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광우병, 조류독감, 에이즈, 그리고 APEC과 미국

내용이나 알고 시위하라고? 알려줘야 알지!  
  [기고] 광우병, 조류독감, 에이즈, 그리고 APEC과 미국

  2005-11-18 오전 9:29:16      

  

  
  며칠 전 김종훈 아펙(APEC) 대사는 APEC 반대 시위계획을 두고 “APEC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내용이나 알고 시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나도 정말로 알고 싶다. APEC이 말하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 아펙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알고 싶다.
  
  그런데 정작 APEC의 공식 한국어 사이트 자료실에는 APEC 회의자료가 달랑 11개, 그것도 그 개요만 올라와 있다. 부산 APEC의 사이트 자료실에는 21개의 자료가 올라와 있다. 가로 현수막 시안 1, 2, 3, 세로 현수막 시안 1, 2, 그리고 APEC의 로고 등 APEC을 아는 데 ‘그야말로 매우 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다. 그 중에는 APEC의 공식 슬로건 ‘자료’도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함께하는 APEC, 함께 여는 밝은 미래, 2005 APEC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나도 APEC과 함께하여 한국의 밝은 미래를 함께 열고 싶지만, 뭘 알아야 주인이 되든지 함께 하든지 할 것 아니겠는가?
  
  올해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APEC의 목적을 알려면 미국의 상무부나 주한 미국대사관 사이트를 찾아가야 한다. 여기에는 올해 2월 18일 서울 하이야트 호텔에서 열린 정재계 인사들의 모임 ‘한국 아펙의 해 포럼과 기업경영자 원탁회의((Korea APEC Year Forum and Business Executive Roundtable)’에서 미국의 APEC 대사인 로렌 모리아티가 ‘미국이 2005년 APEC에 바라는 정책목적 4가지’를 말한 연설문이 있다. 4가지 목적은 이렇다. 첫째 무역의 자유화와 활성화, 특히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에 대한 지원, 둘째 APEC 지역의 무역과 여행안전을 위한 인간안보 강화, 셋째 APEC 지역의 부패 척결, 넷째 지적재산권 강화.
  
  그리고 이 모든 미국의 정책목표는 지난 16일 발표된 APEC 각료회담의 공동성명에 그대로 반영됐다. 물론 이러한 추상적 목표만으로는 여전히 APEC이 뭐 하는 곳인지를 잘 알 수가 없다. 필자의 관심 분야는 APEC이 보통사람들의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다.
  
  무역장벽 제거와 광우병 걸린 미국 소
  
  APEC의 첫 번째 목표는 무역장벽을 없애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무역장벽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역장벽’보다 포괄하는 범위가 매우 넓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광우병 소의 수입 문제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생긴 후 미국의 축산자본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 뒤 미국의 축산자본이 다른 나라들에 대해 미국 소 수입을 재개하도록 하기 위해 펼친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 결과 미국은 멕시코나 대만 등 만만한 국가 4곳으로 미국 쇠고기 수출을 재개할 수 있었다. 작년 4월 텍사스에서 광우병 소가 다시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국과 일본도 미국 소 수입을 곧 재개하려고 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그럴만 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미국 북부지방에서 발견된 광우병 소는 미국 소가 아니라 캐나다 소라고 주장하는 촌극을 연출하던 미국이 이번에는 아예 소의 살코기에는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이 없으니 송아지 살코기는 괜찮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주장을 근거로 미국이 자기네 쇠고기를 최대 수입국인 한국과 일본에 강요하는 자리가 이번 APEC이다.
  
