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간병인 불법공급’ 형사고발 당해
서울강남노동사무소,’직업안정법 위반’ 고발조치
공대위, “불법공급사업 중단, 처벌” 요구
작성날짜: 2004/02/19
박신용철기자
19일 오후 1시경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서울대학병원 본관에 40여명의 사람들이 깃발과 현수막, 피켓을 들고 본관로비를 구석구석 돌아다니자 환자, 보호자 뿐만 아니라 간호사와 의사들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보건의료산업노조·민주노총·건강세상네트워크·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19개 단체로 구성된 ‘서울대병원 간병인 문제해결과 공공병원으로 제자리 찾기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서울대병원 공대위)’은 이날 낮 12시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불법근로자 공급을 강행하고 있는 서울대병원’을 규탄하는 집회를 마치고 병원 본관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며 선전전을 벌였다.
이들은 정리집회 자리에서 서울대병원 간병인 문제는 현재 전국적으로 20만에 육박하는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이며 오는 2007년 복지부가 시행하기로 한 노인요양보험에 따라 20만명의 간병인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서울대병원 무료간병인 문제는 의료의 공공성,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 공대위는 19일 서울대병원 본관앞에서 불법근로자 공급 사실에 대해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서울대병원 공대위는 “노동부 조사결과, 간병인 유료업체들은 일회적 취업알선을 하는 직업소개소가 아니라 실제로 근로자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근로자공급사업에 해당됨이 드러났다”며 “근로자공급은 중간착취와 인권침해, 인신매매 등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현행법상 노동조합만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유료 간병인 업체들은 ‘직업소개소’로 허가받아 실제로는 불법으로 근로자공급사업을 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병원 공대위는 또 “서울대병원은 노동부로부터 불법근로자공급 사실을 통보받고도 무시한 채 두 유료업체를 그대로 유지하며 불법행위를 강행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에서 행정기관으로부터 불법행위시정을 통보받고도 이를 무시하고 앞장서서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서울대병원측은 지난해 9월 1일자로 15년동안 병원에서 직접 운영해왔던 ‘무료간병인 소개소’를 서비스 향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폐쇄하고 유료소개소 두 곳((주)아비스간병인협회, (주)유니에스)을 선정했다.
이에 맞서 무료소개소 간병인들은 서울대병원 공대위와 함께 병원로비 철야농성, 인권위 점거농성 등을 진행하는 한편, 지방노동사무소에 유료간병인 소개소의 ‘불법 근로자공급사업’ 여부 조사를 의뢰했다.
지난 2일 서울강남지방노동사무소는 서울대병원이 무료간병인 소개소를 폐쇄하고 유료로 운영하고 있는 간병인소개소가 ‘불법’이라고 판단하고 서울강남경찰서에 고발조치했다.
서울강남지방노동사무소는 “조사 결과 직업안정법 제33조 제1항 규정에 의거 ‘노동부장관에게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근로자공급사업을 한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직업안전법 위반 혐의로 관할 경찰서인 서울강남경찰서에 고발 조치하였다’”고 지난 2일 통보했다.
근로자공급과 직업소개의 차이-민주노총 법률원
직업안정법의 근로자공급이라 함은 자기가 고용하는 근로자 또는 지배관계에 있는 근로자를 공급계약에 의해 타인에게 사용시키는 것을 말하며 이를 반복계속의 의사로서 행하는 것을 ‘근로자공급사업’이라고 하고 근로자를 공급하고자 하는 자(공급계약자)와 근로자를 공급받고자 하는 자(사용사업주)사이에 체결된 계약을 근로자공급계약이라 한다.
또한 직업안정법의 ‘직업 소개’란 구인 또는 구직의 신청을 받아 구인자와 구직자간에 고용계약의 성립을 알선하는 것을 말한다. 이 직업소개소에서는 직업소개자와 구직자간에 근로관계 내지 지배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직업소개’는 직업소개를 하는 자가 구인자와 구직자간의 근로계약의 성립을 알선할 뿐 근로자와 사이에 지배관계조차도 없다는 점에서 근로자공급과 구분된다. 구인자와 구직자 사이에는 근로계약관계의 성립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서울대병원의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불법 근로자공급사업의 즉각적인 중단과 행정조치를 촉구했다.
최경숙 보건의료산업노조 조직2국장은 “간병이라는 업무가 서울대병원의 지휘감독이 필요한 영역이라면 현행법상 직접고용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직업소개의 외양을 취하면서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형식은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직업안정법은 무허가 근로자공급행위에 대해 5년이하의 징역,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에는 중간착취에 대해 5년이하의 징역,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어 서울대병원과 유료업체 두곳 모두 처벌이 불가피한 상태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도 “서울대병원은 협약서 등을 통해 아비스 등 업체로 하여금 간병인에 대한 관리감독과 평가, 교육, 산재책임 등 열거한 각종 책임과 지휘감독의 1차적 책임을 지도록 요구함으로써 직업소개의 형태가 아닌 실질적인 근로자공급을 행하도록 하는 등 단순히 근로자공급을 받는 것에 머물지 않고 무허가 근로자공급행위에 적극 가담한 흔적이 보인다”며 “이에 비추어 단순히 근로자를 공급받는 행위를 넘어 공급행위이라는 범죄행위를 적극 교사 내지 방조한 서울대병원 역시 최소한 직업안정법위반, 근로기준법위반(중간착취행위)의 공범으로서 형사처벌의 대상”이라고 해석했다.
