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에서 온 김해룡선생님 편지

바그다드
어제 새벽 1시경에 숙소를 출발하여 오전 6시경 하였다.
국경의 암만출 입국사무소는 이른 새벽임에도 각국에서 온 기자들로 붐볐고 우리는 출국신고를 마치고 7시경 이라크국경으로 출발하였다.
사막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양국의 1km가량의 길이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아 보니 검문 중이란다.
아라크국경에 도착하니 미군이 총을 들고 검문중이다.
이곳이 이제부터 미국땅임을 과시하는 듯이 미군장갑차와 무장군인이 이라크의 첫모습이다.
광할한 사막과 풀포기가 펼쳐지고 양치는 사람뿐 전쟁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3시간을 달려서야 첫 전쟁의 상처를 보았는데 고속도로열에 불탄버스 한 대이다.
강을낀 도시와 푸룬야자수,목초지의 양떼가 지나가고 출발한지 7시간을 지나자 멀리서 연기가 보이고 점점 도시의 모습이 눈에 띈다.
바그다그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이 우리가 그토록 절망하고 분노하던 그토록 함께하고 싶었던 곳이다.
고속도로를 나와 한참을 달려도 전쟁의 상처는 없다.
상상과는 전혀다른 이해할수 없는 광경에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 이라크30Km의 이정표가 보이자 드디어 나뒹구는 땡크와 자동차.부서진 집 그들이 곤궁한 삶을 느낄수 있는 주택가와 아수라장인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 한다.
시내로 들어서자 부서진 이라크 탱크와 그속에 뒤굴고 있는 아이들.
전쟁속에서 아직도 살아가는 아이들의 전진한 모습은 이라크가 전황속에서도 그리 암욱하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는 나의 가슴을 저미어왔다.
저멀리 검은 연기와 함께 20층 정도로 보이는 건물이 화염에 싸여 있고 이제 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전쟁이라는 상황이 막연하게나마 멀리서 느꼈던 비참하고, 살벌한 상황이 아닌 한편으로는 평상시처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걸어다니고, 가끔 교통혼잡으로 차량이 엉키어 있는 상황과 시장바닥에서 자신들의 물건을 사라는 상인들 속에서 한떼의 사람들은 미군탱크와 호텔입구의 경비선에 몰려 소란스럽다.
그이유를 알아보니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으려고 혹시나 TV방송에 나올 가능이 높은곳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이다.
숙소를 정하고 이곳에서 전쟁전부터 활동해온 프랑스 AMI 의사단체의 소속의사 쟈크와 이곳의 상황에 대하여 듣고 향후 활동방향에 대한 그들의 경험과 이곳에서 요구되는 이료구호의 방향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1차의료기관을 방문하여 이곳이 의사들이 느Rl는 문제에 대하여 들어보았다.
쉐라톤호텔 옆블록에 있는 40병상의 외과계열병원인 이곳의 원장은 병원문을 닫고 있었고 그 이유는 약탈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크다고 토로하였다.
대다수의 병원과 의원은 약탈과 안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문을 닫은 상황이고 따라서 소수의 운영중인 병원은 구호물자의 보급으로 일부의약품을 제외한 의약품의 부족은 크게 느끼지 않지만 전반적인 공급은 크게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내일은 이곳의 대형병원과 기타병원에 대한 상황을 점검하고 저녁에 AMI과 미팅을갖고 정보교환 및 공동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한다.
간간이 들리는 총성, 불타는 건물, 이곳에 온 의사들과의 만남, 전기가 끊겨 로비에서 글을쓰는 이순간 옆에서 총을매고 들어와 미국민과 잡담을 1시간째 하고있는 미군, 통금으로 조용한 거리. 어둠, 어디선가 들리는 총성. 이것이 바그다그의 첫날밤이다.

추신:
AMI-프랑스의 이사단체로 2천명이 소속의사-후원과 활동가중심의 활동
이곳에서 도심외곽등 필요지역에 공동으로 의원을 열고 의사를 파견
기금조달,현지인의사고용등을 제안함.
우리의견을 mkasla@hotmail.com로 보내기바람,
008821 650 602377 이 전화임 오후7시경에 전화하면 우리와 통화가능
긍정적인 검토바람,
MDM은 더 알아보겠음.-정샘한테 확인바람
현지에는 구호에 참여하는 의사 및 단첸 없음.
있어도 일회적일것임.
의약품구입은 중지하고고 항생제,마취.등을 가져오면 좋겠음.
어떤 경우라도 2차팀이 진료할 병원은 마련할것임.
한의사는 수용할 곳이 없고 활동도 제한적임.
리서치는 몰라도 진료요원은 나중에 의원을 경영하면 그때 파견 바람.