  이번 APEC 각료회의의 공동성명은 올해 3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4차 APEC 농업 생물기술에 대한 고위 정책대화(The 4th APEC High Level Policy Dialogue on Agricultural Biotechnology)’를 근거로 “과학에 기반한 농업 생물기술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거대 축산자본이나 곡물자본이 항상 주장하는 ‘원칙’이며, 거대 농업기업/곡물기업, 축산자본들이 작성한 WTO 위생검역협정(SPS)이나 기술장벽제거협정(TBT)의 원칙과 정확히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명백한 과학적 근거 없이는 수입을 제한하거나 표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원칙에 따라 미국은 광우병에 걸린 소가 있더라도 뇌수나 내장 외에는 소에서 광우병 프리온이 발견됐다는 ‘명백한 과학적 근거’가 없으니 살코기는 수입해 가도 된다고, 아니 수입해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쇠고기를 수입해 가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무역장벽이다. 물론 유전자 조작식품도 인체에 해가 있다는 ‘명백한 과학적 근거’가 없으므로 수입금지를 하거나 유전자조작 식품이라는 표시를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과학이라는 말을 하니 과학적으로 따져보자. 광우병에 걸린 사람의 근육에서 프리온이 발견됐다는 논문이 미국의 가장 저명한 의학잡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실린 적이 있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살코기가 위험하다는 명백한 근거는 아직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다는 근거도 없다. 광우병의 인체 잠복기간인 수십 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인체 대상의 실험은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광우병 소의 경우는 실험대상이 되고자 하는 자원자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니 부시나 한국, 일본에서 미국 소 수입 재개를 주장하는 정부인사들을 대상으로 미국 소를 먹어보게 한 후 결과를 살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APEC이나 WTO에서 말하는 무역장벽에는 교육제도나 의료제도도 포함된다.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에 대한 불허, 외국 교육기관에 대한 제한, 공공 상수도의 운영도 모두 무역장벽이다. WTO도 여기까지는 나가지 않았다. 이런 서비스의 상품화는 물론 WTO에서도 APEC에서도 아직은 수사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알아서 이런 서비스의 상품화를 한답시고 병원을 영리기업화하고 외국 교육기관의 국내 설립을 허용하려는 우리 정부의 태도다.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개방이 대세라는 분위기를 잡기 위해 APEC을 활용한다는 것, 바로 이것도 APEC의 문제점이다.
  
  조류독감에 대한 대책과 특허권에 대한 APEC의 침묵
  
  APEC이 강조하는 것 중 하나로 인간안보라는 게 있다. 여기서 인간안보는 물론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을 말한다.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은 미국이나 한국의 이라크 점령을 정당화하거나 북한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APEC 각료 공동성명은 인간안보 강화를 위해 미국과 호주가 시작한 ‘지역이동 경보리스트’ 제도 등을 통해 지문채취와 같은 생체정보 집적에 의한 여행객 검문제도 등의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지문채취는 물론 유전자로 미아를 찾아준다고 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DNA 은행까지 만들고자 하는 한국이니, 이 분야도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APEC은 인간안보 분야에서는 또 조류독감이나 HIV/에이즈에 대한 대책도 거론한다. 김종훈 APEC 장관이 “APEC의 내용이나 알고 시위하라”면서 거론한 APEC의 ‘공익적 역할’에는 바로 이러한 대책이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에이즈나 조류독감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의약품 특허의 문제를 APEC은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다.
  
  HIV/AIDS는 중국에서만 감염자 및 환자가 최소 100만 명에 이르고 태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매일 1만 명의 에이즈 환자가 죽는다. 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WTO의 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근거로 약값을 터무니없이 높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조류독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류독감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대책은 유일한 조류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특허권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 치료제를 값싸게 대량공급하는 것이다.
  
  바로 이 특허권 문제에 대해 APEC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APEC에는 오직 “긴밀하고 적절하며 긴급한 공동대처”와 같은 미사여구만 있을 뿐이다. APEC이 지원하려고 하는 세계무역기구와 여러 자유무역협정(FTA)에서는 지적재산권 협정을 강화해 특허권의 유효기간을 더 잡아늘이는 내용의 ‘TRIPS 플러스’가 추진되고 있다.
  
  에이즈약으로 고가의 이익을 올리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과연 어떤 회사들인가? 바로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정치기부금을 낸 회사들이다. 타미플루에 대한 특허권을 갖고 있는 길리아드 사이언스 사에서 1997년부터 2001년까지 CEO를 지낸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현재의 미국 국방장관인 럼스펠드다. 길리아드 사의 이사 중 또 한 사람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 밑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다. 길리아드 사의 주가는 매일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주도하는 APEC이 조류독감 대책을 세운다고?
  
  APEC의 이른바 ‘공익적’ 기구에는 ‘사회안전망 네트워크(APEC SSN CBN)’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 네트워크에서 말하는 사회보장은 스스로 내세운 ‘원칙’의 몇 구절만 들여다보아도 금방 그 정체가 드러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안전망의 ‘원칙’ 중 몇 구절만 소개하면 이렇다. “사회안전망은 결코 가족의 역할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사회안전망은 근로의욕을 축소시켜서는 안된다”, “사회안전망은 경제위기가 지나가면 곧바로 축소될 수 있어야 한다” …. APEC에서 말하는 사회보장은 위기관리 제도이지 인간의 권리로서의 사회권이 아닐 뿐 아니라 사회보장의 기본원칙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들이다.
  
  2005년 APEC은 말한다. “2005년 APEC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그러나 나는 ‘APEC 2005′의 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우석균/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