서울대병원과 유료업체간 협약서를 통해 본 불법 근로자공급 실태
서울대병원과 두 곳 유료소개업체 사이에 체결된 ‘협력업체협약서’를 보면 서울대병원이 ‘근로자공급’을 유료소개업체를 내세워 ‘직업 소개’로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제4조(간병인 소개 및 관리)는
“①을은 간병인 관리를 전담할 전담직운을 배치한다.
②을은 간병에 적합한 자를 선별하여 환자에게 소개하며 협약사항을 확인하고 서약서를 작성하게 한 후 회원증과 평가서를 병동간호사실에 제출한다. ③을의 전담직원은 간병인 활동기록을 수시로 확인하여야 하며 갑의 시정요청사항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조치를 하고 조치결과를 갑에게 보고한다.
④을은 간병인이 을의 등록 간병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통일된 복장과 회원증을 지참시켜야 하며 갑의 요청시 이를 제시하여야 한다”
제7조(간병인의 교체)는 “을(유료업체-기자 주)의 간병인이 환자나 갑(서울대병원-기자 주)에게 누를 끼칠 때는 갑은 즉시 간병인의 교체를 요구할 수 있고 을은 즉시 간병인의 교체를 이행해야 한다.”
제10조(간병료) “12시간 3만원, 24시간 5만원, 특수위독환자(사지마비 등) 및 공휴일은 1만원 추가 가능” 제15조(협약해지 및 통보)는 을이 소개한 간병인이 병원이나 환자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병원의 자산이나 이미지를 훼손하였을 경우, 간병인끼리 임의로 알선하거나 인계인수하는 경우, 본 협약서, 선정당시 제안내용, 간병인 근무수칙 등의 각 조항을 위반하였을 경우 등의 사유로 정하고 이를 협약해지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협약서 내용을 보면 서울대병원측이 유료간병인소개소를 선정하면서 간병인 관리를 철저하게 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오해를 할 수 도 있지만 15년동안 자체 모집, 교육 등을 통해 일상적인 관리를 하고 비용도 저렴하고 환자반응도 호평이었던 무료간병인소개소를 폐쇄한 것을 상기하면 과연 서울대병원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협약서를 보면 노동사무소가 직업안정법 위반으로 지적했듯 두 유료업체가 단순한 소개로 간병인과의 관계가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전담직원을 두고 간병인 활동에 대한 기록과 평가를 시행하고 서울대병원의 시정요구에도 즉시 조치를 취해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고 있어 간병인에 대한 ‘지휘감독의 1차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간병인과 업체간의 관계가 ‘직업 소개’가 아니라 지속적인 근로관계 내지 지배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서울대병원이 유료업체를 선정해 노동부장관의 허가없이 ‘불법근로자공급’을 했던 것이다.
노동사무소의 판결이후 서울대병원측은 병원내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두 유료업체가 자진해서 철수했다고 말했으나 확인결과, (주)아비스간병인협회는 사무실을 철수했지만 (주)유니에스의 경우 이틀꼴로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노동사무소 조사결과 ‘불법공급’으로 판정나면 유료소개소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병원측은 지난 16일 실무협상과정에서 ‘노동부의 ‘불법’ 판정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경찰 조치를 기다리겠다’고 말을 바꿨다.
최정선(무료간병인소개소 소속 간병인)씨는 “노동자들이 목을 메고 분신자살하는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 병원장이 목숨을 원한다면 옥상에서 뛰어 내릴 수도 있다”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우리들은 하루가 절박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대병원 공대위는 △서울대병원에서 간병인 불법공급사업을 즉각 중단하도록 행정지도 할 것 △중간착취 및 인권침해, 비리 온상인 간병인 유료소개소에 대한 실태조사와 근본적인 해결방안 마련할 것 △서울대병원 간병인 무료소개소를 인정, 공공병원의 위상에 걸맞게 병원내 간병인을 직접 고용하거나 별원내 무료소개소를 통해 간병인을 사용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서울노동청장은 서울대병원공대위 대표들과의 면담자리에서 △노조 서울대병원 무료소개소를 운영하도록 추진하고 △불법근로자공급 중단을 위한 행정조치 추진 △서울지역 유료 간병인 소개소 실태조사 등을 진행하겠다고 지난 17일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