바그다그 2신

밤 9시에 소식을 전하려 기자들이 묵고있는 쉐라톤에 가려하니 이미 길거리는 인적이 전혀없는 미군의 순찰차량만이 간간이 돌아다니는 죽음의 도시이다.
숙소를 제공한 병원의 숙소에도 가지못하고 IPT 가 묵었던 호켈에서 신세를 지었다.
간간이 어데선가 들리는 총성소리와 발전기소리만이 이곳이 전쟁중임을 말할뿐 고요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약속했던 현지의사의 병원에 가서 원장의 인도아래 차량을 얻어타고 AL karama teaching hospital 에 도착하였다
가는 길에 보니 모든 관공서는 미사일공격으로 모두 불탄 상태이고 시장을 경유하기 위해 구시가로 가니 낡은 건물에 폭격의 흔적이 그대로다.
병원에 도착하여 보니 안내를 맡은 사람의 설명은 병원의 의약품은 크게 부족한 것은 없다는 것과 의사와 직원들의 봉급이 몇달째 밀려있어서 생활이 어럽다는 것이다.
현장을 둘러보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병원의사의 안내를 받아 입원실,응급실,진료실을 둘러 보았다.
진료실은 책상과 의자만이 있고 입원실은 악취와 더이상 더러워 질수 없는 시트와 보호자가 환자를 돌보는 듯 간호인력은 없는 듯했다.
아마 의료시스템이 붕괴하며 인력 이탈때문이 아닌가하다.
400명정원에 100명이 입원중이고 부족한것이 없다는것이 이해가 안되어 산부인과의사에게 물어보니 태아감시기. 초음파가 없고 자연분만, 복강경수술등 기타수술은 가능하다고 한다.
너무나 오랜 봉쇄조치로 인하여 무엇이 부족한지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느낌이고 병실이 비어도 입원해도 해줄것이 없다는 것께문에 환자를 모두 돌려보내는것이 환자와 병원 모두에게 당연한 사실같았다.
응급실은 약 30베드중 5명의 환자가 누워있었고 엠브란스가 간간이 도착하였다.
총상보다는 교통마비로 인한 민간인 응급환자의 후송이 대부분인듯하다.
두번째로 방문한곳은 Al Yamak General Hosp. 로 매우 규모가 큰 병원인 것 같다.
문제는 응급실만 운영중인데 이곳은 병원의 행정이 마비되어 의사와 간호인력 약사들이 모두 자원봉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인근도시나 이곳 바그다드의 자원자로 운영되고 있으며 약품의 관리나 의료물품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나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병원행정이 회복하여야만이 입원환자를 볼수있겠으나 당분간 정부기능이 회복할 가능성이 없음을 볼때 외국의 행정회복을 위한 재정지원이 필요한것 같다. 참고로 이곳의 의사봉급은 약 30-50달러 수준이다.
약국담당자와 재고상황을 평가하고 나오는 길에 보니 북부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이 구호품이 도착하여 차량내부를 둘러볼것을 요구하여 보니 수액제와 정맥주사용 항생제가 주류였다.
응급실은 의사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다보니 무척 혼란했으나 입원이 안 되는 관계로 한계가 명확했고 의사말로는 하루에 약 1500명의 환자가 방문했다고 한다 .
숙소로 돌아보는 길에 주택가를 방문하기로 하고 한곳을 방문하니 시내임에도 불구하고 한집에 집단으로 대가족이 거주하는데 매우 비좁고 누추했다.
마침 한아이가 얼굴의 반점과 고열을 가지고 있어 진료를 하였는데 안면에만 홍rash가 있어서 virus 성 질환으로 판단하였는데 잠시 머무르는 동 안 우리소식을 듣고 찾아온 환자들 수명과 한가족모두가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나중에 프랑스의사 kasra와 상의라니 서로 감이 잡히지 않아 재방문하기로 하였다.
방문하여 가진 느낌은 이라크사람들은 지금도 자기들을 미국이 공격한 이유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들을 무척 고마워한다는 것이다.
시내를 걸어다니며(일반기자들은 걸어다니지 않는다-시내에서 외국인은 거의 없다)느낀점은 모두 호감을 보여주기위해 엄지를 치켜세우고 웃음을 건네는 것이다.

오후에 사마르 정형외과전문병원을 가보았다.
이곳은 전쟁중에도 문을 열고 약탈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여 유일하게 정상진료한 병원이다.
약 100여명이 입원중이고 대부분 절단,중상환자들로 마침 부상자 전문구호단체인 Aid international 의 프랑스구호팀이 방문중이었다.
서로 일면식이 있어서 인사를 나누고 나오다 보니 미군의 경계팀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밤과 약탈자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가장 큰 두려움인것 같다.

오늘도 사담시티에서는 소요와 총격이 있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길

실제로 의료활동을 단체로 펼치는곳은 없다. 단지 한두명이 개인적으로 활동한다.
오늘저녁 MSM이 차량 3대로 도착했다.
가능하면 내일 그들을 만나 암만에서의 약속대로 공동진료를 하기위해 졉촉을 가질 에정이다.
내일 암만에서 현지구입한 의약품 본진이 도착하면 오는 즉시 병원에 전달하고 우리도 진료를 시작할것이다.
아마 yamuk이나 MSM병원이 될것이다.

AMI의사 쟈크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고 중요한것 같다,
전혀 새로운 전쟁구호양상이고 난민이 없으며 대규모 전상자가 아닌 민간인 피해자, 기간시설이 붕괴되는 형태, 응급구호보다 장기간의 구호 필요성등등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고 그들의 방식이 회복되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등.

오늘로 바그다드에서의 2일째이다.
아직도 매일 새롭게 불타는 건물, 총성, 약탈.
미군이 안전을 보장한다고 탱크로 둘로싼 호텔 3개.
어둠과 동시에 인적이 끊기는 거리. 밤의 총성.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우리가 평화를 말할때 전쟁의 참상과 폭탄에 맞은 부상당한 환자의 공포와 울부짓는 가족을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
이곳에 오는 많은 활동가와 한국에서 온 이방인들이 그들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자 이곳이 왔다,
그것뿐이다,
아무도 그들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죽은자가 산자에게 위안을 주고
남은자를 위해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것 같다.

내일도 가능하면 소식을 전하고 싶지만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위성전화만이 연락수단인데 나는 없기 떄문입니다.

모두에게 평화가 함께하기를..

바그다그에서 김해룡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