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지원단 2진 현지활동 후기… 송관욱

이름:송관욱 (rocco@jinbo.net)
2003/5/8(목)

의료지원단 2진 현지활동 후기

나눔보다 더 큰 깨달음

– 이라크 의료지원단 제 2진 현지활동 후기 -

2003년 4월 20일 오후 2시,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
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이라크 의료지원단 제 2진으로 이름 붙여진 우리
는 세 명의 양 한방 의료진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우리의 임무는 여러 단체가 공동으로 진행한 ‘이
라크 어린이에게 의약품을’이라는 캠페인에서 모인 국민 성금이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도록 이라크
의 의료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필요한 의약품을 구입하여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하며, 진료를 포함
한 의료지원활동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라크는 먼 나라였다. 요르단의 암만을 향해 비행을 할 때만해도 이 지루함이 이라크로 가는 긴
여정의 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암만에 도착하여 느낀 바그다드까지의 거리감은 한국에
서 이라크를 생각할 때의 그 아득함보다 더 컸다. 암만의 숙소에서 우리가 만난 한 노동자는 홀홀
단신 이라크를 찾아와 그곳 암만에서 발이 묶여 한 달이 다 되도록 국경을 넘지도 못하고 있었다.
의약품을 실어 나르는 의료지원단이라는 이유로 비교적 쉽게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던 우리는 그
에게 또 다른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암만에서 바그다드까지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1박 2일을 가야한다. 약탈의 위험을 피
하기 위해 다른 수십 대의 차량들과 함께 이라크 국경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왠지 모를 혼동
을 느낀다. 우리가 실어 나르는 이 의약품들은 구호물품이다. 이것을 약탈하려는 사람들 또한 마
찬가지로 절실히 의약품이 필요한 사람들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누군가에게 이 물건들
을 전달하기 위해, 우리에게 선택받지 못한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이 바로 우리
가 찾고 있던 그들인 것은 아닐까.

바그다드에 도착하여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작은 호텔이었지만, 외신기자들이 주로 묶는 대형호
텔의 곁에 위치하였기에 인근 지역에는 철조망이 둘러쳐지고 미군 탱크의 호위 속에 출입이 통제
되고 있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모든 통신망이 두절된 바그다드에서 외부와 교신할 수 있는
유력한 연결통로는 외신기자들 뿐이었기에 철조망 밖에는 많은 현지인 들이 몰려있었다. 그 저지
선을 넘어 우리는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으나, 그들은 들어올 수 없었다. 우리는 분명한 한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철조망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었지만, 그것은 거꾸로 울타리 밖의 모든 이
들을 가두고 있는 속박의 상징이었다.

