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건강보험 기금화 법안 즉시 철회하라

국민건강보험 기금화는 정부 지원 삭감과 폐지, 보험료 인상, 보장성 축소를 가져온다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이 11월 7일 국민건강보험을 국민연금 처럼 기금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서 의원이 비례대표 초선 의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 법안은 윤석열 정부 청부 입법안인 듯하다.

 

건강보험을 기금화해 정부재정법에 따라 기재부가 통제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초 2001년에 시작해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기금화 얘기가 나오다 건강보험이 흑자로 전환된 시점에 기금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쫓겨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에 메르스 감염병 사태로 병원 이용이 줄어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로 전환되자 박근혜 정부는 건강보험을 투자 기금화하려 했다. 윤석열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였다가 민간의료기기와 제약업계 이해 대변, 투기와 부패 의혹 등 부적격자로 낙마한 김승희 의원도 2017년 건강보험 기금화 법안을 발의했었다.

 

서정숙 의원의 법안은 “건강보험의 보험자로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의 위탁을 받아 건강보험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민건강보험 공단을 설립”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을 “관리ㆍ운용”하도록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건강보험 재정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킬 수 있도록”, “은행이 직접 발행하거나 채무이행을 보증하는 유가증권 매입”,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이 발행하는 유가증권 매입”, “신탁업자가 발행하거나…집합투자업자가 발행하는 수익증권 매입”을 하도록 하고 있다. 낙마한 김승희 후보가 발의했던 법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재부 차관 출신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임명한 것과 이번 법안 발의가 연관돼 있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재정 건전화’, 즉 재정 긴축을 국정 방향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세금을 푸는 것(재정 완화)과 같은 효과를 내는 부유층과 기업을 위한 종부세, 법인세 삭감 등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반면, 노동자·서민들에게는 복지 삭감, 연금 개악, 공공부문 민영화, 인력 감축 등 고통과 부담을 전가함으로써 정부 재정 적자와 부채를 해결하려 한다.

윤석열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같은 건강보험 강화는 안중에도 없이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지출 축소) 운운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등 경제 불안이 더 고조되고 최근 채권 시장 경색과 같은 금융시장 불안 조짐이 보이자 윤석열 정부는 위기가 폭발할까 전전긍긍,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80조 원에 육박하는 건강보험 재정이 욕심날 법하다.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에 더해 건강보험 재정 자체를 정부(기재부)가 통제하면서 수십조 원을 입맛에 맞게 운용하고 싶을 것이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건강보험과는 맞지 않게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킨다는 명분으로 건강보험 재정으로 “유가 증권”, “수익 증권”을 매입해 기업과 금융 시장에 자금을 수혈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국민연금 기금이 삼성 이재용의 ‘불법 상속’을 돕는 범죄에 이용되고, 이 때문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본 사례에서 보듯 ‘건강보험 기금’도 얼마든지 엉뚱한 곳에 악용될 수 있다.

무엇보다 경제 위기가 장기화되고 금융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건강보험 재정이 각종 증권에 투자되면 천문학적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손실은 보장성 약화, 보험료 인상 등 노동자·서민이 떠맡아야 할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5년에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발전과 기금화의 상관성 연구”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건강보험을 기금화했을 때, “기재부가 정부 재정의 틀 속에서 건강보험에 투입되는 예산은” 그동안 법에 규정된 정부 지원금조차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는 기재부의 “우선순위에 입각하여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건강보험이 향후 지향해야 할 보장성 강화를 위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 또, 기금화에 적극적인 기획재정부의 입장에서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을 줄여나가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국고지원금 축소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보사연 연구보고서의 경고에 공감한다. 실제로 서정숙 의원 법안은 정부 지원을 올해까지 한시적으로 하도록 한 조항을 폐지하는 게 아니라 1년만 연장했다. 건강보험을 기금화하면 정부 지원을 축소하고 종국에는 폐지하려는 의도로 의심된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낮은 보장률이 더 약화되고, 보험료는 대폭 인상될 것이다.

 

서정숙 의원은 건강보험을 기금화해 국회가 심의하는 것이 국회 통제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투명성이 확보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국회가 심의한다고 해서 민주적이거나 투명해지는 건 아니다. 국회에는 힘 있는 온갖 이익단체들의 입김이 작용한다. 병원 등 공급자 단체, 제약회사, 민간보험사, 의료기기 업체 등이 건강보험 기금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운용하기 위해 온갖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에 힘이 미칠 수 없는 노동자·서민들을 위해 건강보험서비스가 운영되기는 어려워진다. 가입자 대표가 참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있어도 공급자 단체와 정부가 건강보험 정책을 쥐락펴락하는 현실은 더 악화될 게 뻔하다.

 

우리는 건강보험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정부의 지원을 대폭 늘리고, 한시 지원 조항을 폐지해 항구적 정부 지원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촉구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건강보험 재정을 어떻게 하면 정부 쌈짓돈으로 만들 것인가에만 골몰해 있다. 건강보험 기금화 법안이 이를 증명한다. 또, 최근 코로나19 펜데믹 동안 정부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데도 건강보험 재정을 쌈짓돈처럼 갖다 쓰고는 아직도 7조 원가량을 갚지 않고 있는 걸 봐도 그렇다.

 

지지율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해 초조해진 윤석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 저항 세력을 제압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둔 결과가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이태원 압사 참사였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뒀더라면 이태원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건강보험을 강화하고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장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다면, 다가올 제2, 제3의 팬데믹에 속수무책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 인사들과 사회 상류 부유층에게는 이런 사태가 발톱 밑 때만큼도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겠지만, 평범한 노동자·서민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은 건강보험 기금화 꿈도 꾸지 말라.

 

2022년 11월 14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가난한이들의 건강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기독청년의료인회, 대전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행동하는의사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동조합,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민중과함께하는한의계진료모임 길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