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2003.05.22)
(다음은 부시행정부의 이라크전쟁에 대해 미 민주당 로버트 버드 상원의원이 상원 본회의장에서 행한 비판 연설이다. 편집자)
진실을 덮으려는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그 자신을 드러내게 마련입니다. 왜곡은 단지 진실이 드러나는 시간을 늦출 뿐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아무리 사실을 감추고 동료들을 속인다 할지라도 진실은 언젠가는 좁디좁은 틈새로 삐져나와 그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정작 위험한 것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진실이 무엇이냐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진실이 널리 알려지기 전에 거짓에 의한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편안하지 못한 사실에 애써 눈감고, 아무리 심한 왜곡이라 하더라도 현재 유행하고 있는 것들을 좇아가는 편이 때로는 훨씬 쉬운 것이 우리네 삶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정치판에서 이러한 현상들을 무수히 보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제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그러한 현상들을 바로 이 상원 회의장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상황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미 국민들은 잘못된 전제하에, 오랫동안 지켜져 왔던 국제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주권국가에 대한 근거없는 침공을 받아들이도록 오도됐다고 본 의원은 믿습니다. 9.11은 물론 참혹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중들의 관심을, 이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가 아니라, 테러와는 관련이 없는 사담 후세인에게 돌리기 위한 주도면밀한 대중조작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대단히 많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통령과 각료들은 버섯구름, 생물학무기들의 비밀스런 은닉장소, 우리의 주요 도시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이 무기들을 운반할 무인비행기 등 그들이 상상해낼 수 있는 온갖 무시무시한 이미지들을 동원했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우리의 자유에 대한 사담 후세인의 직접적 위협에 관한 온갖 과장된 주장들에 흠뻑 취했습니다. 이러한 전술은, 9.11테러에 대한 정당한 분노와 그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미 국민들로부터 일정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분명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두려움을 악용한 것입니다. 그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가짜약을 준 것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 전 부시행정부의 무시무시한 주장들과 상반되는 증거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우리들은 이를 모른 체 하고 있습니다. 백악관은 상반되는 증거들을 해명하는 대신 교묘하게 주제를 바꾸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그저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라는 말만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언젠가는 나타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라크 지하요새에 대한 우리의 값비싼, 파괴적인 공격에서 우리가 알아낸 것은 전쟁 전 우리가 들어왔던 것과는 정반대라는 사실뿐입니다. 긴급하게 이라크를 공격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죠. 또한 부시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그토록 비난해 마지않았던 유엔 무기사찰단의 주장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정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블릭스 사찰단장이 말한 것처럼 만일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 해도 이를 찾아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반면 오사마 빈 라덴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사담 후세인은 여전히 종적이 묘연합니다.
부시행정부는 미 국민은 물론 세계를 향해, 그것도 수없이 되풀이해서, 국제테러로부터 미국과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행정부는 대중들의 위기의식을 조장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사담 후세인과 오사만 빈 라덴의 얼굴이 사실상 하나로 합쳐질 때까지 이 둘을 동일시하는 캠페인을 펼쳐 왔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통스러울 정도로 우리에게 분명히 드러난 사실은 이라크는 미국에 대한 즉각적 위협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십수년간의 경제제재로 황폐해진 이라크는 미군을 상대로 비행기 한 대조차 띄우지 못했습니다. 생물학무기를 싣고 우리에게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 미국 상공으로 날아들 것이라던 이라크의 무인비행기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그 무시무시한 무인비행기는 합판과 철사로 만들어진 조잡한 것이었습니다. 이라크의 미사일은 구식에 사정거리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군대는 미국의 첨단기술과 잘 훈련된 미군에 의해 순식간에 궤멸됐습니다.
현재 우리의 충성스러운 병사들은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기 위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발견해낸 것이라곤 비료, 진공청소기, 재래식 무기, 그리고 지하에 묻혀진 수영장이 고작입니다. 우리 병사들은 잘못된 임무에 잘못 동원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주 위험스런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선제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시 팀이 그동안 수없이 내뱉어온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주장들은 단지 당혹스러운 정도가 아닙니다. 부시행정부의 행동은 그들의 거짓말과 무모한 힘의 행사 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우리 병사들이 불필요하게 위험에 노출된 것은 아닌가? 일어나지 않아도 됐을 전쟁 때문에 수많은 이라크 민간인들이 목숨을 빼앗기고 팔다리를 잃은 것은 아닌가? 미 국민들은 (미 정부에 의해) 고의로 오도된 것은 아닌가? 세계도 마찬가지 아닌가?