바그다드의 날씨는 무척 건조하고 더웠다. 아열대의 풍취를 느끼게 해주는 가로수들은 황사를 고
깔처럼 뒤집어쓰고 있었다. 13년간의 경제봉쇄 때문인지 눈에 띄는 모든 것이 낡아 있었다. 거리
의 차들은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금새라도 멈출 듯 힘겹게 굴러가고, 파여진 도로와 무너진 건
물은 방치되어 있었다.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곳곳에 무료하게 앉아 있다가, 어색
한 얼굴로 지나치려는 우리에게 반갑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 왔다. 익숙하지 못한 손짓으로 우
리도 마주 인사를 나눈다. 한사람, 또 한사람.. 우리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들을 돕겠노라고 먼
길을 달려왔지만, 정작 우리는 그들로부터 위로 받고 있음을.. 비로소 우리의 마음도 몸을 따라 울
타리를 넘어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의료지원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많은 병원과 진료소들을 돌아보았다. 이 과정
에서 이미 현지에서 2개월 전부터 반전활동을 수행해오던 한국의 반전평화팀으로부터 많은 도움
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이라크 민중들을 사랑했으며,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
한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는 미약하나마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자 바그다드에 왔
으며, 우리의 노력이 가장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쓰여지기를 바랬다. 이러한 서로의 바램은 서로
간의 가장 적절한 협력관계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아직 진행 중인 일이긴 하나 이 지면을 빌어 다
시 한번 바그다드에서 활동 중인 반전평화팀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종전과 함께 바그다드 내의 상황은 매우 빠른 변화를 겪고 있었다. 약탈행위는 줄어들었고, 시내
의 병원들은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전기가 들어오고, 상수도와 가스의 공급이 재개됨에 따라
병원의 운영도 점차 정상화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상화란 오직 상대적인 표현일 뿐이
다. 경제봉쇄와 전쟁을 겪으며 이라크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문을 연 병원이라 해도 의약품과
의료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정상적인 진료와 치료기능을 수행하기란 여전히 역부족이었으
며, 대부분의 의료진과 직원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 병원의 화상센터를 방문
하여 전신의 60% 이상에 2-3도 화상을 입은 몇 명의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상처에
는 화상처치는커녕 의료용 거즈 한 장 붙어있지 않았으며, 그저 침상 곁에 서서 발만 구르고 있었
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지원은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의료진은 그들이 해외로 이송되기를
소망하였고, 실제로 몇 명의 환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로 후송되었으나, 불발탄의 폭발사고
와 석유통에 불을 붙여 취사를 하다가 발생하는 화재사고로 인하여 하루 7-8명의 새로운 화상환자
가 내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반전평화팀의 안내를 받아 바그다드의 북쪽에 위치하는 뉴바그다드를 돌아볼 수 있었는
데, 그 곳의 상황은 훨씬 열악했다. 도로는 붕괴되고, 하수도 시설이 없어 악취를 풍기는 오수가
길 한편에 도랑을 이루어 흐르고 있었으며, 가스공급이 중단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상수
도 공급이 중단되었으며, 그나마 공급되는 상수도는 하수에 오염되어 집단적인 설사의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120만 명이 거주한다는 뉴바그다드에 병원은 오직 한 곳 뿐이었으며, 4-5곳의
health center(한국의 보건지소 정도의 규모)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 지역의 자치 지도자들은 자
구책으로 한시적인 소규모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러한 진료소 중 몇 곳을 방문
할 수 있었다. 진료소는 시간제로 자원 봉사하는 의사들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의
약품은 항생제와 진통제가 주를 이루었으나 그마저 충분치 못했으며, 유 소아를 위한 물약은 이
미 구할 수 없었다. 시내의 한 병원에서 방사선과의사로 근무하는 닥터 무하마드는 하루 4시간정
도를 한 모스크에 설치된 진료소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진료소가 문을 열자마자 수십명의 환자
들이 몰려들었다. 또 다른 진료소는 문 닫은 학교건물의 한쪽을 사용하고 있었고, 비정기적으로
의사가 방문하는 곳이었다. 약제실에는 얼마 되지 않는 약들이 먼지 속에 놓여있었고, 비어있는
진료소 앞에는 몇 명의 환자들이 언제 올지 모를 의사를 기다리며 앉아있었다.

우리는 부족한 우리의 힘을 이곳 뉴바그다드에 보태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준비해왔던 1차 의약품
은 응급의료상황에 맞추어 주로 수액제와 마취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이미 필요한 곳에 나
누어주었고, 외래진료를 위한 경구용 약들은 양 한방 모두 절대량이 부족하였으나 진료를 더 이
상 미룰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진료시간 내내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현지인 들에게 한방진
료의 인기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한방진료팀은 거의 탈진상태가 될 지경이었다.

언론이란 참 미묘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미약한 노력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러나 이라크인 들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의 보도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의약
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진료활동 중에,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는 카메라의 존재는 무척 부
담스러운 것이었으나, 우리는 기꺼이 이에 응했다. 그러나 뷰파인더를 꽉 채운 우리의 모습이 그
뒤에 실존하는 이라크의 현실을 가리우는 허상으로 자리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었
다.

“우리는 이라크 의료지원단 2진이다. 1진이 스스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듯이, 우리는 2진으로서
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부족함과 아쉬움은 이어지는 3진의 몫으로 인계되어야 한다.” 이것
은 바그다드를 떠나는 우리의 옹색한 변명이었다. 짧은 기간동안, 알게 될수록 정이 드는 이라크
인 들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궁핍함 속에서도 기꺼이 가진 것을 나누고, 억
울한 일을 당해도 손들어 하늘 한번 가리키고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우리의 미약한 활동
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던 순박한 그들의 미소, 이 모든 것들이 떠나는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
게 만들었다.

3진과 임무교대 후 우리는 다시 긴 여정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3년 5월 6일 정오, 인천공
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그다드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비가 선물처럼 내리고 있었다. 돌아
와 일상의 자리에서 낮 익은 거리와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두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한다. 또한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진 적막한 사막과 황사먼지가 곱게 덮인 바그다드의 거리를 그리워한다. 그
곳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우리에게는 많은 할 일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조차 지금 이 순간만
큼은 위안이 되지 못한다. 바그다드에서의 경험은 남아있는 우리의 삶 속에 나눔보다 더 큰 깨달
음으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2003.5.8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이라크 의료지원단 2진 이영욱/고수정/송관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