경제적 교류협력 외에도 군사적 신뢰구축, 상호간의 인권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3.

동북아국제질서의 변화 속에서 국내 정치지형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현 정부는 과거 민주화 운동의 이념적 성과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신자유주의적 이념지향과 관료주의적 포위 속에서 점차 보수적 지배이념에 편입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한국정치의 보수적 지배구조를 뚫고 진보적 정치세력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한국사회에 대한 ‘진보적 대안’, ‘개혁적 대안’의 현실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시민사회의 지지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하여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지난 사오십년간 정치적 공백을 뛰어넘는 진보세력의 제도정치공간으로의 역사적 재진입을 의미하며, 진보정치 실현을 위한 실질적, 상징적 의미를 갖는 커다란 계기이다.

진보정치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은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에 그치지 않으며, 시민, 환경, 지방정치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실질적인 성과들이 여러 실험 속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방정치와 지역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지역차원에서의 참여민주주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나아가 진보정치의 저변은 환경개선을 중심으로 한 초록정치영역의 개척을 통해서도 확대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치지형의 진보적 재편을 위해서는 시민-민중진영을 아우르는 진보진영이 극복하여야 할 과제들 또한 적지 않다. 첫째, 진보진영이 결집된 노력을 통해 진보적 사회에 대한 상과 운동의 정체성을 새로이 확립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둘째, 이를 기반으로 진보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적 실천적 대안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 셋째, 현재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화를 겸허히 수긍하고 다양성과 차이, 운동영역과 형태별 역동성을 존중하면서도, 통합지향적 사회운동을 재구축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4.

우리는 대안을 위한 소통 – 한국사회포럼 2005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불행한 결과들, 특히 사회양극화의 심각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만이 유일한 대안이 아니며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많은 중단기적 대안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이러한 대안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우리의 조직과 힘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였다.

이제 2박 3일의 토론을 통해 확인된 우리의 연대를 소중히 가꾸어 가면서 우리의 노력이 한국사회를 바꾸고,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자양분이 될 것을 기대한다.

2005년 4월 16일

“대안을 위한 소통 – 한국사회포럼 2005”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