저를 더욱 위축시키는 것은 우리가 ‘해방자’라는 계속되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붙인 이 고상한 라벨을 현실은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야만적이고 비열한 폭군을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보통사람들을 위한 자유와 자결(自決)과,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이 뒤따랐을 때 우리는 ‘해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지금의 이라크 상황을 ‘해방’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2백년전의 자유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라크인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주겠다는 우리의 의기양양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라크에는 물도 부족하고, 때때로 불결하기까지 하며, 전기는 수시로 끊기고, 식량은 모자랍니다. 병원은 부상자들로 가득하며, 이 지역의 역사적 유적들과 시민들의 재산은 약탈당했고, 핵물질은 누구도 모를 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서 정부의 명령을 받은 미국 병사들은 석유자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편 이라크의 사회간접자본과 석유산업을 재건하기 위한 노다지 계약들은 경쟁입찰도 하지 않은 채 미 정부와 연줄이 닿는 기업들에 제공되고 있으며, 미 정부는 이라크 재건에 참여하겠다는 유엔의 요청을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미 정부의 (이라크 침공의) 진정한 의도가 전세계의 의혹과 불신의 대상이 되는 것도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아가 가장 우려스러운 사태로서 미국은 이라크인들의 민족자결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제이 가너는 교체됐고, 해방자로서 미국의 웃는 얼굴은 너무도 빨리 점령군의 험상궂은 얼굴로 변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목을 짓누르는 군홧발의 이미지가 자유를 부르는 손의 이미지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가난과 질병으로 황폐해진 이 나라에서 미군들이 질서를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혼란과 폭동은 이러한 이미지를 강화시킬 뿐입니다. 이라크의 ‘정권교체’란 지금까지 미 점령군과 미 정부에 의해 간신히 질서가 유지되는 무정부상태를 의미할 뿐입니다. 미 정부는 아직까지 언제, 어떻게 이라크를 떠날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총부리를 겨누고 강제로 떠먹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제 우리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렇게 가망 없을 정도로 나이브(naive)해졌는가? 어찌해서 우리는, 종교 영토 부족(部族)이라는 측면에서 갈갈이 찢겨 있고 미국의 의도를 깊이 불신하고 있으며 서방경제의 근원인 물질주의와는 극단적 상극관계에 있는 이라크에 미국식 문화, 미국식 가치, 미국식 정부체제를 쉽사리 이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는가?
현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한 잘못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경고했듯이, 우리의 이라크 침공은 1천명의 새로운 ‘오사마 빈 라덴’을 만들어내 최근 수일동안 우리가 목격한 것과 같은 끔찍한 테러들을 양산해낼 것이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에게 타격을 가하기는커녕 그들의 타오르는 분노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은 이라크 침공에만 골몰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알 카에다는 더욱더 불타오르는 복수심으로 되돌아온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미 국내의 테러 경보 수준을 강화했으며,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지역인 중동지역을 불안정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와 생각을 달리하는 옛 우방국들을 혼내주겠다는, 위선적이고 고압적인 고집을 부림으로써 전세계의 우방국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습니다.
외교와 합리성의 경로는 닫혀져 버렸고, 그 자리에는 힘과 일방주의, 그리고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는 자들에 대한 징벌만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최근 미국의 오랜 우방국이자 전략적 동맹국인 터키에 대한 우리 정부의 매우 가혹한 비판을 읽고 매우 놀랐습니다. 터키의 신정부가 자신의 헌법과 민주적 제도에 합당하게 스스로의 내정 문제를 처리한 데 대해 미국 정부가 혹평했다는 것이 경악스러웠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국제 군비경쟁을 촉발했는지 모릅니다. 각 나라들이, 원하는 어느 나라든지 공격할 수 있다며 호전적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미국의 선제공격을 피하기 위한 최후의 노력으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제어할 만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의회는, 미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unfortunate) 행동으로 기록될 것인 바, 전쟁선포 권한을 포기했으며 최소한 가까운 장래까지는 대통령에게 제멋대로 전쟁을 벌일 권한을 주었습니다.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다고 느꼈는지 의원들은 당연히 물어야 할 질문들을 제기하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을 것인가? 벌써부터 이라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병력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쟁의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진실은 무엇인가? 이라크 점령과 재건의 비용은 얼마나 될 것인가? 누구도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올 한 해에만 재정적자가 3천4백억 달러나 되는 마당에, 테러와 맞서 싸우고, 건강보험 재정의 심각한 위기에 대응하며, 천문학적 규모의 국방비를 지출하면서 동시에 수십억 달러의 세금을 삭감하겠다는, 장기적이고도 거대한 규모의 공약을 이행할 능력은 과연 있는가? 만일 대통령의 공약대로 감세안이 통과된다면 올해의 적자 규모는 4천억 달러가 됩니다. 헛된 주장들이 판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비겁하게도 그늘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듣기 좋은 대답과 근거가 박약한 설명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진실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인기를 잃거나 어쩌면 정치적으로 대단히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 의원은 감히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불행하게도 미 국민들은 지금 그들이 공직자들로부터 듣는 정치적 은폐, 말바꾸기, 궤변 등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 선까지는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나 한계란 있는 법입니다. 보이지 않는 잉크로 씌어진 글씨들이 한동안은 보이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짙은 색깔로, 그것도 분노가 배어 있는 글씨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의 피가 흐를 때쯤이면, 시민들, 무고한 남자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들에게까지 피해가 미치게 되면 판에 박힌 거짓말들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런 종류의 거짓말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 소중하지 않습니다. 석유도, 복수도, (대통령) 재선도, 전세계를 민주화의 도미노판으로 만들겠다는 누군가의 속좁은 거대 이론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의 말을 명심해 들으십시오. 최근 우리가 그토록 자주 접하고 있는, 권좌에 앉아 있는 이들의 계산된 협박은 그들이 권력을 잡고 있을 동안에만 반대파들을 침묵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진실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게 되면 기만 위에 세워진 이 모래성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관련 링크 ( http://commondreams.org/views03/0521-10.htm )
로버트 버드/미 상원의원
(자료출처: 프레시안, 2003년 5월 22일)